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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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평군은 남한강 유역의 넓은 들과 숫돌 생산지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영토로, 지현현으로 불리다가 757년 지평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광주목의 속현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현감을 두었으며, 양근군에 편입되었다가 지평현으로 복귀했다. 1895년 춘천부 지평군, 1896년 경기도 지평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908년 양근군과 통합되어 양평군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야별초 출신들이 몽골군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고, 조선 시대에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지평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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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기본 정보
한자 표기砥平郡
로마자 표기Jipyeong-gun
소멸일1914년
설명군을 합치는데 관한 안건에 따라 폐지
역사
설명이홍직의 『증보 새國史事典 (ENCYCLOPEDIA OF KOREAN HISTORY [증보] 새 국사사전)』에 기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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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명 유래

지평이라는 지명은 남한강 유역의 비교적 낮고 넓은 들을 차지하고, 칼과 낫 등의 농기구를 가는 데 사용되는 숫돌이 많이 생산된 데서 유래하였다. '숫돌 지(砥)' 자와 '평평할 평(平)' 자를 써서 '지평(砥平)'이라 칭하게 되었다.

3. 역사

지평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에, 후에는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고구려 때는 지현현(砥峴縣)이었다가 신라 경덕왕지평현(砥平縣)으로 고쳐 삭주군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숙종 때 양근군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3.1. 삼국시대 ~ 고려시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로 고구려에, 후에는 신라에 속했다. 삼국시대에는 지현현(砥峴縣)으로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지평현(砥平縣)으로 개칭, 삭주군(현 춘천시)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년) 광주목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378년(고려 우왕 4년) 감무가 파견되었고, 1391년(고려 공양왕 3년)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3.2. 조선시대 ~ 일제강점기

1413년(조선 태종 13년) 현감을 두었다. 1685년(조선 숙종 11년) 양근군에 편입되었으나, 1688년(조선 숙종 14년) 다시 지평현으로 복귀했다. 1895년(조선 고종 32년) 춘천부 지평군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건양 원년) 경기도 지평군으로 개편되었고, 1908년(융희 2년) 9월 양근군과 통합되어 양평군으로 개편되었다. 당시 지평군은 군내면(郡內面), 남면(南面), 상서면(上西面), 하서면(下西面), 하북면(下北面), 상북면(上北面), 상동면(上東面), 하동면(下東面)의 8개 면을 관할했다.

4. 특징

고려시대에 이곳의 야별초 출신들이 몽골군을 격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평구도(平丘道)에 속하는 전곡역(田谷驛)과 백동역(白冬驛)이 있어 원주를 거쳐 영남지방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