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하워드 노스럽
1. 개요
존 하워드 노스럽은 미국의 생화학자이다. 1891년 뉴욕에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아세톤과 에탄올의 발효 연구를 수행하며 효소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29년 펩신을 분리하여 결정화하고 단백질임을 밝혀냈다. 또한 박테리오파지를 분리하여 결정화하고 핵단백질임을 밝혀내는 등 효소 및 바이러스 연구에 기여했다. 1946년 제임스 B. 섬너, 웬델 메러디스 스탠리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1987년 애리조나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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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자살 -
프리모 레비
이탈리아 유대계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경험을 기록한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자전적 이야기 《주기율표》 등을 저술했으며,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후 귀환하여 1987년 사망했다. -
1987년 자살 -
엘리자베스 하트먼
엘리자베스 하트먼은 미국의 배우로, 영화 《푸른 빛깔의 한 조각》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NIMH의 비밀》에서 브리스비 부인의 목소리를 연기했고, 우울증을 앓다가 1987년 자살했다. -
용커스 출신 -
스티븐 타일러
스티븐 타일러는 1970년 결성된 록 밴드 에어로스미스의 리드 싱어로서, 1970년대 밴드의 성공을 이끌었고 잦은 투어와 약물 남용으로 침체기를 겪었지만 재결합에 성공하여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으며, 2024년 건강 문제로 인해 투어에서 은퇴했다. -
용커스 출신 -
존 켄드릭 뱅스
존 켄드릭 뱅스는 미국의 작가이자 편집자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초자연적 허구를 바탕으로 한 '뱅스 판타지' 스타일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고, 뉴욕 주 요커스 시장 선거 출마, 교육위원회 위원 활동, 제1차 세계 대전 중 YMCA와 연합군을 위한 강연 활동 등 공직 활동 및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
독일계 미국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독일계 미국인 -
앤드루 존슨
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은 남북전쟁 이후 온건한 재건 정책으로 의회와 갈등을 겪고 탄핵 소추를 받았으나 부결되었으며, 이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논쟁적인 인물이다.
2. 생애
존 하워드 노스럽은 뉴욕 주 욘커스에서 태어나 1915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육군 화학전 부대에서 아세톤과 에탄올을 발효를 통해 제조하는 연구를 수행하면서 효소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1919년 위의 소화 효소인 펩신 분리 및 결정화에 성공하여 단백질임을 확인했고, 1938년에는 박테리오파지 결정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하여 핵산과 단백질의 혼합물임을 밝혔다. 트립신, 펩시노겐, 키모트립신, 카르복시펩티다제의 결정 및 분리도 그의 업적이다. 효소 분석을 위해서는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질 추출이 필요하며,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결정을 X선 회절하여 조사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연구는 효소 구조 해명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1916년부터 1961년까지 록펠러 연구소에 재직했고, 1949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교수로 취임했다. 은퇴 후 애리조나 주 위켄버그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존 하워드 노스럽은 1891년 뉴욕주 욘커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 아이제이아 노스럽은 컬럼비아 대학교 동물학 강사였고, 어머니 앨리스 리치 노스럽은 헌터 칼리지 식물학 교수였다. 아버지는 노스럽이 태어나기 2주 전 실험실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노스럽은 욘커스 고등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12년에 학사, 1915년에 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미국 화학전 부대에서 아세톤과 에탄올의 발효 생산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이는 효소 연구로 이어졌다.
2.2. 연구 활동
1916년부터 1961년 은퇴할 때까지 뉴욕시에 있는 록펠러 의학 연구소(현 록펠러 대학교)에서 근무했다. 1929년 펩신을 분리하여 결정화하고, 이것이 단백질임을 밝혀냈다. 1938년에는 최초의 박테리오파지 (세균을 공격하는 작은 바이러스)를 분리하여 결정화하고, 이것이 핵단백질임을 밝혀냈다. 펩신의 전구체인 펩시노겐, 트립신, 키모트립신, 카르복시펩티다제를 분리하여 결정화했다. 1949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세균학 교수로 합류했고, 나중에는 생물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2.3. 개인적인 삶
1917년, 노스럽은 루이스 워커(1891–1975)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아들 존은 해양학자가 되었고, 딸 앨리스는 노벨상 수상자인 프레더릭 C. 로빈스와 결혼했다. 가족은 뉴욕주 마운트 버논 외곽의 작은 집에 살았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노스럽이 더 나은 직장을 찾게 되자, 가족은 매사추세츠주 코튜잇에 집을 샀다. 이 이사로 노스럽은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연구실까지의 통근 시간을 단축시켰고, 그가 매우 좋아했던 야생과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노스럽은 1987년 애리조나주 위켄버그에서 자살했다.
3. 수상 경력
* 1939년: 다니엘 지로드 엘리엇 메달
* 1946년: 노벨 화학상
4. 업적 및 영향
노스럽은 펩신을 분리하여 결정화하고, 이것이 단백질임을 밝혀냈다. 1938년에는 최초로 박테리오파지 (세균을 공격하는 작은 바이러스)를 분리하여 결정화하고, 이것이 핵단백질임을 밝혀냈다. 또한 펩신의 전구체인 펩시노겐, 트립신, 키모트립신, 카르복시펩티다제를 분리하여 결정화했다.
1919년에는 위의 소화 효소인 펩신의 분리 및 결정화에 성공하여 그것이 단백질임을 확인했다. 1938년에는 박테리오파지의 결정화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으며, 이것이 핵산과 단백질의 혼합물임을 밝혔다. 효소를 분석하려면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질을 추출해야 하며,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결정을 X선 회절하여 조사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연구는 효소의 구조 해명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업적으로는 트립신, 펩시노겐, 키모트립신 및 카르복시펩티다제의 결정 및 분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