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기
1. 개요
천명기는 일제강점기 양평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청주 전매서, 교통부 정무차관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우신약품 사장을 역임했다. 형 천세기의 영향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제8, 9, 1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신민당 원내대책위원회 위원, 보건사회부 장관, 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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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표기 | 千命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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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872년 |
| 사망 | 1951년 |
| 배우자 | 안동 권씨 |
| 자녀 | 슬하 2남 4녀 |
| 종교 | 유교 |
| 직업 | 독립운동가,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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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력 |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 제헌 국회의원 |
| 최종 학력 | 성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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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장 | 건국훈장 독립장 (199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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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국회의원 -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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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국회의원 -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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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 -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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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 -
조대환
조대환은 강력 및 특수 분야 수사를 담당한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변호사 개업 후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및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추천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
1930년 출생 -
오극렬
오극렬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핵심 요직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군사 및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불법 활동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930년 출생 -
강능수
강능수는 일제강점기 평양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문화상과 내각 부총리를 지낸 북한의 정치인이자 문학가이다.
2. 생애
천명기는 1930년 경기도 양평군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영양(潁陽)이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잠시 하다가 우신약품 사장을 지냈다. 민주당 정부에서 교통부 정무차관을 지낸 천세기의 동생으로, 형의 뒤를 이어 정치에 입문했다.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2.1. 정치 활동
1963년 민주당 중앙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6년 민정당과 민주당이 통합해 창당한 민중당의 여주·양평지구당 위원장을 맡았고,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여주·양평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신민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및 중앙상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70년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 비서실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주·양평 선거구에 다시 출마해 공화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 이백일을 누르고 당선되었고, 국회 농림위원회 위원 및 신민당 사회복지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연천·포천·가평·양평 선거구에 출마, 공화당 후보의 구속으로 무투표 당선되었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1974년 신민당 개헌추진본부 경기지부장, 신민당 예결위원, 아시아국제의원연맹 한국대표단 등으로 활동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연천·포천·가평·양평에서 재차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 신민당 비주류측 의원으로 신민당 원내 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신민당을 탈당해 1980년 9월 남덕우 국무총리 내각의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1982년 보건사회부 장관직을 사임했고, 1987년 10월 대한석유공사 이사장에 임명되었으나, 1988년 6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했다. 민정당 후보로 중랑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2. 경제계 활동 및 사망
1982년 보건사회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영양 천씨 중앙종친회 회장, 국토통일원 고문을 지냈다. 1983년 5월 대한방직협회 회장에 선출되었고, 1984년에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1987년 10월 대한석유공사 이사장에 임명되었으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1988년 6월 사임했다. 이후 민정당 공천으로 중랑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제6공화국에서 대통령 자문기구로 창설된 장애자복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1989년 2월에는 제11대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1999년 12월 17일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4. 경력
1958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 졸업 후, 청주 전매서·교통부 정무차관실에서 잠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우신약품 사장을 역임했다.
형 천세기(千世基)의 은퇴 후 정계에 입문하여, 1963년 민주당 중앙위원, 1966년 민중당 여주·양평 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신민당 공천으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경기도당 부위원장, 중앙상무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1970년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농림위원회 위원, 신민당 사회복지분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구속으로 무투표 당선된 후, 1974년 신민당 개헌추진본부 경기지부장, 예산결산위원, 아시아 국제의원 연맹 한국 대표단 대표 등을 역임했다.
1978년에 치러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후, 신민당 원내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신민당을 탈당한 후, 1980년 9월 남덕우 내각의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1982년 보건사회부 장관직을 사임한 후, 영양 천씨 중앙종친회 회장, 국토통일원 고문, 1983년 5월 대한방직협회 회장, 1984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7년 10월 대한석유공사 이사장에 임명되었으나, 1988년 6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위해 사임하고, 민정당 공천으로 중랑구 선거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대통령 자문기관인 장애자복지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고, 1989년 2월에는 제11대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5. 상훈
청조근정훈장
6. 저서
* 정의의 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