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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 쿠마리 구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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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찬드라 쿠마리 구룽은 1992년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섬유 공장에서 일하던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이다. 1993년 무전취식으로 오인받아 경찰에 신고된 후 한국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6년 4개월간 강제 입원되었고, 2000년에 풀려났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으며, 이 사건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상금으로 인해 네팔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는 행적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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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 쿠마리 구룽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찬드라 쿠마리 구룽
원어명Chandra Kumari Gurung
출생일1956년
출생지네팔
국적네팔
직업노동자

2. 사건 발생 및 경과

1992년 찬드라 쿠마리 구룽은 돈을 벌기 위해 네팔 간다키 구에서 대한민국으로 와서 서울특별시 광진구의 한 섬유공장에서 미싱 보조기사로 일했다. 1993년 11월, 식당에서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 무전취식으로 오인받아 경찰에 신고되었고, 이후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찬드라는 청량리 정신병원에서 '선미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서울시립부녀보호소와 용인 정신병원을 거치며 6년 4개월간 강제 감금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네팔 사람이며 여권과 비자가 공장에 있다고 호소했지만, 정신이상자로 취급받고 강제 약물 투여 등의 고통을 겪었다.

이후 2000년 3월, 병원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통해 네팔 사람임이 밝혀져 풀려났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한국인들의 성금 모금에 대해 자신은 배움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한국인들에게는 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2002년 11월 5일 서울지방법원은 찬드라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여 26000000KRW을 손해 배상하도록 판결했다.[11] 이 사건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로 제작되어 여섯 개의 시선에 수록되었다.

한국인들과 단체들은 18000000KRW을 모아 찬드라에게 전달하며 사과했고, 2002년 초 인권단체들이 정신병원과 한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여 28600000KRW의 보상금을 받아냈다.

네팔에서도 찬드라의 사연이 화제가 되었으나, 보상금 때문에 이웃, 친척, 사기꾼, 마오주의 반군들까지 그녀를 찾아와 협박과 행패를 부렸다. 당시 네팔의 1인당 평균 연소득이 800USD(약 900000KRW)이 안 되었기에, 수천만 원은 매우 큰 돈이었다. 찬드라의 지인들은 억울하게 갇힌 대가로 받은 작은 보상을 탐내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탄했다. 결국 찬드라는 살던 곳을 떠나 잠적하여 현재 행적을 알 수 없다.

2. 1. 대한민국 입국과 체포

찬드라는 1992년 돈을 벌기 위해 네팔 간다키 구에서 대한민국으로 왔다. 단기 비자를 받고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서울특별시 광진구의 한 섬유공장에서 미싱 보조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1993년 11월, 찬드라는 동네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은 후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어가 서투른 탓에 주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주인은 찬드라가 무전취식을 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4]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찬드라의 행색이 초라하고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단순 행려자로 오인했다. 결국 찬드라는 하루 만에 동부경찰서에서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당시 찬드라는 36세였으며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 이주노동자였다.

2. 2. 강제 감금과 정신병원 생활

1993년 11월, 찬드라 쿠마리 구룽은 서울의 한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은 후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알았다. 한국어가 서툴렀던 찬드라는 식당 주인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주인은 그녀를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찬드라의 초라한 행색과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 때문에 그녀를 행려자로 오인했고, 결국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이송했다.[11] 당시 찬드라는 36세로, 네팔에서 대한민국으로 온 합법적인 외국인 이주노동자였다.

청량리 정신병원에서는 찬드라가 네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녀를 한국인 행려병자로 간주하고 ‘선미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찬드라는 서울시립부녀보호소를 거쳐 용인 정신병원에 강제 감금되었다. 찬드라는 한국어로 “나는 네팔 사람이다”, “내가 일하던 공장에 가면 네팔 여권과 비자가 있다”라고 필사적으로 호소했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하며 무시했다. 찬드라는 손이 묶인 채 강제로 약물을 투여받는 등 6년 4개월 동안 인권 침해를 겪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11]

경찰의 과실과 일련의 직업적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구룽은 구금되었고, 정신분열증 환자로 오진되어 수년간 신체적 구속, 강제 투약, 독방 감금에 시달렸다.[4]

이후 병원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통해 찬드라가 네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2000년 3월, 마침내 그녀는 감금에서 풀려났다.[11]

2. 3. 석방과 귀향

병원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통해 찬드라가 정신병자가 아니라 네팔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2000년 3월에 감금 상태에서 풀려났다.[4] 이후 찬드라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11] 찬드라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한국인들은 성금을 모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때 찬드라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자신이 많이 배우지 못해 일어난 일일 뿐 한국인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고 말했다.

3. 대한민국 정부 상대 소송과 배상

1993년 11월, 찬드라는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은 후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 무전취식으로 오인받았다. 이로 인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었다가 2000년 3월에 풀려난 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2년 11월 5일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 13부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여 2600만을 손해 배상하도록 하는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11]

이후 한국인들과 단체들은 1800만을 모아 찬드라에게 전달하며 사과했고, 2002년 초 인권단체들은 해당 정신병원과 한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여 2860만을 받아내 그녀에게 전달했다.

네팔에서도 찬드라의 사연이 알려졌으나,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억울한 사연이 아닌 보상금 때문이었다. 당시 네팔의 1인당 평균 연소득이 800USD이 채 안 되는 상황에서, 수천만 원의 보상금은 매우 큰 돈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웃, 친척, 사기꾼, 심지어 마오주의 반군들까지 보상금을 노리고 찬드라의 집으로 찾아와 협박하거나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결국 찬드라는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잠적했으며, 네팔에서도 지금의 행적을 알 수 없다고 한다.

3. 1. 법원 판결 내용

구룽은 부당한 수감에 대한 보상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구룽에게 23500USD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3]

3. 2. 손해 배상 과정

구룽은 부당한 수감에 대해 보상받고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구룽에게 23500USD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3]

4. 사건의 사회적 영향과 의미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과 정신보건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여러 영향을 미쳤다.

2002년 11월 5일 서울지방법원은 찬드라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 2600만의 손해 배상 판결을 내렸다.[11] 이 사건은 박찬욱 감독의 단편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로 제작되어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에 수록되었다.

한국인들과 단체들은 1800만을 모아 찬드라에게 전달하며 사과했고, 인권단체들은 정신병원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860만의 보상금을 받아냈다.

하지만 네팔에서는 억울한 사연보다 보상금이 더 큰 화제가 되었다. 친척, 사기꾼, 심지어 마오주의 반군까지 보상금을 노리고 찬드라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당시 네팔의 1인당 평균 연소득이 800USD (약 90만)이 채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수천만 원의 보상금은 엄청난 액수였다. 결국 찬드라는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잠적하여 현재 행적을 알 수 없다.

4. 1.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 제기

구룽은 부당한 수감에 대한 보상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녀에게 23500USD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3]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세를 얻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2003년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고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단편 영화 "N. E. P. A. L. Never Ending Peace And Love"의 주제가 되었다. 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인 ''쓰리, 몬스터''(한국어 제목: 여섯 개의 시선)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5][6][7][8][9][10]

4. 2. 정신보건 시스템의 문제점 지적

구룽은 부당한 수감에 대한 보상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녀에게 23500USD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3]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세를 얻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에는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고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의 단편 영화 "N. E. P. A. L. Never Ending Peace And Love"의 주제가 되었다.[5][6][7][8][9][10]

5. 언론 보도와 영화 제작

찬드라 쿠마리 구룽의 이야기는 언론에 보도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사건은 박찬욱 감독의 단편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로 제작되었으며, 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의 마지막 편에 포함되었다.[11]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의 원제는 "N. E. P. A. L. Never Ending Peace And Love"이다.[5][6][7][8][9][10]

6. 네팔에서의 반응과 후속 상황

사연이 알려진 후, 네팔에서도 찬드라의 이야기가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찬드라의 억울한 사연이 아니라 그녀가 받은 보상금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 네팔의 1인당 평균 연소득은 800USD (약 90만 원)이 채 안 되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수천만 원은 엄청나게 큰 돈이었다.[11] 수많은 이웃과 친척, 사기꾼, 심지어 마오주의 반군들까지 보상금을 노리고 찬드라의 집으로 찾아가 협박하거나 행패를 부리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어느 한국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찬드라의 지인들은 '무려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도 안 통하는 나라의 정신병원에 억울하게 갇힌 일로 받은 작은 보상을 거저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탐내는 바보들이 많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결국 찬드라는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잠적했으며, 네팔에서도 지금의 행적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참조

[1] 웹사이트 네팔인 정신병원에 7년 감금 국가가 2800만원 배상 판결 https://news.joins.c[...] 2019-04-20
[2] 웹사이트 a tale of chandra kumari gurung http://blog.jinbo.ne[...] 2019-04-20
[3] 웹사이트 LABOUR-NEPAL: Measures to Fight Abuse Start at Home – Activists http://www.ipsnews.n[...] 2019-04-20
[4] 웹사이트 "한국인 잘못 용서해요, 찬드라" : 사회 : 인터넷한겨레 The Hankyoreh http://legacy.www.ha[...] 2019-04-20
[5] 웹사이트 Top directors tackle tough topics http://koreajoongang[...] 2003-03-19
[6] 서적 Disability, Human Rights and the Limits of Humanitarianism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6
[7] 간행물 A Nepalese woman mistaken as mental patient for not speaking Korean {{!}} Short Film by Park Chan-wook https://www.youtube.[...] 2019-05-24
[8] 웹사이트 "[인터뷰]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박찬욱 감독" http://www.cine21.co[...] 2019-04-20
[9] 웹사이트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상세정보 http://www.cine21.co[...] 2019-04-20
[10] 서적 Fifty Contemporary Film Director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0-10-04
[11] 뉴스 네팔인 정신병원에 7년 감금 국가가 2800만원 배상 판결 http://www.joongang.[...] 중앙일보 20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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