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올
1. 개요
체올은 591년부터 597년까지 웨섹스를 통치한 인물이다. 그는 킨릭의 아들이자,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체울린의 조카였다. 체올은 우드스베르그 전투에서 삼촌 체울린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며, 597년에 사망한 후 그의 형제 체올울프가 왕위를 계승했다. 체올은 웨섹스 왕가의 방계 창시자이며, 그의 후손들은 300년 이상 웨섹스를 통치했다. 그러나 체올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신빙성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 succession: 웨섹스 왕 | |
| 통치 기간 | 592년–597년 |
|---|---|
| 이전 통치자 | 케올린 |
| 다음 통치자 | 케올울프 |
| 왕가 | 웨섹스 가 |
| 아버지 | 쿠타 (또는 쿠스울프) |
| 자녀 | 키네길스 |
| 이름 | 체올 |
|---|---|
| 로마자 표기 | Ceol |
| 사망 년도 | 59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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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식스 -
웨식스 왕국
웨식스 왕국은 5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 잉글랜드 남부에 존재했던 앵글로색슨족의 왕국으로, 체르디치와 킨리치의 세력 확장을 시작으로 알프레드 대왕 시대에 데인족 침략을 격퇴하며 잉글랜드 통일의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 잉글랜드 왕국으로 발전했다. -
웨식스 -
에딩턴 전투
878년 알프레드 대왕이 이끄는 웨스트 색슨 군대와 구스룸이 이끄는 데인족 간에 벌어진 에딩턴 전투는 웨식스를 지켜내고 잉글랜드 통일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구스룸의 개종과 웨드모어 조약 체결, 앨프레드의 군사 개혁으로 이어졌다. -
6세기 잉글랜드의 군주 -
애설프리스
애설프리스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위키백과 도입부 작성이 어려우며, 배경, 정복 활동, 전투, 경쟁자, 암살 시도, 갈등, 가계, 자녀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한 요약 및 원본 소스 자료가 부족하여 내용 파악 및 요약에 어려움이 있다. -
6세기 잉글랜드의 군주 -
앨레
앨레는 5세기 후반 브리튼 섬에 상륙하여 서섹스 왕국을 건설하고 험버강 남쪽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 앵글로색슨족의 전쟁 지도자이며 브레트왈다로 여겨지기도 한다. -
서색슨인의 왕 -
에드워드 장형왕
에드워드 장형왕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잉글랜드를 통치하며 데인족에 맞서 싸우고 머시아를 병합하여 잉글랜드 통일의 기반을 다지고 법과 행정 체제를 정비했으며, 앵글로색슨 시대의 건축과 예술 발전에 기여한 웨섹스 왕국의 왕이다. -
서색슨인의 왕 -
에그버트
에그버트는 9세기 초 웨섹스 왕국의 왕으로, 즉위 후 머시아 왕국을 정복하고 험버 강 이남 지역을 지배하며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 역사적 배경
체올은 591년 또는 592년부터 597년까지 웨섹스를 통치한 왕이다. 그는 현재 윌트셔주의 워든스 배로우(Woden's Barrow) 또는 워드네스베오르그(Wodnesbeorg)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숙부인 체울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이는 정당한 후계자로 여겨지던 체울린의 아들 쿠스윈을 무시한 것이었다. 체올이 죽자 그의 아들 키네일스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왕위는 형제인 체올울프에게 넘어갔다. 이는 색슨족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체올은 웨섹스 왕가의 방계 가문을 열었다. 그의 혈통은 키네일스, 첸왈프, 삭스부르흐, 첸트윈을 거쳐 648년부터 685년까지 웨섹스 왕위를 배출했다. 또한 머시아의 왕 코엔울프와 체올울프도 체올의 후손이라고 한다. 즉, 체올의 혈통은 그의 사후 최소 300년 이상 번성한 것이다.
2.1. 앵글로색슨 연대기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체올은 591년에 통치를 시작했다. 이듬해 체올의 삼촌 체울린은 우드스베르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쫓겨났다'. 윌트셔에 있는 이곳은 체울린과 체올 사이의 전투였으며, 체올이 체울린의 아들 커스윈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은 것으로 현대 학자들은 추정한다.
체올이 597년에 사망하자, 왕위는 그의 형제 체올울프에게 넘어갔다. 그의 아들 키네길스는 왕위를 계승하기에는 너무 어렸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앵글로색슨족 사이의 관습처럼 형제에게 왕위가 주어졌을 것이다.
2.2. 체올의 사망과 왕위 계승
체올은 웨섹스의 킨릭의 아들인 쿠타(또는 커스울프)의 아들로 묘사된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591년에 통치를 시작했다. 이듬해 체올의 삼촌 체울린이 우드스베르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쫓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은 윌트셔에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현대 학자들은 이 전투가 체울린과 체올 사이의 전투였으며, 체올이 체울린의 아들 커스윈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597년 체올이 사망하자 왕위는 그의 형제 체올울프에게 넘어갔다. 그의 아들 키네길스는 왕위를 계승하기에는 너무 어렸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앵글로색슨족 사이의 관습처럼 형제에게 왕위가 주어졌을 것이다.
2.3. 역사적 신빙성 문제
데이비드 덤빌은 체올에 대한 증거가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강조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와 웨스트 색슨 계보 통치자 목록은 모두 7세기의 동시대 기록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체올이 필사자의 혼동으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배"를 의미하는 단음절 이름 체올은 매우 믿기 어렵다. 한 계보에서는 체올라(Ceola)로 나타나는데, 이는 분명한 애칭으로, 이음절 '체올'(Ceol) 이름을 암시한다. 반면 계보 통치자 목록에서는 체올울프를 그의 형제로, 키네질은 단순히 '체올울프의 형제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신원 및 가족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