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애후
1. 개요
진 애후는 춘추 시대 진나라의 군주로, 악후의 아들이다. 기원전 718년 장백의 공격으로 악후가 도망친 후, 주 환왕의 명으로 괵공이 장백을 공격하고 애후가 진후로 옹립되었다. 재위 기간 중 곡옥 세력과의 갈등을 겪었으며, 기원전 709년 곡옥백 칭에게 사로잡혔고, 그의 아들 소자후가 진후로 즉위했다. 이후 곡옥백 칭은 숙부 한만을 시켜 애후를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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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된 기원전 8세기 군주 -
살룸
살룸은 이스라엘 왕 스가랴를 모반하여 왕위를 찬탈했지만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당한 열왕기하의 인물이다. -
살해된 기원전 8세기 군주 -
브가히야
브가히야는 기원전 741년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었으나, 2년 후 반 아시리아파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우상 숭배를 국책으로 추진했다. -
기원전 8세기 중국의 군주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8세기 중국의 군주 -
진 평공
진 평공은 기원전 777년에 즉위하여 23년간 진나라를 다스린 군주로,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진 문공이 즉위하였다. -
기원전 8세기 중국 사람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
기원전 8세기 중국 사람 -
진 평공
진 평공은 기원전 777년에 즉위하여 23년간 진나라를 다스린 군주로,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진 문공이 즉위하였다.
2. 생애
진 악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악후의 퇴위 과정은 역사서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지만, 주 환왕의 명으로 괵공 기보가 곡옥장백을 공격하고 진후로 세워졌다는 점은 일치한다.
《고본죽서기년》에 따르면, 애후 2년(기원전 716년)에 곡옥무공(후의 진 무공)이 익과 화평을 청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곡옥과의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애후는 형정(진나라 남쪽 변방의 고을)의 땅을 침범하기도 하였고, 결국 애후 9년(기원전 709년)에 곡옥백 칭(후의 진 무공)에게 사로잡혔다. 진나라 사람들은 애후의 아들 소자후를 세웠고, 곡옥백은 숙부 한만을 시켜서 애후를 죽였다.
2.1. 즉위 과정
진 악후가 퇴위한 경위는 《사기》와 《좌전》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주 환왕이 괵공 기보를 보내 곡옥장백을 공격하고 애후를 진나라 임금으로 세웠다는 점은 일치한다.
기원전 718년, 곡옥의 장백이 군사를 일으켜 익(翼)을 공격하자 악후는 수(隨)로 도망쳤다. 주 환왕은 괵공에게 명하여 장백을 공격하게 하였고, 애후는 진후로 옹립되었다.
2.2. 곡옥과의 갈등
《고본죽서기년》에 따르면, 애후 2년(기원전 716년)에 곡옥무공(후의 진 무공)이 익과 화평을 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곡옥 세력과의 갈등이 초기부터 있었음을 보여준다.
애후 8년(기원전 710년), 애후는 형정(진나라 남쪽 변방의 고을)의 땅을 침범했다. 형정 남쪽 변방 사람들과 곡옥백 칭(후의 진 무공)이 공모하여 애후 9년(기원전 709년)에 곡옥백 칭이 쳐들어와 애후를 사로잡았다. 진나라 사람들은 애후의 아들 소자후를 세웠고, 이렇게 되자 곡옥백은 숙부 한만을 시켜서 사로잡은 애후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