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북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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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도북놀이는 전라남도 진도 지역에서 전해지는 북놀이의 일종으로, 어깨에 북을 메고 쌍북채를 사용하여 가락과 묘기를 부리는 춤이다. 모북에서 유래되었으며, 꽹과리, 징, 북 등의 타악기와 춤사위가 어우러져 발전했다. 진도 지역 무속인들의 재창조를 통해 씻김굿, 다시래기 등과 함께 마을 행사에서 공연되었으며,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이희춘, 김병천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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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놀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진도북놀이 | |
일반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전라남도 |
군 | 진도군 |
읍/면 | 의신면 |
번지 | 침계리 49-1번지 |
문화재 정보 | |
유형 | 무형문화재 |
지정 번호 | 18 |
지정일 | 1987년 8월 25일 |
기타 정보 | |
문화재청 | 22,00180000,36 |
2. 역사
진도북놀이는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서 전해오는 북놀이로, 북을 장구처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쌍북채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가락과 묘기를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북놀음의 일종이다. 북놀이의 유래는 모북(일명 모방고)에서 시작되었는데, 모북을 칠 때는 삿갓을 쓰고 모꾼 앞에서 북채를 양손에 갈라 쥐고 지휘봉 삼아 뜬 모나 줄 틀린 모를 지적하며 북을 치고 모소리(일명 상사소리)에 맞춰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이때 꽹과리, 징, 북 등의 타악기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고, 모방고굿, 농작굿, 길군악 등에 춤사위가 곁들여지면서 북춤놀이, 북춤굿으로 발전하였다.
진도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강인한 생명력과 뛰어난 기예를 가진 무속인들이 많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을의 여러 예능과 놀이를 재창조하는데 기여했는데, 씻김굿, 관가, 다시래기, 북춤, 신청농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놀이들은 마을 축제나 장례, 결혼 등 의식 절차나 농사 과정에서 행해졌으며, 무굿과 풍물놀이에서 시작된 북춤은 가장 오래된 놀이이자 소리와 춤사위로 모든 민속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진도북춤은 느린 굿거리에서 무게 있는 춤을 추며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박하게 뛰고 힘차게 북을 울려 생동감을 주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춤사위를 연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춤사위 가락은 북판을 칠 때 가위질하듯 X자형으로 번갈아 치고, 가락을 넘길 때는 끝에서 앞으로 밀어 배를 터주는 기법을 사용한다. 발 동작은 제자리춤, 전후 전진 및 후진, 제자리 후진, 뛰면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기법 등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진도북춤은 산청농악과 지산면 소포농악과 같은 마을 풍물을 중심으로 전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진도읍 성내리에 무속인 중심의 예기조합이 설립되면서 북춤 전수가 본격화되었다. 예기조합은 회장 최상인, 부회장 채중인을 중심으로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풍당굿을 행하였고, 이때 설북 김행원 씨의 뛰어난 북춤놀이 기능은 양태옥, 소포농악의 박관용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가락은 박병천, 박병윤, 박복남으로 이어졌고, 소포리농악대의 설북 박태주의 기능은 박관용, 김관우를 거쳐 김내식, 조열환 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이 창립되어 후진 양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84년에는 북춤놀이보존회가 조직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명무전에 북춤을 선보여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1985년 광주남도문화예술관에서 발표회를 열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참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다른 농악과 마찬가지로 무명바지 저고리에 짚신 차림이었으나, 점차 전문성을 띤 농악으로 변화하면서 복색이 화려해졌다. 최근에는 북춤이 더욱 오락적이고 예술적으로 변하면서 농악 복색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2. 1. 기원
진도북놀이는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서 전해오는 북놀이로, 북을 장구처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쌍북채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가락과 묘기를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북놀음의 일종이다. 북놀이의 유래는 모북(일명 모방고)에서 시작되었는데, 모북을 칠 때는 삿갓을 쓰고 모꾼 앞에서 북채를 양손에 갈라 쥐고 지휘봉 삼아 뜬 모나 줄 틀린 모를 지적하며 북을 치고 모소리(일명 상사소리)에 맞춰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이때 꽹과리, 징, 북 등의 타악기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고, 모방고굿, 농작굿, 길군악 등에 춤사위가 곁들여지면서 북춤놀이, 북춤굿으로 발전하였다.진도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강인한 생명력과 뛰어난 기예를 가진 무속인들이 많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을의 여러 예능과 놀이를 재창조하는데 기여했는데, 씻김굿, 관가, 다시래기, 북춤, 신청농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놀이들은 마을 축제나 장례, 결혼 등 의식 절차나 농사 과정에서 행해졌으며, 무굿과 풍물놀이에서 시작된 북춤은 가장 오래된 놀이이자 소리와 춤사위로 모든 민속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진도북춤은 느린 굿거리에서 무게 있는 춤을 추며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박하게 뛰고 힘차게 북을 울려 생동감을 주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춤사위를 연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춤사위 가락은 북판을 칠 때 가위질하듯 X자형으로 번갈아 치고, 가락을 넘길 때는 끝에서 앞으로 밀어 배를 터주는 기법을 사용한다. 발 동작은 제자리춤, 전후 전진 및 후진, 제자리 후진, 뛰면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기법 등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진도북춤은 산청농악과 지산면 소포농악과 같은 마을 풍물을 중심으로 전수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진도읍 성내리에 무속인 중심의 예기조합이 설립되면서 북춤 전수가 본격화되었다. 예기조합은 회장 최상인, 부회장 채중인을 중심으로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풍당굿을 행하였고, 이때 설북 김행원 씨의 뛰어난 북춤놀이 기능은 양태옥, 소포농악의 박관용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가락은 박병천, 박병윤, 박복남으로 이어졌고, 소포리농악대의 설북 박태주 기능은 박관용, 김관우를 거쳐 김내식, 조열환 씨 등이 활동하고 있다.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이 창립되어 후진 양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84년에는 북춤놀이보존회가 조직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명무전에 북춤을 선보여 전국적으로 알려졌으며, 1985년 광주남도문화예술관에서 발표회를 열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참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다른 농악과 마찬가지로 무명바지 저고리에 짚신 차림이었으나, 점차 전문성을 띤 농악으로 변화하면서 복색이 화려해졌다. 최근에는 북춤이 더욱 오락적이고 예술적으로 변하면서 농악 복색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2. 2. 발전
진도북놀이는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서 전해오는 북놀이로, 북을 장구처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쌍북채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가락과 묘기를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북놀음의 일종이다. 북놀이의 유래는 모북(일명 모방고)에서 시작되었으며, 모북을 칠 때는 삿갓을 쓰고 모꾼 앞에서 북채를 양손에 갈라 쥐고 북채를 지휘봉 삼아 뜬포나 줄틀린 모폭을 지적하여 북을 치며 모소리(일명 상사소리)에 맞추어 부르며 북놀이춤의 모심가를 하면서 피로를 느끼지 않고 작업이 진행될 때 꽹과리·징·북 등은 필수 타악기로 구성되며 모방고굿·농작굿·길군악 등에 춤사위가 곁들여지고 북춤놀이·북춤굿이 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진도는 섬 지역으로서 강인한 생명력과 기예에 뛰어난 무속인이 많이 존재하며, 이들은 마을의 여러 예능과 놀이를 재창조하는데 일조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씻김굿, 다시래기, 북춤, 신청농악 등이다. 이러한 놀이들은 마을 축제나 장례, 결혼 등 의식 절차나 농사 과정에서 행해졌고, 이러한 문화의 원류는 무굿과 풍물놀이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중에서 북춤은 가장 오래된 놀이이며 소리와 춤사위로 모든 민속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춤의 특징은 느린 굿거리에서 무게 있는 춤을 추며 내면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춤사위를 구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투박스럽게 뛰고 힘차게 북을 울려 생동감을 주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춤사위를 연출하기도 하는 등 예술의 다양함을 맛볼 수 있다. 춤사위의 가락으로 북판을 칠 때 가위질하듯 X자형으로 번갈아 치고 가락을 넘길 때는 끝에서 앞으로 밀어 배터 주는 기법과 주로 발동작은 제자리 춤, 전후로 전진, 후진, 제자리 후진하기, 뛰면서 원선상을 회전하는 기법으로 아주 독특하다.
진도북춤의 전수는 산청농악과 지산면 소포농악과 같은 마을 풍물을 중심으로 한 전수 과정을 통해 발전하던 것을 일제 강점기 진도읍 성내리에 무속인 중심의 산청에 전통 민속 국악기를 전수하는 예기조합을 성립하여 북춤을 전수하기 시작하면서 회장 최상인, 부회장 채중인을 중심으로 매년 당대나 풍년을 기원하는 풍당굿을 행하였다. 이때 설북 김행원 씨는 북춤놀이가 뛰어났고 이 기능은 양태옥, 소포농악의 박관용을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가락은 박병천, 박병윤, 박복남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소포리 농악대에 설북 박태주의 기능은 박관용, 김관우로 이어져서 김내식, 조열환 씨와 활동하고 있다.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이 창립되어 후진 양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84년 북춤놀이보존회를 조직하였다. 1983년·1984년·1985년 명무전에 북춤을 선보여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85년 광주남도문화예술관에서 발표회를 가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88 올림픽대회 참가와 1993년 대전박람회에 참가한 바 있다.
복색은 처음에는 다른 농악과 마찬가지로 무명바지 저고리에 짚신 차림이었으나 점차 전문성을 띤 농악으로 변하여 화려해졌고, 근래에 와서는 북춤이 한층 오락적이거나 예술적으로 변하면서 농악 복색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2. 3. 전승
전라남도 진도 지방에서 전해오는 북놀이로, 북을 장구처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쌍북채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가락과 묘기를 변화무쌍하게 구사하는 북놀음의 일종이다. 북놀이의 유래는 모북(일명 모방고)에서 시작되었으며, 모북을 칠 때는 삿갓을 쓰고 모꾼 앞에서 북채를 양손에 쥐고 지휘봉 삼아 뜬포나 줄 틀린 모폭을 지적하며 북을 치고 모소리(일명 상사소리)에 맞춰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이때 꽹과리, 징, 북 등은 필수 타악기로 구성되며 모방고굿, 농작굿, 길군악 등에 춤사위가 곁들여지고 북춤놀이, 북춤굿이 되었다.진도는 섬 지역으로서 강인한 생명력과 기예에 뛰어난 무속인이 많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마을의 여러 예능과 놀이를 재창조하는데 일조했다. 씻김굿, 관가, 다시래기, 북춤, 신청농악 등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놀이들은 마을 축제나 장례, 결혼 등 의식 절차나 농사 과정에서 행해졌다. 이러한 문화의 원류는 무굿과 풍물놀이에서 시작되었고, 그중에서 북춤은 가장 오래된 놀이이며 소리와 춤사위로 모든 민속예술의 기초가 되었다.
춤의 특징은 느린 굿거리에서 무게 있는 춤을 추며 내면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춤사위를 구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투박스럽게 뛰고 힘차게 북을 울려 생동감을 주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춤사위를 연출하기도 하는 등 예술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춤사위의 가락으로 북판을 칠 때 가위질하듯 X자형으로 번갈아 치고 가락을 넘길 때는 끝에서 앞으로 밀어 배터주는 기법과 주로 발동작은 제자리춤, 전후로 전진, 후진, 제자리 후진하기, 뛰면서 원선상을 회전하는 기법으로 아주 독특하다.
진도북춤은 산청농악과 지산면 소포농악과 같은 마을 풍물을 중심으로 전수되어 발전하다가, 일제강점기에 진도읍 성내리에 무속인 중심의 산청에 전통 민속 국악기를 전수하는 예기조합이 설립되어 북춤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회장 최상인, 부회장 채중인을 중심으로 매년 당대나 풍년을 기원하는 풍당굿을 행하였고, 이때 설북 김행원씨의 북춤놀이가 뛰어났다. 이 기능은 양태옥, 소포농악의 박관용을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가락은 박병천, 박병윤, 박복남으로 이어졌다. 또한 소포리농악대의 설북 박태주의 기능은 박관용, 김관우로 이어져서 김내식, 조열환씨와 활동하고 있다.
1954년 진도민속국악원이 창립되어 후진 양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1984년 북춤놀이보존회를 조직하였다. 1983년, 1984년, 1985년 명무전에 북춤을 선보여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85년 광주남도문화예술관에서 발표회를 가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988년 '88올림픽대회'와 1993년 대전박람회에 참가했다.
복색은 처음에는 다른 농악과 마찬가지로 무명바지 저고리에 짚신 차림이었으나 점차 전문성을 띤 농악으로 변하여 화려해졌고, 근래에는 북춤이 한층 오락적이거나 예술적으로 변하면서 농악 복색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987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3. 특징
3. 1. 춤사위
3. 2. 복색
4. 보유자
(생년월일)
(李熙春)
(金炳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