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연
1. 개요
조대연은 대한제국 시기에 전사판임관을 지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사립 대동법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충주 지역에서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해방 이후에는 독립촉성국민회 충북도 부위원장과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196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지사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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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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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공무원에 관한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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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공무원에 관한 -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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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출생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1888년 출생 -
프리츠 제르니커
프리츠 제르니커는 위상차 현미경 발명 및 제르니커 다항식 개발을 통해 광학 분야에 기여하여 195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물리학자이다.
2. 생애
조대연은 1888년 충청도 충주목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시절 장영원 전사판임관 5등에 임명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사립 대동법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충주 엄정면장, 충주금융조합장, 연초경작조합 조합장, 식산주식회사 전무, 신계금융조합 조합장, 매일신보 지국장, 국민의회 대의원, 국민회 충주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독립촉성국민회 충북도 부위원장,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2. 일제강점기
1888년 충청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사립 대동법률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충주 엄정면장, 충주금융조합장, 연초경작조합 조합장, 식산주식회사 전무, 신계금융조합 조합장, 매일신보 지국장, 국민의회 대의원, 국민회 충주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2.3. 해방 이후
1945년 광복 이후, 독립촉성국민회 충북도 부위원장을 지냈다.
3. 정치 활동
조대연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북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0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 선거명 | 소속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결과 | 비고 |
|---|---|---|---|---|---|
| 제2대 총선 | 무소속 | 11,375표 | 19.87 | 당선 | 초선 |
| 제3대 총선 | 무소속 | 4,217표 | 7.24 | 낙선 | |
| 1960년 지방선거 (충청북도) | 민주당 | 125,825표 | 45.9 | 당선 | 초선 |
3.1.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조대연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충북 충주군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1,375표(19.87%)를 얻어 당선되었다.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 무소속 | 11,375표 | 19.87% | 당선 | 초선 |
3.2. 충청북도지사 선거
| 선거명 | 결과 | 비고 |
|---|---|---|
| 1960년 지방선거 (충청북도) | 당선 | 초선 |
조대연한국어은 196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45.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시 충청북도는 대한민국 제2공화국 출범 이후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 중 하나였다. 조대연한국어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과 더불어,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며 도민들의 지지를 얻어 당선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