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은 조선 성종 1년(1470)에 중국에서 제작되어 일제강점기인 1911년 창경궁에 세워진 석탑이다. 이 석탑은 팔각칠층으로, 지대석,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초층 탑신이 둥근 복발형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보인다. 기단부는 사각형 지대석 위에 2단의 팔각 안상지대석이 놓여 있고, 탑신부에는 명나라 성화 6년(1470)의 명문과 조성 연대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라마탑을 연상시키며, 한국에 유일한 중국 석탑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선의 석탑 -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 시대 팔각석탑 전통을 계승하여 조선 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 왕실 발원으로 1493년 이전에 세워져 1628년에 중수되었으며, 불상대좌, 목조건축, 팔작기와지붕 양식을 갖춘 조선 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이다.
  • 조선의 석탑 -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조선시대에 원각사지에 세워진 대리석 석탑으로, 국보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형태와 섬세한 조각으로 한국 석탑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탑골공원 내에 보존되어 있다.
  • 창경궁 - 홍화문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시대에 지어진 후 소실과 재건, 훼손과 복원을 거쳐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문의 좌우 행각, 옥천교 등과 함께 홍화문 권역을 이룬다.
  • 창경궁 - 명정전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조선 성종 때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때 재건되었으며,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의 동향 건물이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이름창경궁 팔각칠층석탑
한자昌慶宮 八角七層石塔
유형보물
지정 번호1119
지정일1992년 1월 15일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시대조선 성종 1년(1470년)
소유국(문화재청)
수량1기
지도대한민국
꼬리표창경궁
문화재청12,11190000,11

2. 특징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은 불룩한 초층 탑신, 팔각원당형 기단부, 탑신 전체의 분위기 등에서 라마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석재가 변질된 부분도 있지만, 한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국식 석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팔각원당형 기단부는 고려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남양주 수종사 오층석탑과 같은 고려계 다층석탑, 구산선문에서 유래한 승탑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3. 구조

이 석탑은 지대석,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다. 지대석과 기단부가 탑신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며, 탑신부에서도 초층의 탑신이 둥근 복발형으로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3. 1. 기단부

기단부는 방형의 지대석 위에 8각의 안상지대석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대석이 층층이 올라가는 느낌을 준다. 사각의 지대석 위에 크기가 다른 2층의 팔각 지대석을 또 올려 놓았는데, 8각의 각 면마다 둥근 안상을 배치하고 있다. 안상의 모양은 양쪽은 둥근 원이며, 가운데는 긴 타원형으로 이 세 원이 연결된 갸름한 형태로 되어 있다.[2]

그 위에 하층 기단부가 있는데, 우선 하단 갑석으로 한 단의 연꽃 굄을 놓아 팔각의 면석을 받치고 있다. 연꽃 굄도 팔각 형태를 띠고 있으나 아래의 이중 안상지대석의 팔각보다는 많이 둥글려진 느낌으로, 한 면당 이중의 테로 둘린 복련 두 잎씩이 새겨져 있다. 그 위에 놓인 팔각의 면석 각 면에는 아름다운 문양들로 조각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두 겹으로 둘러지면서 세 잎으로 구성된 두툼한 꽃 모양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꽃을 중심으로 네 가장자리에는 구름 문양 등이 새겨져 있다.[2]

8각의 면석 위에는 기단부의 상대 갑석으로 보이는 돌이 놓여 있는데, 하대 갑석과 같이 둥그스름한 팔각형태지만 이번엔 두 겹으로 된 앙련이 조각되어 있다. 한 면당 두 잎씩 총 16잎이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다시 8각의 안상지대석과 같은 8각의 기단부 한 층이 둘러져 있다. 안상의 모습 역시 양쪽에는 둥근 원이, 가운데는 긴 타원형이 서로 연결된 모양이다.[2]

이 위에 다시 상층 기단부가 놓여 있다. 상층 기단은 하층 기단보다 많이 약식화되어 있다. 하단 갑석은 둥그스런 복발형이 새겨져 있고, 기단의 면석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상단 갑석에는 마멸이 심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앙련으로 된 무늬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이 탑에서 가장 특색있다고 볼 수 있는 둥그스름한 복발형의 초층 탑신이 놓이고 있다.[2]

3. 2. 탑신부

탑신부는 팔각칠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층의 탑신이 다른 층의 탑신보다 월등히 높으며 그 위층들은 체감이 적은 편이다. 초층의 탑신은 마치 항아리의 모습처럼 생겼는데, 많이 파손되어서 그런지 중간중간에 후대에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이 탑신받침 측면에는 가로·세로 약 50cm 정도의 크기로 보이는 정방형 판돌이 끼워져 있다. 맨눈으로는 판독이 불가능하나 글씨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1행 3자씩, 4행의 명문과 1행의 조성연대가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1]

"遼陽重, 開山都, 綱挺玉, 巖壽塔"

"大明成化六年庚寅歲秋七月上澣吉日造"

여기서 성화 6년은 명나라 헌종 때의 연호로써 조선 성종 1년(1470)에 해당된다. 옥개석은 8각으로 목조건축의 지붕을 묘사하듯 기왓골이 뚜렷이 새겨져 있으며 처마 끝은 수막새로 막혀져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상태로 보면 초층에서 6층까지는 옥개석이 체감되어 가지만, 7층에 와서는 다시 4층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옥개석이 다시 커지고 있어 후대 보수 때 바뀐 듯하다.[1]

3. 3. 상륜부

상륜부는 노반보주가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으나, 후대에 보수된 것이다.

4. 현지 안내문

이 탑은 조선 성종 원년(1470년)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 박물관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세운 것이다.[2]

석탑의 기단은 사각형 받침돌과 팔각의 2중 기단으로 되어 있다. 기단 위에 놓인 팔각형 돌의 각 면에는 꽃무늬를 새겼다. 팔각의 납작한 돌 위에는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둥그스름한 탑신 받침을 놓고 화려한 연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1층 탑신은 위층에 비해 매우 높으며, 지붕돌은 팔각으로 목조 건물 지붕처럼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부분은 재질로 보아 후대에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의 전체적인 형태는 공주 마곡사 석탑과 비교되는 라마탑을 연상케 한다.[2]

참조

[1] 관보 관보제12023호 http://theme.archive[...] 문화부 1992-01-20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