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남송)
1. 개요
조부(趙旉)는 남송 고종의 아들로, 1129년 2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묘부와 유정언의 난으로 고종이 폐위된 후 황제로 추대되었다. 장준의 군대에 의해 폐위된 뒤 위국공으로 강등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사후 황태자로 복위되어 원의황태자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고종은 조부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다. 조부는 25일간의 짧은 재위 기간으로 인해 정식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그의 죽음은 고종이 효종을 양자로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름 | 조부 |
|---|---|
| 한자 표기 | 趙旉 |
| 로마자 표기 | Zhao Fu |
| 설명 | 12세기 중국 왕자 |
| 작위 | 황제 |
|---|---|
| 통치 기간 | 1129년 3월 26일 – 1129년 4월 20일 |
| 이전 통치자 | 고종 |
| 다음 통치자 | 고종 |
| 섭정 | 맹황후 |
| 출생일 | 1127년 7월 23일 |
|---|---|
| 사망일 | 1129년 7월 28일 |
| 사인 | 알 수 없음 |
| 아버지 | 고종 |
|---|
| 추증 시호 | 원의태자(元懿太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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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고종의 황자 -
남송 효종
남송 효종은 북송 태조의 후손으로 고종의 양자가 되어 남송의 제2대 황제가 되었으며, 정치 개혁과 경제 안정, 금나라와의 화의를 통해 남송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만년에는 광종과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
1129년 사망 -
시라카와 천황
시라카와 천황은 일본의 72대 천황으로, 고산조 천황의 아들이며, 호리카와 천황에게 양위 후 상황으로서 원정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섭관정치를 약화시키며 천황 중심의 정치 체제 확립과 호쇼지 건설을 통해 불교를 장려했다. -
1129년 사망 -
미나모토노 도시요리
미나모토노 도시요리는 헤이안 시대 후기의 가인으로, 호리카와 천황 시대 가단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며 ≪금엽와카집≫ 편찬을 주도했고 칙찬 와카집에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으며, ≪산목기가집≫, ≪도시요리 수뇌≫ 등의 저서를 남겼다. -
1127년 출생 -
남송 효종
남송 효종은 북송 태조의 후손으로 고종의 양자가 되어 남송의 제2대 황제가 되었으며, 정치 개혁과 경제 안정, 금나라와의 화의를 통해 남송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만년에는 광종과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
1127년 출생 -
의종 (고려)
인종의 맏아들인 의종은 고려 제18대 왕으로, 즉위 초 왕권 강화를 꾀했으나 잦은 유희와 문신 우대로 무신정변을 초래하여 폐위 후 살해되었으며, 그의 치세는 무신정권 시대로 이어지는 분수령이 되었다.
2. 생애
1127년 아버지 조구가 북송의 멸망 이후 남쪽으로 이동하여 황제로 즉위하면서, 조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족이 되었다. 1129년 1월 3일 2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같은 해 3월 23일 묘부와 유정언이 정변을 일으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조부를 황제로 추대했으나, 4월 20일 장준이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진압하고 고종을 복위시켰다. 조부는 폐위되어 위국공으로 강등되었다. 『송사』에 따르면, 조부는 병약했으며, 1129년 가을 7월 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고종은 아들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며 며칠 동안 통곡했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모와 시종이 처형되었다.
2.1. 황태자 책봉과 즉위
1129년 1월 3일, 2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같은 해 3월 23일,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彦) 등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뒤 조부를 황제로 추대하고 연호를 명수(明受)라 하였다. 묘부가 섭정을 맡았으나, 실권은 묘부, 유정언, 그리고 섭정이었던 전 맹황후에게 있었기에 조부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송나라 재상 장준(張浚)이 군사를 일으켜 4월 20일, 묘부와 유정언의 군대를 제압하고 조부를 폐위시킨 뒤 다시 고종을 복위시켰다. 폐위된 조부는 위국공(魏國公)으로 강등되었다. 얼마 뒤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남송 고종은 대성통곡하며 3일간 정사를 중단했다. 사후 다시 황태자로 복위되어 시호는 원의황태자(元懿皇太子)이다.
2.2. 폐위와 죽음
1129년 3월 23일, 묘부(苗傅)와 유정언(劉正彦) 등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조부를 황제로 추대하여 연호를 명수(明受)라 하고 묘부가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장준이 군사를 일으켜 1129년 4월 20일, 묘부와 유정언은 한세충이 이끄는 고종의 군대에 패배하여 처형되었고, 조부는 폐위되어 위국공(魏國公)으로 강등되었다.
얼마 뒤 조부는 발작을 일으켜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송사』에 따르면, 조부는 병약했으며, 1129년 가을 7월에 겨우 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조부가 죽자 남송 고종은 대성통곡했으며, 3일간 정사를 중단했고, 유모와 시종이 이 일로 인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사후 다시 황태자로 복위되어 시호는 원의황태자(元懿皇太子)이다.
3. 평가 및 영향
조부는 전통적인 역사학자들에게는 송나라 황제로 여겨지지 않으며, 25일간의 짧은 재위 기간으로 인해 그의 연호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고종은 태조의 혈통에서 적합한 후계자를 찾아야 했는데, 이는 정강의 변으로 인해 태종의 후손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