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악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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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 악후는 춘추 시대 진나라의 군주로, 《사기》, 《좌전》, 《죽서기년》 등 기록에 따라 출신과 생애에 대한 내용이 다르게 전해진다. 《사기》에 따르면 진효후의 아들이며, 재위 6년 만에 죽은 후 곡옥장백의 공격을 받았고, 그의 아들 애후가 즉위했다. 반면, 《좌전》에서는 효후의 아우로, 곡옥장백의 공격으로 수로 달아났으며, 이후 악 땅에 거주하여 악후로 불렸다고 기록한다. 《죽서기년》에는 곡옥장백이 진나라를 공격한 기록이 나타난다.

진 악후
기본 정보
작위
봉국
姬郄 (Jī Xì) 또는 姬都 (Jī Dōu)
생애
즉위기원전 724년
퇴위기원전 718년
아버지희칭 (姬稱)
아들희광 (姬光), 희민 (姬敏)
사망기원전 718년
가계
희 (姬)
진 (晉)
왕조
후임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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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사기》와 《좌전》의 기록이 서로 다르다.

《사기》에 따르면, 진악후는 전 임금 진효후의 아들로, 재위 6년 만에 죽었다. 곡옥장백이 악후 사후 틈을 노려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주 평왕(《사기》 권12 12제후연표에서는 주 환왕)의 명령을 받은 서괵공의 공격을 받아 물러나 악후의 아들 애후가 즉위했다고 전한다.

《좌전》에 따르면, 진 악후는 전 임금 효후의 아우다. 노은공 5년(기원전 718년), 곡옥장백이 , 사람을 거느리고 익(진나라의 서울)을 공격하자, 주 환왕이 윤씨와 무씨(주나라의 세족 대부)를 보내 곡옥장백을 지원하여, 악후는 수로 달아났다. 곡옥장백이 주나라를 배반하자, 주환왕은 경사 괵공 기보를 보내 곡옥을 공격하여 악후의 아들 애후를 세웠다. 이듬해(기원전 717년) 익의 대부 가보(嘉父)가 수에서 악후를 맞이해 왔으나, 이미 애후가 임금이 되었으므로 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악(鄂) 땅에 거주했다. 이 때문에 진나라 사람들이 악후라고 했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곡옥장백 12년(기원전 719년)에 곡옥으로 쳐들어가 곡식을 태우고 귀환했다.

진(晋)의 소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724년, 형인 효후가 사망하자 악후(鄂侯)가 뒤를 이어 진후(晋侯)로 즉위했다.

2.1. 《사기》의 기록

진악후는 전 임금 진효후의 아들로, 재위 6년 만에 죽었다. 곡옥장백이 악후 사후 틈을 노려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주 평왕(《사기》 권12 12제후연표에서는 주 환왕)의 명령을 받은 서괵공의 공격을 받아 물러났다. 악후의 아들 애후가 즉위했다.

2.2. 《좌전》의 기록

진 악후는 전 임금 효후의 아우다. 노은공 5년(기원전 718년), 곡옥장백이 , 사람을 거느리고 익(진나라의 서울)을 공격하자, 주 환왕이 윤씨와 무씨(주나라의 세족 대부)를 보내 곡옥장백을 지원하여, 악후는 수로 달아났다. 곡옥장백이 주나라를 배반하자, 주환왕은 경사 괵공 기보를 보내 곡옥을 공격하여 악후의 아들 애후를 세웠다. 이듬해(기원전 717년) 익의 대부 가보(嘉父)가 수에서 악후를 맞이해 왔으나, 이미 애후가 임금이 되었으므로 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악(鄂) 땅에 거주했다. 이 때문에 진나라 사람들이 악후라고 했다.

2.3. 《죽서기년》의 기록

3. 출신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