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모 핀토
1. 개요
코시모 핀토는 이탈리아의 권투 선수로, 1964년 도쿄 올림픽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62년 군 복무 후 권투를 시작하여, 1963년 지중해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964년 올림픽에서 결승에서 알렉세이 키셀레프를 꺾고 우승했다. 핀토는 1967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이탈리아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다. 1968년 25세의 나이로 은퇴 후 은행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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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지중해 게임 메달리스트 -
하산 귕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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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지중해 게임 메달리스트 -
하미트 카플란
하미트 카플란은 터키의 레슬링 선수로, 발칸 선수권 대회 입상과 1950년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동메달 획득을 시작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와 올림픽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하며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
1964년 하계 올림픽 복싱 참가 선수 -
조 프레이저
조 프레이저는 미국의 권투 선수로, 1964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통합 챔피언이 되었으며, 37전 32승 4패 1무의 전적을 남겼다. -
1964년 하계 올림픽 복싱 참가 선수 -
리차르다스 타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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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라 출신 -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는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법률가로서, 검사, 하원의원, 장관을 거쳐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이탈리아 대통령을 역임하며 마피아 척결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
노바라 출신 -
비토리오 그레고티
비토리오 그레고티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로, 밀라노 공과대학교 출신이며, 《카사벨라》 편집장과 Gregotti Associati International 설립을 통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 등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건축 이론가로서도 활동했으며 2020년 코로나19로 사망했다.
2. 아마추어 경력
핀토는 1964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에도 아마추어 선수로 남았다. 1967년 로마에서 열린 1967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1965년과 1967년에 이탈리아 복싱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다. 1968년, 1968년 하계 올림픽 직전에 25세의 나이로 복싱에서 은퇴했다.
2.1. 초기 경력
핀토는 1943년 3월 14일 피에몬테주 노바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권투를 시작했고 군 복무 중에도 훈련을 계속했다. 1960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줄리오 사라udi에게 영감을 받았다. 1962년 군 복무를 마친 후 권투 훈련을 시작했다. 1963년, 권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자국에서 열린 지중해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몇 달 후 도쿄로 건너가 예선 토너먼트에서 TKO로 마루야마 타다유키를 꺾고 우승했다.
1964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64년 하계 올림픽에서 불가리아의 알렉산더르 니콜로프와 소련의 알렉세이 키셀료프를 누르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결승전에서 핀토는 예선전에서 강력한 상대로 드러난 알렉세이 키셀료프와 맞붙었다. 경기 결과 두 명의 심판은 1점 차로 핀토의 승리를, 나머지 세 명의 심판은 59점으로 동점이라고 판정했다. 동점을 준 심판 중 두 명은 키셀료프에게, 나머지 한 명은 핀토에게 승리를 주어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올림픽 이후에도 대부분의 팀 동료와는 달리 아마추어 선수로 남았고, 1967년 로마에서 열린 1967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2. 1964년 도쿄 올림픽
핀토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불가리아의 알렉산더르 니콜로프와 소련의 알렉세이 키셀료프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음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복서로 출전한 코시모 핀토의 경기 결과이다.
| 경기 | 상대 선수 | 국가 | 결과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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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강 | 루디 루버스 | {{lang|nl|루디 루버스|} | } (네덜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