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수
1. 개요
최덕수는 1968년 정읍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법학과 재학 중이던 1988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성명서 낭독 후 분신하여 사망했다. 이후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으며, 매년 추모제가 거행되고 추모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2004년부터는 "열사정신계승 시민문화제"로 추모 행사가 진행되었고, 2008년에는 20주기 추모 사업이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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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사망 -
허정
허정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4·19 혁명 후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를 지내며 제2공화국 수립에 기여했다. -
1988년 사망 -
숀 맥브라이드
숀 맥브라이드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정치인, 변호사,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 참여하고, 클란 나 포블라흐타를 창당하여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국제앰네스티 공동 설립, 노벨 평화상 수상 등 인권 및 평화 운동에 기여했다. -
1968년 출생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1968년 출생 -
조지호 (경찰공무원)
조지호는 대한민국 경찰청장을 역임한 경찰공무원으로,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경위로 임관하여 수사, 기획, 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2024년 8월 10일 제24대 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비상계엄 가담 혐의로 직무정지되었다. -
정읍시 출신 -
고광헌
고광헌은 한겨레신문 기자, 대표이사 사장, 서울신문 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언론인이다. -
정읍시 출신 -
김형두 (법조인)
김형두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1993년 판사로 시작해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역임하고 2023년부터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재직 중이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 약력
2.2. 대학 생활과 민주화 운동
1987년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서예 동아리인 '서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호남향우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또한 '동학운동사 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88년 1학기에는 가정 형편으로 인해 휴학하였다. 같은 해 5월 17일 단국대학교 교내에서 열린 광주 영령 추모식에서는 광주 항쟁 성명서를 낭독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2.3. 분신과 사망
1988년 5월 17일, 단국대학교 교내에서 열린 광주 영령 추모식에서 광주 항쟁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튿날인 1988년 5월 18일 오전 11시경, 단국대학교 교내 시계탑 앞에서 분신했다.
분신 후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9일 뒤인 1988년 5월 26일 오후 1시 30분에 사망했다.
1988년 5월 30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2.4. 사후
1988년 5월 26일 오후 1시 30분, 한강성심병원에서 분신 9일 만에 운명했다. 같은 해 5월 30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3. 추모 사업
최덕수 열사를 기리기 위한 추모 사업은 1988년부터 매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과 함께 추모제가 거행되면서 시작되었다. 1996년에는 배영고등학교 교정에 추모비가 건립되었고, 이를 계기로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어 활동을 이어갔다. 2003년에는 정읍시의 지원과 자체 모금으로 추모 조형물이 세워졌으며, 같은 해 최덕수 열사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공식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는 추모 행사의 성격이 '열사정신계승 시민문화제'로 발전하였고, 2008년 20주기를 맞아 시민사회와 동문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추모 사업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3.1. 추모 사업의 시작과 발전
1988년 이후 매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과 함께 최덕수 열사를 기리는 추모제가 거행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녹두사랑청년회의 제안으로 배영고 교정에 추모비가 세워졌으며, 이를 계기로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었다.
2000년 1월, 추모사업회는 정기총회를 열어 추모 조형물 건립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에는 정읍시의 예산 지원 약 50과 자체 모금액 약 10을 합쳐 추모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같은 해 최덕수 열사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공식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는 기존의 추모제를 '열사정신계승 시민문화제'로 명칭과 형식을 변경하여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최덕수 열사 20주기를 맞아 시민사회단체, 모교와 동문, 열사의 동기와 선후배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최덕수열사 20주기 추모사업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추모 사업의 의미를 더했다.
3.2. 추모 조형물 건립과 민주화 운동 유공자 인정
1996년 배영고 교정에 추모비가 건립된 것을 계기로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었다. 이 추모사업회는 2000년 1월 정기총회에서 추모 조형물 건립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2003년 정읍시 예산 50와 자체 모금액 10를 더해 추모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같은 해 최덕수 열사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어 명예를 회복하였다. 명예 회복에 따라 2004년부터는 추모 행사의 성격도 기존의 추모제 형식에서 "열사정신계승 시민문화제"로 변경하여 개최하기 시작했다.
3.3. 추모 행사 형식 변경과 20주기 추모 사업
2003년 최덕수 열사가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함에 따라, 2004년부터 추모 행사의 형식이 기존의 추모제에서 "열사정신계승 시민문화제"로 변경되어 개최되기 시작했다. 이는 1988년 이후 매년 5.18광주민중항쟁 기념식과 함께 열리던 추모제의 성격이 변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전 활동으로는 1996년 녹두사랑청년회의 제안으로 모교인 배영고등학교 교정에 추모비가 건립되었고, 이를 계기로 추모사업회가 결성되었다. 2000년에는 추모 조형물 건립이 추진되어 2003년 정읍시 예산 약 50와 자체 모금액 약 10으로 건립되었다.
2008년에는 최덕수 열사 20주기를 맞아 시민사회단체, 모교와 동문, 열사의 동기와 선후배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최덕수열사 20주기 추모사업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관련 사업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