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무왕
1. 개요
주 무왕은 주 문왕의 차남으로,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인물이다. 그는 강태공을 등용하여 국력을 강화하고 기원전 1046년 목야 전투에서 상나라 군대를 격파하여 주왕을 자결하게 했다. 중국을 통일한 후 제후국을 세우고, 고대 성왕들의 자손을 봉했으며, 수도를 호경으로 정하고 무기를 폐기하는 등 평화를 추구했다. 무왕은 즉위 3년 만에 사망했으며, 아들 성왕이 어렸기에 주공 단이 섭정했다. 그는 하, 상, 문왕과 함께 성왕으로 추앙받으며 유교 도통의 계승자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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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
주 성왕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주공 단의 섭정을 받은 주 성왕은 삼감의 난을 진압하고 낙양을 건설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오랑캐 부족을 정벌하여 국경을 안정시키고 아들 강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
기원전 11세기 중국의 군주 -
주 성왕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주공 단의 섭정을 받은 주 성왕은 삼감의 난을 진압하고 낙양을 건설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오랑캐 부족을 정벌하여 국경을 안정시키고 아들 강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
기원전 11세기 중국의 군주 -
제신
제신은 상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주(紂)로 불리며 폭군으로 묘사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그의 폭군적인 면모가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
주나라의 왕 -
주 혜왕
주 혜왕은 동주 시대 제17대 왕으로, 자퇴의 난으로 쫓겨났다가 복위했으며, 제 환공에게 패자의 지위를 하사하고 후처의 아들을 총애하여 태자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
주나라의 왕 -
주 성왕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주공 단의 섭정을 받은 주 성왕은 삼감의 난을 진압하고 낙양을 건설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오랑캐 부족을 정벌하여 국경을 안정시키고 아들 강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2. 생애
무왕은 주 문왕(周文王)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의 유언인 상나라(商)를 격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무왕은 강태공을 재상 겸 군사(軍師)로 등용하는 등 현명한 관료 등용을 통해 주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1046년 목야의 전투에서 상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상나라 주왕(紂王, 제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승리 후 무왕은 중국을 통일하고 형제와 장군들에게 제후국을 세웠으나, 즉위 3년 후 기원전 1043년에 사망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상나라 정벌
무왕은 주 문왕(周文王)의 차남으로, 이름은 발(發)이다. 서주 시대 청동기 명문에는 무(珷)라는 글자로 나타나 있다. 그는 정의롭고 유능한 지도자로 여겨지며, 주공 단(周公 旦) 등의 형제가 있었다.
무왕은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 문왕의 유언을 받들어 상나라(商)를 격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강태공을 재상으로 등용하고 군사(軍師)로 삼아 국력을 강화했다.
기원전 1048년 무왕은 맹진에서 제후들의 회합을 요청하여 800명 이상의 제후가 참석했다. 무왕은 문왕의 목주(위패)를 전차에 싣고, 자신을 태자 발(太子發)이라 칭하며 이 원정이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임을 선포했다. 이때 주(周)군에 여러 길조가 나타났고, 제후들이 무왕에게 달려들었다. 제후들은 “이제 은을 무너뜨릴 때입니다”라고 의기투합했지만, 무왕은 시기상조라 판단하고 군대를 철수했다.
기원전 1046년 상나라 정부가 파탄 상태에 이르자, 무왕은 인접 제후들과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2년 후, 주왕의 폭정은 더욱 심해졌으므로 다시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주의 병력은 전차 300승, 장교 3000명, 무장병 4만 5000명이었다. 한편, 은군은 70만이 넘는 대군을 내보냈다. 목야에서 벌어진 목야의 전투에서 상나라 군대는 격파되었고, 상나라 주왕(紂王)은 궁을 불태우고 분사하였다. 은군은 대군이었지만 그 대부분은 노예병이었고, 노예들 중에는 은에 의해 다른 부족에서 끌려왔거나 전쟁 중에 포로가 된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무왕의 도래를 환영하는 자들까지 있었고, 주군이 공격해 오자 그 병사들은 은군을 향해 등을 돌리고 공격했다.
대패한 주왕은 수도로 도망쳐 자결했다. 무왕은 주왕의 시체에 화살 세 개를 꽂고, 타 버린 머리를 황금 도끼로 베어 깃발 끝에 달았다.
2.2. 주나라 건국과 통치
기원전 1046년 무예 전투에서 승리한 무왕은 중국을 통일하고, 형제와 장군들에게 많은 제후국을 세웠다. 상나라 주왕(紂王, 제신)에게 죽임을 당한 비간의 무덤을 개장하고, 유폐되었던 기자를 석방하여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다(기자조선). 미자계에게는 상나라 제사를 계속하게 하고 송에 봉했다. 신농, 황제, 요, 순, 우 등 고대 성왕들의 자손을 찾아 각각 초, 축, 계, 진, 기 등에 봉했다.
공신들의 공을 논하고 상을 내려, 다음과 같이 봉했다.
무왕은 수도 호경 외에 낙읍을 부도로 삼고, 천하의 무기를 폐기하고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2.3. 사망과 후계
무왕은 천자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들었다. 아들 성왕이 어려 후계자 문제를 걱정하여, 공신인 여상과 이복동생 주공단에게 주의 앞날을 맡기고 사망하였다.
무왕은 하의 우, 殷의 탕왕, 아버지 문왕과 함께 성왕으로 후세에 추앙받고 있다. 도교에서는 무왕을 영보천존의 화신으로 보기도 한다.
3. 가계
* 왕비: 읍강(邑姜) - 강태공(姜子牙)의 첫째 딸, 성(誦)과 우(虞)의 어머니
| 왕자 |
|---|
| 성왕(成王) |
| 우숙 |
| 당 숙우(唐叔虞) |
| 응(應)나라 후작 |
| 한(韓)나라 후작 |
| 공주 |
|---|
| 대희(大姬) - 진후(陳胡公)과 결혼 |
| 란(蘭) - 기의공(齊懿公)과 결혼 |
3.1. 조부모 및 부모
* 조부: 계력
* 조모: 태임
* 부친: 주 문왕 희창(姬昌)
* 모친: 태사
3.2. 형제
| 이름 | 모친 | 비고 |
|---|---|---|
| 백읍고(伯邑考) | 태사 | 문왕의 장남 |
| 관숙 선(管叔 鮮) | 태사 | 문왕의 삼남, 삼감지란(三監之亂)을 일으켰으나 패배하여 사살됨 |
| 주공 단(周公 旦) | 태사 | 문왕의 사남 |
| 채숙 탁(蔡叔 度) | 태사 | 문왕의 오남, 삼감지란(三監之亂)에 가담했다가 유배됨 |
| 강숙 봉(康叔 封) | 태사 | 문왕의 육남, 위나라 건국 |
| 성숙 무(郕叔 武) | 태사 | 문왕의 칠남 |
| 곽숙 처(霍叔 處) | 태사 | 문왕의 팔남, 삼감지란(三監之亂)에 가담했다가 서민으로 강등됨 |
| 모숙 정(毛叔 鄭) | 태사 | 문왕의 구남 |
| 담계 재(聃季 載) | 태사 | 문왕의 십남, 주 성왕(周 成王) 보좌 |
| 곡숙(郜叔) | 문왕의 십일남 | |
| 옹백(雍伯) | 문왕의 십이남 | |
| 조숙 진탁(曹叔 振鐸) | 문왕의 십삼남 | |
| 착숙 수(錯叔 繡) | 문왕의 십사남 | |
| 필공 고(畢公 高) | 문왕의 십오남 | |
| 원백(原伯) | 문왕의 십육남 | |
| 풍후(豊侯) | 문왕의 십칠남 | |
| 순백(郇伯) | 문왕의 십팔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