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환왕
1. 개요
주 환왕은 주나라의 15대 왕으로, 평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즉위 후 왕권 강화를 시도하며 정나라와의 갈등을 겪었고, 기원전 707년 정나라를 공격했으나 수갈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로 인해 주나라는 더욱 쇠약해졌으며, 괵나라 외 다른 제후국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기원전 697년에 사망했으며, 아들인 주 장왕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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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7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
기원전 8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8세기 중국의 군주 -
진 평공
진 평공은 기원전 777년에 즉위하여 23년간 진나라를 다스린 군주로,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진 문공이 즉위하였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평왕이 사망했을 때 태자 예보가 이미 요절했기 때문에 환왕이 즉위했다.
환왕은 재위 기간 동안 괵공 기보, 괵공 림보(林父), 주공(周公) 흑견(黑肩)이 차례로 경사가 되어 정치를 이끌었다.
기원전 697년에 환왕이 죽고, 아들 장왕 타(佗)가 왕위를 이었다. 환왕은 죽기 전에 장왕을 태자로 정했으나, 차남인 왕자 극(克)을 총애하여 주공 흑견이 왕자 극을 지지하게 되면서 왕실 내부에 분란이 일어났다.
2.1. 정나라와의 갈등
환왕은 즉위한 뒤 경(卿)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주나라와 정(鄭)나라는 서로 가까이 있었는데, 정나라가 경계를 넘어 벼를 베는 일이 잦았다. 환왕은 이를 빌미로 정 장공(鄭 莊公)을 경사(卿士)의 직위에서 파면하고 괵공(虢公) 기보(忌父)를 경사로 삼았다. 정 장공은 이에 불만을 품고 이후로 환왕을 알현하러 오지 않았고, 주나라와 정나라는 서로 악감정을 갖게 되었다.
기원전 707년, 환왕은 채(蔡)나라, 위나라, 진나라의 연합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수갈(繻葛)에서 크게 패했고, 환왕 자신도 전투 중 정나라 장수 축담(祝聃)이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후로 환왕은 괵(虢)나라 이외에는 다른 제후국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고, 주나라는 더욱 빠르게 쇠약해졌다.
2.2. 수갈 전투
기원전 707년, 환왕은 채(蔡)나라, 위나라, 진나라의 연합군을 이끌고 정(鄭)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수갈(繻葛)에서 크게 패했다. 환왕 본인도 전투 중 정나라 장수 축담(祝聃)이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후로 환왕은 괵(虢)나라 이외에는 다른 제후국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고, 주나라는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쇠약해졌다.
2.3. 왕실 내부 분란
환왕은 평왕이 사망했을 때 태자 예보가 이미 요절했기 때문에 즉위했다. 즉위한 뒤 경(卿)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킬 계획을 하였다. 정(鄭)나라가 주나라와 인접해 있어서 정나라가 경계를 넘어 벼를 베는 일이 잦았는데, 이를 빌미로 정 장공(鄭 莊公)을 경사(卿士)의 직위에서 파면하고 괵공(虢公) 기보(忌父)를 경사로 삼았다. 정 장공은 이에 불만을 느껴 이후로 환왕을 조현하러 오지 않았고, 주나라와 정나라는 서로 악감정을 갖게 되었다.
기원전 707년에 환왕이 채(蔡)나라, 위나라, 진나라의 연합군을 이끌고 정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수갈(繻葛)에서 크게 패했고 본인도 전투 중 정나라 장수 축담(祝聃)이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후로 환왕은 괵(虢)나라 이외에는 다른 제후국의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다.
환왕은 기원전 697년에 죽었고, 아들 타(佗), 즉 장왕(莊王)이 즉위하였다. 죽기 전에 장왕을 태자로 정해 놓고서 차남인 왕자 극(克)을 총애하여 주공 흑견이 왕자 극을 지지함으로써 왕실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