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라오스 대사관
1. 개요
주한 라오스 대사관은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라오스 외교 공관이다. 1950년대에 대한민국과 라오스는 서로를 승인했으며, 1974년 수교 후 대한민국은 비엔티안에 대사관을 개설했으나 라오스는 대한민국에 대사관을 개설하지 않았다. 1975년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1995년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1996년 대한민국이 비엔티안에 대사관을 재개설했고, 2001년 라오스 정부가 서울에 주한 라오스 대사관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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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어 이름 | ສະຖານທູດລາວ ປະຈໍາ ສ.ເກົາຫຼີ |
|---|---|
| 설립일 | 2001년 1월 |
| 관할 | 대한민국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657-9 |
| 상급 기관 | 외교부 |
| 웹사이트 | 주한 라오스 대사관 웹사이트 |
| 관련 사진 | 주한라오스대사와 기념촬영하는 문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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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 | 안병용 의정부시장, 티엥 부파 신임 주한 라오스 대사와 환담 "내륙 고립국 벗어나 '메콩 중심국' 변신 중...한국의 적극 투자 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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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라오스 관계 -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은 대한민국 정부가 라오스에 설치한 외교 공관으로, 김영선, 최병구, 안재홍, 조원빈, 신성순, 이두영, 신성철, 윤강현, 신창호, 강명구가 역대 대사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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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알카에다는 압둘라 아잠에 의해 1988년 설립되어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었던 국제적인 지하디스트 테러 조직으로, 샤리아 법에 기반한 세계적인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며 9·11 테러를 비롯한 수많은 테러에 연루되어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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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세례명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새로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 변화에서 유래하여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반적인 이름 형태로 정착되었고,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축일로 기념되기도 한다. -
대한민국의 대외 관계 -
판문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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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외 관계 -
6자 회담
2. 역사
대한민국과 라오스는 1950년대에 서로를 승인했으나, 정식 수교는 1974년에 이루어졌다. 1975년 라오스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 관계가 단절되었다가, 1995년에 재개되었다. 대한민국은 1996년에, 라오스는 2001년에 상대국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2.1. 초기 관계 (1950년대 ~ 1975년)
대한민국과 라오스 왕국은 1950년대에 서로를 승인했다. 1950년대 후반 이승만은 공산 반군과 교전 중인 라오스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식 수교까지는 맺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1973년 11월 1일에 라오스와 통상 대표 관계를 수립했으며 1974년 6월 22일에 라오스와 수교했다. 1974년 8월 14일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라오스 비엔티안에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으나 라오스는 대한민국에 대사관을 개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라오스에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기 직전인 1975년 7월 24일에 외교 관계가 단절되면서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이 철수했다.
2.2. 관계 단절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 (1975년 ~ 1995년)
라오스는 1975년 7월 24일에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이 철수했다. 이후 라오스는 한동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단독으로 교류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 공식 참가하면서 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었고, 1995년 10월 25일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2.3. 관계 재개와 발전 (1995년 ~ 현재)
대한민국은 1995년 10월 25일에 라오스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1996년 9월 19일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라오스 비엔티안에 주 라오스 대한민국 대사관을 재개설했고, 2001년 1월에는 라오스 정부가 대한민국 서울에 주한 라오스 대사관을 개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