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용장성
1. 개요
진도 용장성은 고려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1270년부터 1273년까지 근거지로 삼았던 성터이다. 고려 원종 11년 몽골과 화친 후 삼별초는 진도 용장으로 근거지를 옮겨 대몽항쟁을 이어갔다. 용장성은 산성으로, 석축과 용장사, 행궁 터 등이 남아 있으며, 성의 길이는 12.85km, 최고 높이는 4m이다. 삼별초 대몽항쟁의 상징적인 유적지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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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의 문화유산 -
진도읍성
진도읍성은 1437년 진도군 복군 시 축조된 조선시대 읍성으로, 현재 진도읍 철마산 아래 평지와 구릉 지대에 사각형 형태로 남아 있으며, 군강공원 동쪽과 북쪽에 잔존 성벽이 많다. -
진도군의 문화유산 -
진도북놀이
진도북놀이는 전라남도 진도에서 전승되는 민속 예술로, 모심기 노동요인 모북에서 유래하여 무굿과 풍물놀이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북춤이며, X자형 북채놀림과 독특한 발동작이 돋보인다. -
삼별초 -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의 항쟁은 최씨 무신정권의 군사조직인 삼별초가 원종의 친몽 정책과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1270년 강화도에서 시작, 배중손을 중심으로 왕족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며 진도와 제주도에서 3년간 고려-원 연합군에 맞서 싸웠으나 1273년 진압되어 고려의 몽골 지배 강화와 원의 제주도 직접 통치를 가져왔으며, 민족적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되지만 무신정권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다. -
삼별초 -
최우
최우는 최충헌의 아들로 고려 무신정권을 계승하여 정방과 서방을 설치하고 강화도 천도를 단행했으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다 1249년에 사망했다. -
전라남도의 성 -
순천왜성
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
전라남도의 성 -
장성 입암산성
장성 입암산성은 전라남도 장성군 입암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1256년 송군비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시대 개축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중요한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고, 15km에 달하는 성벽과 남문, 북문, 장기간 방어를 위한 물 확보 설계가 특징이며 주변 관광 명소와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2. 역사적 배경
2.1. 몽골의 침입과 고려의 강화도 천도
2.2. 삼별초의 항쟁과 진도 이전
3. 용장성의 구조와 시설
3.1. 지리적 특징
3.2. 성벽과 성문
3.3. 주요 시설
4. 역사적 가치와 의의
4.1. 삼별초 대몽항쟁의 상징
4.2. 축성 기술과 궁궐 건립
5. 보존 및 관리 현황
5.1. 발굴 조사 및 연구
5.2. 보존 및 복원 노력
6. 현지 안내문
성(城)이란 일정 지역을 보호하고 행정이나 군사의 중심지로 활용하기 위해 돌이나 흙으로 쌓은 건조물을 말한다. 용장산성은 고려 삼별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고려 원종 11년(1270년)부터 14년(1273년)까지 근거지로 삼았던 성터이다.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몽고군을 상대로 40년 동안 맞서 싸웠으나, 원종 11년(1270년) 마침내 몽고와 화친을 맺고 강화도를 포기하고 수도 개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에 배중손 이하 삼별초의 군사들은 대몽항쟁의 굳은 결의를 다짐하고 왕족인 승화후 온(溫)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아 강화도에서 항쟁하였다. 그러나 강화도가 개경과 너무 가까우므로 장기간 항전에 어려움이 있어 천여 척의 배와 병력, 가족, 물자를 싣고 남천하여 이곳 진도 용장으로 옮겨왔는데, 이 때 쌓은 성이 옹장성이다. 주변이 산으로 이루어진 산성안에 건물지가 남아 있는데, 웅장한 석축과 용장사 그리고 행궁 터가 남아 있다. 현재 성의 길이는 12.85km이며 가장 높은 곳은 4m 정도이다. 삼별초 대몽항쟁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고 나름의 궁전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