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칠
1. 개요
최윤칠은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서 선두를 달리다 기권했고,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한국 전쟁 중 보스턴 육상 연맹은 그의 참가를 거부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그의 가족 관계는 배우자 이교수, 아들 최성우, 며느리 김민숙, 손주 최수정, 최병화, 장녀 최양선, 사위 박동우, 외손주 박지성, 박지혜, 차녀 최다미, 사위 나재열, 외손주 나해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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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아시안 게임 육상 참가 선수 -
최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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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남자 마라톤 선수 -
손기정
손기정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으며, 광복 후에는 육상 지도자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기여했다. -
대한민국의 남자 마라톤 선수 -
남승룡
남승룡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대의 마라톤 선수이자 육상 지도자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전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그의 삶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다뤄졌다. -
탐진 최씨 -
최민호 (1956년)
최민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졸업 후 여러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행정고시 합격 후 다양한 요직을 거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역임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이며, 현재 제4대 세종특별자치시장 및 대한민국특별자치시도협의회 초대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
탐진 최씨 -
최성 (1963년)
2. 가족 관계
* 배우자: 이교수
* 아들: 최성우
며느리: 김민숙
* 손주: 최수정, 최병화
* 장녀: 최양선
첫째 사위: 박동우
* 외손주: 박지성, 박지혜
* 차녀: 최다미
둘째 사위: 나재열
* 외손주: 나해균
3.
3.1. 장녀
최윤칠의 장녀는 최양선이며, 첫째 사위는 박동우이다.
4.
5.
6. 경력
최윤칠은 1948년 하계 올림픽 런던 마라톤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결승선 5km를 남겨두고 기권했다. 그는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보스턴 육상 연맹은 다음 해 그의 참가를 거부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BAA 회장 월터 A.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군인들이 한국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데, 모든 한국인은 마라톤 훈련 대신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4월 19일에 열리는 경기에 한국인의 참가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1952년, 최윤칠은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서 4위를 기록했다.
6.1. 1948년 런던 올림픽
최윤칠은 1948년 하계 올림픽 런던 마라톤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결승선 5km를 남겨두고 기권했다.
6.2.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최윤칠은 1948년 하계 올림픽 런던 마라톤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결승선 5km를 남겨두고 기권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보스턴 육상 연맹은 다음 해 그의 참가를 거부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BAA 회장 월터 A. 브라운은 "미국 군인들이 한국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데, 모든 한국인은 마라톤 훈련 대신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4월 19일에 열리는 경기에 한국인의 참가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6.3. 1951년 보스턴 마라톤 참가 거부
한국 전쟁 발발로 인해, 보스턴 육상 연맹(BAA)은 최윤칠의 1951년 보스턴 마라톤 참가를 거부했다. BAA 회장 월터 A. 브라운은 "미국 군인들이 한국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데, 모든 한국인은 마라톤 훈련 대신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4월 19일에 열리는 경기에 한국인의 참가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냉전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스포츠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로,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를 보여준다.
6.4.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최윤칠은 1948년 하계 올림픽 런던 마라톤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결승선 5km를 남겨두고 기권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보스턴 육상 연맹은 다음 해 그의 참가를 거부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BAA 회장 월터 A. 브라운은 "미국 군인들이 한국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는데, 모든 한국인은 마라톤 훈련 대신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4월 19일에 열리는 경기에 한국인의 참가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서 4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