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타 루딩
1. 개요
크리스타 루딩은 동독 및 독일의 스피드 스케이팅과 사이클 선수였다. 1988년 동계 올림픽 1000m 금메달, 500m 은메달, 하계 올림픽 사이클 스프린트 은메달을 획득하여 같은 해 하계 및 동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2번 우승했으며, 사이클에서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다. 1992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 동메달 획득을 마지막으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경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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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크리스타 루딩 |
|---|---|
| 출생일 | 1959년 12월 4일 |
| 출생지 | 바이쓰바서, 콧부스 현, 동독 |
| 국적 | 동독, 독일 |
| 배우자 | 에른스트 루딩 |
| 종목 | 스피드 스케이팅, 사이클 |
| 올림픽 메달 | 1984 사라예보 - 500m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1988 캘거리 -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1988 캘거리 - 500m 스피드 스케이팅 은메달 1992 알베르빌 - 500m 스피드 스케이팅 동메달 |
|---|---|
| 세계 스프린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 1985 헤이렌베인 - 종합 금메달 1988 웨스트앨리스 - 종합 금메달 1986 가루이자와 - 종합 은메달 1989 헤이렌베인 - 종합 은메달 1979 인첼 - 종합 동메달 1983 헬싱키 - 종합 동메달 1987 생트푸아 - 종합 동메달 |
| ISU 월드컵 | 1986 - 500m 금메달 1988 - 500m 금메달 1988 - 1000m 금메달 1989 - 500m 금메달 1986 - 1000m 은메달 1989 - 1000m 은메달 |
| 올림픽 메달 | 1988 서울 - 스프린트 은메달 |
|---|---|
| 세계 선수권 대회 | 1986 콜로라도스프링스 - 스프린트 금메달 1987 빈 - 스프린트 은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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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올림픽 사이클 참가 선수 -
루츠 헤슬리히
루츠 헤슬리히는 동독의 사이클 선수로, 1976년과 1977년 주니어 세계 선수권 스프린트 종목에서 우승하고, 1979년, 1983년, 1985년, 1987년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 스프린트 종목에서 우승했으며,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스프린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
독일의 여자 사이클 선수 -
항카 쿠퍼나겔
항카 쿠퍼나겔은 독일의 사이클 선수로, 사이클로크로스, 로드 사이클, 트랙, 산악자전거 등 다양한 종목에서 활동하며, 사이클로크로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4번 우승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인 도로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7년 세계 선수권 개인 타임 트라이얼에서 우승했다. -
동독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 -
군다 니만슈티르네만
군다 니만슈티르네만은 올림픽에서 8개의 메달을 획득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8번 우승하는 등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독일 선수 중 한 명이다. -
동독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 -
우베옌스 마이
우베옌스 마이는 동독 출신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1988년과 1992년 동계 올림픽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고,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와 월드컵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했다.
2. 선수 경력
크리스타 루딩은 10년 이상 스피드 스케이팅과 트랙 사이클에서 세계 최고의 단거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독일 재통일 이전에는 동독 소속으로, 이후에는 독일 소속으로 활동했다. 1988년 겨울(캘거리 올림픽)과 여름(서울 올림픽) 두 올림픽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여 같은 해 하계 및 동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1980년, 루딩은 비시즌 동안 코치이자 훗날 남편이 된 에른스트 루딩의 권유로 사이클을 시작했다. 1986년에는 세계 스프린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와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며 스피드 스케이팅과 사이클 모두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500m와 1000m 종목을 주 종목으로 삼았으며, 보니 블레어, 카린 카니아, 하시모토 세이코 등과 경쟁했다. 특히 블레어와는 세계 기록 경신 횟수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사이클 경기에서는 소련의 에리카 살루먀에가 최대의 라이벌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사이클에서 은퇴하고 스피드 스케이팅에만 집중하여 훈련한 결과,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현역 마지막 레이스였던 세계 스프린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며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2.1. 스피드 스케이팅
크리스타 루딩은 10년 이상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세계 최고의 단거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독일 재통일 이전에는 동독 소속으로, 이후에는 독일 소속으로 활동했다. 세계 스프린트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2번(1985년, 1988년) 세계 챔피언, 2번(1986년, 1989년) 은메달, 4번(1979년, 1983년, 1987년, 1992년) 동메달을 획득했다. 500m 국제빙상경기연맹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에서 3번(1986년, 1988년, 1989년) 우승했고, 1000m 월드컵에서 1번(1988년) 우승했다.
1980년 비시즌 동안 사이클 훈련을 시작, 1986년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 여자 스프린트 부문 트랙 사이클 금메달, 이듬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8년 동계 올림픽 캘거리에서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500m 은메달을 획득했고, 7개월 후 1988년 하계 올림픽 서울에서 트랙 사이클(1000m) 스프린트 은메달을 획득, 같은 해 하계 및 동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웠다. 1992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 은퇴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500m, 1000m 종목에서 뛰어났으며, 미국의 보니 블레어, 동독의 카린 카니아, 일본의 하시모토 세이코 등과 경쟁했다. 특히 블레어와 세계 기록 경신 횟수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선수 경력 동안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8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2.1.1. 주요 대회 성적
| 대회 |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
| 스피드 스케이팅 | |||
| 동계 올림픽 | 1984 (500m) 1988 (1000m) | 1988 (500m) | 1992 (500m) |
| 세계 스프린트 | 1985 1988 | 1986 1989 | 1979 1983 1987 1992 |
| 월드컵 | 1986 (500m) 1988 (500m) 1988 (1000m) 1989 (500m) | 1986 (1000m) 1989 (500m) | |
| 독일 스프린트 | 1981 1982 1983 1992 | 1978 1979 1988 | 1977 |
| 독일 싱글 거리 | 1980 (500m) 1985 (500m) 1986 (500m) 1988 (500m) 1989 (500m) 1991 (500m) 1991 (1000m) | 1980 (1000m) 1984 (500m) 1986 (1000m) 1988 (1000m) 1989 (1000m) | 1983 (500m) 1983 (1000m) 1984 (1000m) |
| 트랙 사이클 | |||
| 하계 올림픽 | 1988 (스프린트) | ||
| 세계 스프린트 | 1986 | 1987 | |
2.1.2. 세계 기록
크리스타 로텐부르거는 선수 경력 동안 8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다.
2.2. 트랙 사이클
1980년, 루딩은 비시즌 동안 코치인 에른스트 루딩(1988년 동계 올림픽 이후 결혼)의 권유로 사이클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케이트만 타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동독 스포츠 연맹 회장의 허락을 받아 국제 사이클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1986년 세계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여자 스프린트 부문 트랙 사이클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듬해 은메달을 획득하여 실라 영에 이어 스피드 스케이팅과 사이클 모두에서 세계 챔피언이 된 두 번째 여성이 되었다. 1986년 10월에는 스포츠에서의 성공으로 금성 인민 우호 훈장 (2등급)을 수여받았다.
1988년 하계 올림픽 in 서울, 대한민국에서 루딩은 트랙 사이클 (1000m) 스프린트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이클 경기에서 그녀의 최대 라이벌은 소련의 에리카 살루먀에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루딩은 사이클에서 은퇴하고 스피드 스케이팅에만 집중했다.
2.2.1. 주요 대회 성적
| 선수권 대회 | 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
| 스피드 스케이팅 | |||
| 동계 올림픽 | 1984 (500 m) 1988 (1000 m) | 1988 (500 m) | 1992 (500 m) |
| 세계 스프린트 | 1985 1988 | 1986 1989 | 1979 1983 1987 1992 |
| 월드컵 | 1986 (500 m) 1988 (500 m) 1988 (1000 m) 1989 (500 m) | 1986 (1000 m) 1989 (500 m) | |
| 독일 스프린트 | 1981 1982 1983 1992 | 1978 1979 1988 | 1977 |
| 독일 싱글 거리 | 1980 (500 m) 1985 (500 m) 1986 (500 m) 1988 (500 m) 1989 (500 m) 1991 (500 m) 1991 (1000 m) | 1980 (1000 m) 1984 (500 m) 1986 (1000 m) 1988 (1000 m) 1989 (1000 m) | 1983 (500 m) 1983 (1000 m) 1984 (1000 m) |
| 트랙 사이클 | |||
| 하계 올림픽 | 1988 (스프린트) | ||
| 세계 스프린트 | 1986 | 1987 | |
2.3. 1988년, 두 번의 올림픽
1988년 동계 올림픽 캘거리에서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 500m 은메달을 획득했다. 7개월 후, 1988년 하계 올림픽 서울에서 트랙 사이클 (1000m) 스프린트 은메달을 획득하여 같은 해에 하계 및 동계 올림픽 메달을 모두 획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또한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 모두에서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여성이자, 전체 선수 중 세 번째 선수였다.
3. 개인사
1980년, 크리스타 루딩은 비시즌 동안 코치이자 훗날 남편이 되는 에른스트 루딩의 권유로 사이클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케이트만 타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결국 동독 스포츠 연맹 회장의 허락을 받아 국제 사이클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1990년 독일 재통일 이전에는 동독 소속으로, 이후에는 통일 독일 소속으로 활동하며 10년 이상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 최고의 단거리 선수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1988년, 루딩은 하계 및 동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라는 영예를 얻었다. 이는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 모두에서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여성, 그리고 전체 선수 중 세 번째 기록이었다. 1988년 동계 올림픽 (캘거리)에서는 1000m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과 500m 은메달을, 7개월 후 1988년 하계 올림픽 (서울)에서는 트랙 사이클(1000m) 스프린트 은메달을 획득했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이 끝난 후 에른스트 루딩과 결혼한 크리스타 루딩은 같은 해 서울 올림픽을 끝으로 사이클에서 은퇴하고 스피드 스케이팅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루딩의 라이벌로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 같은 동독 출신의 카린 카니아, 일본의 하시모토 세이코 등이 꼽힌다. 특히 블레어와는 세계 기록 경신 횟수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사이클에서는 소련의 에리카 살루먀에가 최대 라이벌이었다.
하시모토 세이코는 루딩이 스피드 스케이팅과 사이클 두 종목 모두에서 세계 최정상급 성적을 거둔 것에 영향을 받아 사이클에서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