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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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주 의기사는 논개(論介)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사당 내부에는 일제강점기 명기 산홍의 시, 정약용의 《의기사기》와 《의기사중건기》 시가 걸려 있으며, 입구에는 설창수의 〈의랑 논개의 비〉와 변영로의 《논개시비》가 있다. 논개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2008년 국가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영정을 교체하여 봉안했다. 영정은 윤여환 교수가 제작했으며, 정본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진주 의기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진주 의기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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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의기사 논개사당
국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자료
번호7
지정일1983년 7월 20일
주소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500-8번지
시대조선 영조 16년(1740년)
관리진주시
수량1동
꼬리표본성동
문화재청 ID31,0007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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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헌시

의기사 정면 간판 좌측에는 일제 강점기 명기 산홍(山紅)의 시가 걸려 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산홍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는데, 을사오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친일파 이지용이 큰 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자, 산홍은 "비록 첩이 천한 기생이지만 사람 구실을 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며 꾸짖은 의기 높은 기생이었다. 정면 우측에는 정약용의 《의기사기》와 《의기사중건기》 시 1수가 판각되어 걸려 있다.

의기사 입구에는 논개의 충절을 찬양한 〈의랑 논개의 비〉가 있는데, 개천예술제의 창시자이자, 지방 향토 시인인 설창수가 1954년에 글을 짓고, 오제봉이 글을 썼다. 진주성 입구에는 변영로의 《논개시비》가 서 있다.

설창수 시인이 지은 의랑논개의 비
설창수 시인이 지은 의랑논개의 비

3. 영정

1960년 의기사가 중건된 이후 김은호가 그린 논개 영정이 봉안되어 왔지만, 복식과 머리 모양 등을 고증한 결과 당대와 맞지 않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진주시와 장수군은 전국 현상 공모와 과학적인 고증을 거쳐, 2008년 2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된 영정을 2008년 5월 23일 교체하여 봉안하였다.

영정 작업에는 충남대학교 윤여환 교수가 참여했으며, 비단 바탕에 가로 110cm, 세로 180cm 크기로 제작되었다. 의기사에 있는 것은 복사본이며, 정본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0개의 손가락에 10개의 가락지를 낀 모습이 인상적이다.

4.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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