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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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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외곽을 봉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980년 5월 23일, 11공수여단 병사들이 주남마을을 지나던 미니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승객 1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희생자 중에는 10대 여성 4명이 포함되었으며, 부상자 중 2명은 사후에 총살되었다. 계엄군은 이 사건을 단순 추락 사고로 위장했으며, 이 외에도 지원동 일대에서 적십자 차량 방화, 트럭 운전사 살해 및 사고 위장 등 민간인 학살 은폐 시도가 있었다.

2.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외곽 봉쇄와 민간인 학살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 계엄군은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5월 21일 오후 4시, 전남도청에 배치되었던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은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하여 지원동 주남마을, 녹동마을에 주둔하며 차량 통행을 봉쇄하였다.

계엄군은 광주교도소, 광주 톨게이트, 송정리 공군 부대 등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여, 평소 시외를 드나들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다.[1]

2. 1.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 사건

1980년 5월 23일, 주남마을을 지나던 미니버스에 계엄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1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1][2]

희생자 중에는 손옥례, 고영자, 김춘례, 박현숙 등 10대 여성 4명도 포함되었는데, 당시 손옥례의 시신에서는 대검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좌유방자창이, 박현숙의 시신에서도 자창이 발견되었다.[3] 이들에게는 성폭행 정황까지 의심되는 잔혹한 흔적이 발견되어 시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계엄군은 부상자 3명 중 남성 2명을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에 따르면, 11공수여단 62대대 5지역대 소속 병사들이 부상자를 데려온 것이 문제가 되자, 모 중사 등 3명이 부상자들을 처리했다. 이들은 인근 야산 중턱으로 리어카를 몰고 가 부상자들을 사살했고, 묻고 났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고 증언했다.[4]

이후 계엄군은 시신과 함께 버스를 강가에 추락시켜 단순 추락 사고로 위장하려 했다.[4]

2. 2. 지원동 일대 민간인 학살 은폐 조작

계엄군은 주남마을에서 미니버스 총격 및 추락 사건 외에도 지원동 일대에서 여러 만행을 저질렀다. 적십자 활동을 하던 차량에 총격을 가한 후 차량을 불태워 화재로 인한 교통사고로 위장하고, 트럭 운전사를 살해한 후 너릿재 터널에 트럭을 밀어 넣고 불태워 화재로 인한 교통사고로 위장하기도 했다.[5]

2. 3. 광주 외곽 완전 봉쇄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에서의 집단 발포 직후,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은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하여 지원동 주남마을과 녹동마을에 주둔하면서 차량 통행을 막았다.[1]

5월 23일, 주남마을을 지키던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 병사들은 지나가던 버스에 총격을 가하고 강가에 빠뜨려, 승객 1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11공수여단은 15명을 사살했다고 보고했다.[1][2]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손옥례, 고영자, 김춘례, 박현숙 등 10대 여성 4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손옥례의 시신에서는 대검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좌유방자창이, 박현숙의 시신에서도 자창이 발견되었다.[3]

같은 날 오후, 11공수여단 62대대 5지역대 소속 병사 몇 명은 부상자 3명 중 남자 2명을 주남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국방부 과거사위의 관련자 면담에 따르면, 본부의 모 소령이 부상자를 데려온 것을 책망하자, 11공수여단 62대대 5지역대 모 중사 등 3명이 부상자를 처리했다. 인근 야산 중턱으로 리어카를 몰고 간 병사는 누군가가 안락사를 시키자고 한 후 사살했고, 묻고 났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으며, 해당 버스는 시신과 함께 강가에 추락시켜 단순 추락 사고로 처리했다고 증언했다.[4]

지원동에서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 및 추락 사건 외에도 적십자 활동을 하던 차량에 총격을 가한 후 차량을 불태워 화재로 인한 교통사고로 위장한 사건, 트럭 운전사를 살해한 후 너릿재 터널에 트럭을 밀어 넣고 소각해 화재로 인한 교통사고로 위장한 사건도 있었다.[5]

계엄군은 담양으로 나가는 광주교도소, 장성으로 나가는 광주 톨게이트, 나주로 나가는 송정리 공군 부대 등 광주 외곽을 완전히 봉쇄하고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여, 평소 시외를 드나들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다.[1]

참조

[1] 보고서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 2007-07-24
[2] 뉴스 과거사위, 5.18 핵심부분 진상 비켜가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07-07-24
[3] 보고서
[4] 보고서
[5]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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