맨위로가기

제60공수야전병원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60공수야전병원은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도착한 인도 육군 소속의 야전 병원이다. 1950년 12월 평양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51년 문산 공수 작전을 지원했다. 이후 영국군 지원과 대구 육군 병원 및 민간인 치료를 담당했으며, 영연방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했다. 한국전쟁 포로 송환을 지원하다가 1954년 2월 23일 철수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 육군 - 마드라스 연대
    마드라스 연대는 1639년에 기원을 둔 인도 육군의 보병 연대로, 동인도 회사에 의해 창설되어 영국령 인도 육군과 인도 육군에서 다양한 전투에 참전했으며, 현재 21개의 대대 등으로 구성되어 용맹을 떨치고 있다.
  • 6.25 전쟁의 의료 지원 -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
    6.25 전쟁 중 스웨덴 정부가 파견한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은 부산에서 부상병 치료 및 민간인 구호 활동을 수행했으며, 이후 한국 의료 체계 복구에 기여했다.
  • 6.25 전쟁의 의료 지원 - 6.25 전쟁 의료지원 국가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측의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서독과 공산군 측의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여러 국가들이 병원선 파견, 야전 병원 운영, 의료진 파견 등의 의료 지원을 제공했으며, 부산광역시에는 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 나라별 6.25 전쟁의 부대 및 편성 - 필리핀 한국 원정군
    필리핀 한국 원정군은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필리핀군 부대로, 총 7,420명의 장병이 파병되어 주요 전투에서 활약하며 한-필리핀 양국 간 우호 관계에 기여했고,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 나라별 6.25 전쟁의 부대 및 편성 - 제21보병연대 (태국)
    제21보병연대는 한국 전쟁 참전을 위해 창설된 부대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시리킷 여왕의 경호 부대로 지정되어 왕실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과거 부를 축적하고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의혹도 있다.
제60공수야전병원
기본 정보
이름제60공수야전병원
원어 이름60th Parachute Field Ambulance
소속인도 육군
병과보병
종류공수부대, 의무부대
상급 부대제27보병여단
주둔지대한민국 대구직할시
지휘관A. G. 란가라지
1953년 9월 7일 전선을 향해 이동 중인 인도군 병사들
1953년 9월 7일 전선을 향해 이동 중인 인도군 병사들
역사
창설1944년
참전
참전6.25 전쟁
참전 전투청천강 전투
토마호크 작전
가평 전투
제1차 마량산 전투
제2차 마량산 전투
사미천 전투
표창
훈장마하 비르 차크라

2. 역사

1950년 11월 20일 A. G. 란가라지 중령이 지휘하는 인도 육군 제60공수야전의무대가 부산에 도착했다. 이 부대는 의사 15명(일반의사 8명, 외과의사 4명, 마취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되었다.

1950년 12월 4일 평양에 투입되어 활동을 시작한 제60공수야전의무대는 인도군 공수사단 소속으로 공수작전이 가능했다. 1951년 3월 23일, 문산 공수작전 때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지원했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어 활동했다. 1개 부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지원했고, 다른 1개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 병원과 민간인을 치료했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 사단 창설 후, 인도군 의무대는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전쟁 말기 포로송환감시단으로 인도군이 파견되자, 제60공수야전병원은 포로송환감시단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다. 1954년 2월 23일,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과 함께 철수했다.

2. 1. 파병 배경

1950년 11월 20일, A. G. 란가라지 중령이 지휘하는 인도 육군 제60공수야전의무대 부대원들이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의사 15명(일반의사 8명, 외과의사 4명, 마취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되었다.

1950년 12월 4일 평양에 투입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 의무대는 인도군 공수사단 소속으로 공수작전도 가능했다. 1951년 3월 23일에는 문산 공수작전 때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지원했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어 활동했다. 1개 부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고, 나머지 1개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 병원과 민간인을 치료했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영연방 여단에 배속되었던 인도군 의무대는 그대로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전쟁 말기, 포로송환감시단으로 인도군이 파견되자,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고, 1954년 2월 23일에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과 함께 완전히 철수하였다.

2. 2. 주요 활동

1950년 11월 20일 A. G. 란가라지 중령 지휘 하에 의사 15명 (일반의사 8명, 외과의사 4명, 마취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된 인도 육군 제60공수야전의무대가 부산에 도착했다. 1950년 12월 4일 평양에 투입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1951년 3월 23일 문산 공수작전에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지원했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어 활동했다. 1개 부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지원했고, 다른 1개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 병원과 민간인을 치료했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영연방 여단에 배속된 인도군 의무대는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전쟁 말기에는 포로송환감시단으로 파견된 인도군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고, 1954년 2월 23일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과 함께 철수하였다.

2. 2. 1. 부산 도착 및 초기 활동 (1950년 11월 ~ 1950년 12월)

1950년 11월 20일 A. G. 란가라지 중령 지휘 하에 인도 육군 제60공수야전의무대 부대원들이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의사 15명(일반의사 8명, 외과의사 4명, 마취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되었다.

2. 2. 2. 평양 투입 및 본격적인 활동 (1950년 12월 ~ 1951년 3월)

1950년 12월 4일 평양에 투입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인도 육군 공수사단 소속으로 공수작전도 가능한 부대였기에, 1951년 3월 23일 문산 공수작전에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지원했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었다. 1개 부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고, 나머지 1개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 병원과 민간인 치료를 지원했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영연방 여단에 배속된 인도군 의무대는 그대로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2. 2. 3. 영연방 제27보병여단 지원 및 대구 주둔 (1951년 3월 ~ 1951년 7월)

1951년 3월 제60공수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었다. 1개 부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고, 나머지 1개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 병원과 민간인을 치료하였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영연방 여단에 배속되었던 인도군 의무대는 그대로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2. 2. 4. 영연방 사단 야전병원 운영 (1951년 7월 ~ 1953년 7월)

1951년 7월 28일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지원했던 인도군 의무대가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2. 2. 5. 포로 송환 지원 및 철수 (1953년 7월 ~ 1954년 2월)

전쟁 말기, 포로 송환 과정에서 인도군이 포로송환감시단으로 파견되자, 제60공수야전병원은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다. 1954년 2월 23일에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과 함께 완전히 철수하였다.

3. 한국에 미친 영향

1950년 11월 20일, A. G. 란가라지 중령이 지휘하는 인도 육군 제60공수야전의무대 부대원들이 부산에 도착했다. 이들은 의사 15명(일반의사 8명, 외과의사 4명, 마취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되었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둘로 나뉘어 활동했다. 1개 부대는 영국 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고, 나머지 1개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 병원과 민간인을 치료했다. 1950년 12월 4일 평양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1951년 3월 23일, 문산 공수작전에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의료 지원을 하기도 했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영연방 여단에 배속되었던 인도군 의무대는 그대로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하였다. 전쟁 말기에는 포로송환감시단으로 인도군이 파견되자,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고, 1954년 2월 23일에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과 함께 완전히 철수하였다.

4. 의의 및 평가

1950년 11월 20일 A. G. 란가라지 중령이 지휘하는 인도 육군의 제60공수야전의무대는 한국 전쟁에서 인도주의적 의료 지원을 수행하기 위해 부산에 도착했다. 이 부대는 의사 15명(일반의사 8명, 외과의사 4명, 마취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되었으며, 1950년 12월 4일 평양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제60공수야전병원은 공수작전 능력을 갖추고 있어, 1951년 3월 23일 문산 공수작전 때 미국 제187연대전투단과 함께 강하하여 의료 지원을 했다. 이들은 두 부대로 나뉘어 한 부대는 영연방 제27보병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고, 다른 부대는 대구에 주둔하며 대한민국 육군병원과 민간인을 치료했다. 1951년 7월 28일 영연방 사단이 창설되자, 이들은 사단 야전병원을 운영했다.

전쟁 말기, 제60공수야전병원은 포로송환감시단으로 파견된 인도군에 통합되어 포로 송환 업무를 지원했고, 1954년 2월 23일 인도군 포로송환감시단과 함께 완전히 철수했다. 이러한 제60공수야전병원의 활동은 국제 연대와 평화 유지를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