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 (1909년)
1. 개요
조규찬(1909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정치인이다. 경성제국대학교 재학 중 독서회를 조직하여 반제 운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퇴학당하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한국독립당, 신민당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사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이름 | 조규찬 |
|---|---|
| 원래 이름 | 曺圭瓚 (조규찬) |
| 출생일 | 1909년 8월 14일 |
| 사망일 | 1997년 6월 26일 |
| 출생지 | 대한제국 전라남도 화순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 본관 | 창녕(昌寧) |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한국기독교장로회) |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효제동 |
| 배우자 | 김자옥 |
| 부모 | 조혁순(부), 전주 최씨 부인(모) |
| 자녀 | 슬하 3남 3녀 |
| 학력 | 전라북도 전주고등보통학교 졸업(1928년) |
|---|---|
| 학력 | 경성제국대학교 법학과 중퇴(1931년) |
| 학력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1956년) |
| 정당 | 무소속 |
|---|---|
| 직책 | 前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 예하 행정보좌관 |
| 임기 | 1959년 10월 2일 ~ 1959년 11월 26일 |
| 전임 | 김찬도 |
| 대통령 | 이승만 |
| 후임 | 박승하 |
| 직책 | 대한민국 관선기 전라남도 광주시장 직무대행 서리 |
| 임기 | 1961년 7월 29일 ~ 1961년 8월 2일 |
| 장관 | 이호 (대한민국 내무부 장관) |
| 차관 | 이동환 (대한민국 내무부 차관) |
| 총리 | 송요찬 (대한민국 내각수반) |
| 대통령 | 윤보선 (대한민국 대통령) |
| 직책 | 대한민국 원호처 국가민족행정자치특보위원 |
| 임기 | 1962년 5월 31일 ~ 1963년 1월 31일 |
| 차관 | 민병권 (대한민국 원호처 처장) |
| 총리 | 송요찬 (대한민국 내각수반) 백낙준 (대한민국 내각수반) 박정희 (대한민국 내각수반) |
| 대통령 | 송요찬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백낙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
| 서훈 | 1986년 3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
|---|---|
| 서훈 |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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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고등보통학교 동문 -
정창모
정창모는 일제강점기 말 한국 화단에 입문하여 6·25 전쟁 중 월북 후 북한에서 조선화가로 활동하며 풍경화, 화조화에 능했고 2000년 남한을 방문했으며 2010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진중권
대한민국의 미학자이자 작가, 평론가, 대학교수인 진중권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미학, 예술, 정치, 사회에 대한 저술 및 번역 활동과 진보 정당 활동을 해왔다. -
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윤석중
윤석중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아동문학 운동을 이끌고 수많은 동요와 동시집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
1909년 출생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1909년 출생 -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외교적 해결 지지, 베트남 전쟁 미국 군사 개입 확대 옹호 등의 활동을 했다.
2. 생애
조규찬(趙圭瓚중국어)은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여 항일 비밀결사 독서회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2.1. 주요 경력
전라남도 화순에서 출생하였으며, 전라북도 정읍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전주에서 성장하였다. 전주고보 졸업 후 경성제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에는 한국독립당, 신민당 등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다.
2.1.1. 경성제국대학 독서회 사건
그는 1931년 4월 경성제국대학교 법학과에서 신현중(愼弦重) 등과 함께 조선 독립과 반제국주의 운동을 위해 학교 내 비밀결사인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이후 발전적인 반제부(反帝部)로 개편되었고, 경성부 내 각급 학교와 연계하여 공작조직을 확대하고 반제학생협의회(反帝學生協議會)를 결성하였다. 그는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식민지화를 위해 침략전쟁에 광분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반제신문(反帝新聞) 및 격문을 간행하여 배포하고 활동하다가 체포되었고, 결국 경성제대에서 퇴학 조치되었다. 1932년 11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1.2. 광복 이후 정치 활동
1935년부터 1948년까지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을 지냈고, 이후 해당 직위에서 퇴임함과 동시에 한국독립당을 탈당하였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신민당 전임고문 직위를 지냈으며,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였다.
4. 사후
그는 대한민국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