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중 호
1. 개요
채중 호는 채숙 도의 아들이다. 삼감의 난 이후 주공의 인정을 받아 주나라 정계에 복귀했으며, 노나라의 경사를 지냈다. 주공은 채중 호가 노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을 보고 서주 성왕에게 채나라를 다시 봉해 채숙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채중 호 사후에는 아들 채백황이 뒤를 이었다.
채중 호
인물 정보
| 휘 | 胡 (호) |
|---|---|
| 작위 | 제후, 자작 |
| 봉지 | 채 |
| 시호 | 仲 (중) |
생애
| 성씨 | 희(姬) |
|---|---|
| 부족 | 화하족 |
| 시대 | 주나라 |
| 아버지 | 주 문왕 |
| 형제 | 주 무왕, 주공 단 |
| 친척 | 주 성왕 |
| 자손 | 채 갑, 채 숙 |
| 관련 인물 | 채중호의 아들, 채중호의 손자 |
| 역할 | 채나라의 통치자 |
| 봉건 | 채나라에 봉건됨 |
| 계승 | 아들 채 갑이 계승 |
기타 정보
| 참고 | 채 (나라)의 통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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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문왕과 태사의 아들이자 주 무왕의 동복 형제인 채숙도는 무왕에 의해 채에 봉해졌으나, 주공 단의 섭정에 불만을 품고 삼감의 난을 일으킨 후 유배되어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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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채중 호는 채숙 도의 아들로, 아버지가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가 쫓겨난 후 자신의 행위를 고쳐 주공의 인정을 받았다. 노나라의 경사를 지내며 노나라를 다스렸고, 주공은 이를 보고 성왕에게 말해 채나라를 다시 봉해 채숙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채중이 죽자 아들 채백황이 뒤를 이었다.
2.1. 노나라에서의 활동
채숙 도의 아들로, 아버지가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가 쫓겨난 후 자신의 행위를 고쳐 주공의 인정을 받아 주나라 정계에 채숙의 집안이 복귀할 수 있었다. 먼저 주공의 봉국인 노나라의 경사를 지내며 노나라를 다스렸고, 주공은 이를 보고 성왕에게 말해 호에게 채나라를 다시 봉해 채숙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2.2. 채나라 복귀
채숙 도의 아들로, 아버지가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가 쫓겨난 후 자신의 행위를 고쳐 주공의 인정을 받아 주나라 정계에 채숙의 집안이 복귀할 수 있었다. 먼저 주공의 봉국인 노나라의 경사를 지내며 노나라를 다스렸고, 주공은 이를 보고 성왕에게 말해 호에게 채나라를 다시 봉해 채숙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채중이 죽자 아들 채백황이 뒤를 이었다.
3. 가계
| 관계 | 이름 |
|---|---|
| 아버지 | 채숙 도 |
| 아들 | 채백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