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니마 스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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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로니마 스파나는 1661년 스페인 갤리선단의 물주 딸로 태어나 약제사이자 점성술사로 활동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아쿠아 토파나 제조법을 배워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주 고객으로 삼아 판매했으며, 점성술사로 귀족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매원 조반나 데 그란디스의 체포로 아쿠아 토파나 사업이 발각되었고, 1659년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자백 후 1659년 7월 5일 동업자들과 함께 로마 캄포 데 피오리에서 처형되었다. 스파나 사건은 도시전설의 소재가 되었으며,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지로니마 스파나는 1661년 스페인 갤리선단의 물주이자 팔레르모 소재 스페인 병원의 지출감독관인 니콜로 스파노의 딸로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스파노가 죽은 후 줄리아 만자르디의 양딸이 되었는데, 만자르디는 1624년 부유한 부동산 투자가인 체자레 란체티와 재혼했다. 줄리아 만자르디는 팔레르모에서 아쿠아 토파나를 유포한 것으로 악명 높은 줄리아 토파나였다.
1624년, 스파나 가족은 로마로 이주했다. 1643년 로마 룬가라 가에 정착했을 때, 스파나는 피렌체 출신 양곡 투기꾼 니콜로 카이오치와 결혼한 상태였다. 카이오치는 외도와 사치를 일삼았고, 1640년 이후 스파나와 같이 살지 않았으며, 1655년 빚쟁이를 피해 로마를 떠났다.[2] 스파나는 아쿠아 토파나 제조 및 판매, 점성술사 활동을 통해 범죄 활동을 시작했다.[2]
스파나의 독약 사업은 그가 고용한 판매원 중 한 명인 조반나 데 그란디스가 독약을 팔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면서 교황청 당국에 알려졌다.[1] 1659년 1월 31일, 그란디스는 토르 디 노나에서 잡혀 심문을 받던 중 스파나에 대해 발설하였다.[1]
2. 출생과 유년 시절
3. 범죄 활동
3. 1. 아쿠아 토파나 제조 및 판매
스파나는 대외적으로 점성술사이자 약제사로 활동하면서 양어머니인 만자르디로부터 아쿠아 토파나의 제조법을 배우고, 만자르디와 함께 아쿠아 토파나를 사람들에게 팔았다. 특히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둔 여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했다.[2]
만자르디는 1651년 1월 17일 잠든 채 세상을 떠났으며, 누구도 그가 독극물을 제조하고 팔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2] 스파나는 만자르디의 일을 이어받아 사업을 크게 키웠다. 1650년대에 스파나는 여성 판매원들을 여럿 고용해 아쿠아 토파나를 적극적으로 유포했다.
3. 2. 점성술사 활동
스파나는 대외적으로 점성술사이자 약제사로 활동하면서 양어머니인 만자르디로부터 아쿠아 토파나의 제조법을 배우고, 만자르디와 함께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특히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둔 여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했다.[2]
한편, 스파나는 로마에서 유명한 점성술사로, 귀족들을 상대로 미래를 예견하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 귀족 살롱에 어울리는 복장과 품행으로 귀족들과 친분을 쌓았고, 친한 귀부인들은 스파나에게 마차를 빌려주기도 하여 마차를 타고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스파나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2]
4. 기소 및 처형
스파나는 1659년 2월 22일 체포되어 토르 디 노나에 있는 교황청 산하 감옥으로 압송되었다.[2] 스파나는 심문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혐의를 부인하며 자백을 거부했다.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사제에게도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자백 없이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기에 당국은 어려움을 겪었다. 스파나는 오랫동안 저항하다 1659년 6월 20일이 되어서야 장문의 자백서에 서명했다. 아쿠아 토파나와 관련해 스파나는 "내가 독을 건네준 사람 수가 내 머리에 난 머리카락의 수보다 많다"고 진술했다.[2]
스파나 사건에 대한 수사는 1660년 3월에 마무리되었다.
4. 1. 스파나 사건 관련 인물
조반나 데 그란디스는 스파나가 고용한 판매원 중 한 명으로, 독약을 팔던 중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스파나의 독약 사업이 교황청 당국에 알려지게 되었다.[1] 1659년 1월 31일, 그란디스는 토르 디 노나에서 잡혀 심문을 받던 중 스파나에 대해 발설하였다.[1]
1659년 2월 22일 스파나가 체포되어 토르 디 노나에 있는 교황청 산하의 감옥으로 압송되었다.[2] 스파나는 공범들과 과거 고객들의 고발과 반복되는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고발된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2] 스파나는 오랫동안 저항하다 1659년 6월 20일이 되어서야 장문의 자백서에 서명했다.[2]
스파나 사건에 대한 수사는 1660년 3월에 마무리되었다. 수사 결과, 아쿠아 토파나를 팔거나 사용한 죄로 고발된 사람은 40명에 가까웠으며, 여기에는 스파나 본인과 동업자인 조반나 데 그란디스, 마리아 스피놀라, 그라치오사 파리나, 라우라 크리스폴디가 포함됐다. 스파나와 동업자들은 1659년 7월 5일 로마 캄포 데 피오리에서 처형됐다.
5. 영향
지로니마 스파나와 스파나 사건은 이후 자극적인 도시전설의 소재가 되었으며, 스파나의 행적은 양어머니인 줄리아 토파나의 행적과 혼동되기도 했다.
6. 대중 문화
스파나 사건은 안나 마졸라의 역사 소설 《비밀의 서(The Book of Secrets)》의 소재가 되었다. 이 소설은 2024년 3월 오리온 픽션에서 출판되었다.
참조
[1]
서적
The Black Widows of the Eternal City: The True Story of Rome’s Most Infamous poisoners
https://books.google[...]
[2]
서적
Toxicology in the Middle Ages and Renaissance
Elsevier Scienc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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