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목마산성
1. 개요
창녕 목마산성은 경상남도 창녕군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정복한 시기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과도 관련이 깊다. 둘레 1.9km로 비교적 큰 규모이며, 석축 상태가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2011년 7월 28일 이전 명칭은 목마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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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사적 |
|---|---|
| 사적 번호 | 65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산5-2번지 |
| 시대 | 삼국시대 |
| 관리자 | 창녕군 |
| 면적 | 18,942m² |
| 꼬리표 | 창녕 송현리 |
| 문화재청 ID | 13,0065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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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목마산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신라 진흥왕 때 하주(下州)가 설치될 당시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주변의 가야 고분들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삼국시대 산성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계곡 입구를 향해 있어 수비용 산성으로 보인다. 목마산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후대에 말을 기르는 목마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2.1. 임진왜란과의 관계
임진왜란과 관계가 깊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둘레는 1.9km로 산성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큰 편이고 비교적 석축의 상태가 잘 남아있는 편이다.
3. 구조
창녕 동쪽에 있는 화왕산의 북쪽 봉우리로부터 서쪽으로 뻗은 야산의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식 산성이다. 쌓은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곳에 하주(下州)를 두었을 때 이미 이 성이 존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근에는 가야 고분들이 많이 있어 연대 추정의 자료가 되고 있다. 임진왜란과도 관계가 깊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둘레는 1.9km로 산성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큰 편이고 비교적 석축의 상태가 잘 남아있다. 삼국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산성의 형태이며, 성의 앞면이 계곡 입구를 향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수비를 위한 산성으로 보인다. 부근의 사적 '화왕산성'과는 규모 면에서는 거의 같으나 그 형식이 달라, 같은 지방에 있는 산성의 양식을 비교하기에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