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 (1836년)
1. 개요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는 183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벨기에의 외교관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벨기에 외교관으로 파리, 로마,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른 등에서 근무했으며, 베를린 회담에 벨기에 대표로 참석했다. 에노 주 주지사, 필리프빌 선거구 의원, 벨기에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1846년부터 1847년까지 바티칸 주재 벨기에 대사를 지냈다.
| 이름 | 마리 조제프 기 앙리 필리프 드 리케 드 카라망 |
|---|---|
| 원어 이름 | Marie-Joseph-Guy-Henry-Philippe de Riquet de Cara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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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836년 10월 9일 |
|---|---|
| 출생지 | 므나르(루아레셰르) |
| 사망일 | 1892년 3월 29일 |
| 사망지 | 브뤼셀 |
| 정당 | 가톨릭당 |
| 아버지 |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 |
| 어머니 | 에밀리 펠라프라 |
| 배우자 | 마리 조제핀 드 몽테스키우페장삭 (1834-1994) 마틸드 드 바랑디아랑 |
| 자녀 | 마리 아나톨 루이즈 엘리자베트 (1860-1952) |
| 벨기에 외무부 장관 | 재임 시작: 1884년 재임 종료: 1892년 이전: 알퐁스 드 모로 이후: 앙리 드 메로드베스테를로 |
|---|---|
| 에노주 지사 | 재임 시작: 1870년 재임 종료: 1878년 이전: 루이 트루아예 이후: 오귀스트 방데르페펜 |
| 교황청 주재 벨기에 대사 | 재임 시작: 1846년 재임 종료: 1847년 이전: 샤를 반 덴 스테엔 드 제아이 이후: 외젠 드 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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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케 가문 -
그레퓔 부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프랑스 사교계의 저명한 인물인 그레퓔 부인은 예술과 학문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셀 프루스트 소설 속 오데트 드 크레시의 모델이자 마리 퀴리 연구를 지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리케 가문 -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 (1808년)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는 벨기에 독립 혁명 시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벨기에 독립을 지지하고 여러 국가와의 외교 관계 수립에 기여했으며, 벨기에 임시 정부의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지역 사회 발전을 후원했다. -
벨기에의 외교관 -
폴앙리 스파크
벨기에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폴앙리 스파크는 벨기에 총리와 외무장관을 역임하고 유럽 통합 운동에 기여했으며 유엔 총회 초대 의장과 NATO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국제 협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벨기에의 외교관 -
제라르 르망
제라르 르망은 벨기에 육군 장교로 벨기에 군 현대화에 기여하고 리에주 요새 사령관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
벨기에의 외무장관 -
폴앙리 스파크
벨기에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폴앙리 스파크는 벨기에 총리와 외무장관을 역임하고 유럽 통합 운동에 기여했으며 유엔 총회 초대 의장과 NATO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국제 협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벨기에의 외무장관 -
이브 르테름
이브 르테름은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감사원 감사관 등을 역임한 벨기에 정치인으로, 플란데런 정부의 장관-수반, 벨기에 총리, 외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OECD 사무차장, International IDEA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적인 활동을 했다.
2. 생애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는 1836년 10월 9일 프랑스 메나르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의 외교관이자 기업가였던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 제17대 시메 공이었다. 어머니는 회고록 작가인 에밀리 펠라프라로, 그녀는 이전에 루이 마리 조제프 드 브리고드 백작과 결혼하여 아들 앙리 드 브리고드 후작을 낳았으므로, 앙리는 조제프의 이복 형이 된다. 조제프에게는 에밀리, 발렌틴 드 리케 드 카라망, 외젠이라는 세 명의 동복 형제자매가 있었다.
그의 부계 조부모는 제16대 시메 공 프랑수아 조제프 필리프 드 리케와 프랑스 총재정부 시대 파리 사교계의 주요 인물이었던 테레사 드 카바루스였다. 모계 조부모는 부유한 금융가 앙리 드 펠라프라와 프랑수아즈-마리 르로이였지만, 어머니 에밀리는 자신이 나폴레옹의 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857년 6월 15일, 그는 파리 구 10구에서 마리 조제핀 아나톨 드 몽테스키우페장삭(1834–1884)과 결혼했다. 그녀는 비스콩트 나폴레옹 드 몽테스키우페장삭과 장군 피에르 퀴리에-페론의 딸인 앤 엘리자베스 퀴이에 페론의 딸이었다. 부부는 여섯 자녀를 두었다.
음악 교육을 받았던 시메 공은 개인 연주회를 열기도 했는데, 자신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아내 마리 조제핀은 피아노를 쳤다. 프란츠 리스트는 부부의 연주회에 참석하곤 했으며, 어느 날 만찬에서는 부부를 위하여 미사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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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내 마리 조제핀이 1884년에 사망한 후, 조제프는 1889년 9월 2일 브뤼셀에서 마리 마틸드 뤼시 크리스틴 프랑수아즈 드 폴 드 바랑디아랑(Marie Mathilde Lucie Christine Françoise de Paule de Barandiaran, 1862–1919)과 재혼했다. 그녀는 그레고르 드 바랑디아랑과 이사벨 카발칸티 드 알부케르케의 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는 1892년 3월 29일 브뤼셀에서 사망했고, 그의 작위는 장남 조제프가 계승했다. 그의 사후, 미망인 마리 마틸드는 리에데르케르크 드 파이예 백작 자크 베누아 테오필과 재혼하여 딸을 낳았다.
3. 경력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는 젊은 시절 외교관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1855년 벨기에 공사관 담당관으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파리, 로마,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른 등 여러 도시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벨기에 국내 정치로 방향을 전환하여 1870년부터 1878년까지 에노 주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그는 가톨릭당 소속으로 1882년부터 필리프빌 선거구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884년에는 베를린 회담에 벨기에 대표로 참여했다. 같은 해 10월부터는 사망하는 1892년까지 벨기에 외무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3.1. 외교 경력
조제프 드 리케 드 카라망시메는 다음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다.
| 시기 | 직책 및 활동 |
|---|---|
| 1855년 5월 27일 | 벨기에 공사관 담당관 attaché à la Légation de Belgique프랑스어 |
| 1858년 11월 14일 | 2등 공사관 비서 secrétaire de la Légation deuxième classe프랑스어 |
| 1862년 4월 15일 | 파리 주재 벨기에 공사관 근무 |
| 1864년 6월 27일 | 로마 주재 벨기에 공사관 근무 |
| 1865년 6월 15일 |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벨기에 공사관 근무 |
| 1867년 9월 1일 | 베른 주재 벨기에 공사관 근무 |
| 1870년 10월 2일 - 1878년 6월 30일 | 에노 주지사 |
| 1882년 5월 5일 - 1892년 3월 29일 | 가톨릭당 소속 필리프빌 선거구 의원 |
| 1884년 10월 26일 - 1892년 3월 29일 | 벨기에 외무부 장관 |
| 1884년 11월 15일 - 1885년 2월 26일 | 베를린 회담 벨기에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