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뵈른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크리스티안 뵈른스는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여 SV 발트호프 만하임, 바이어 04 레버쿠젠, 파리 생제르맹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66경기에 출전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FC 아우크스부르크 II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크리스티안 뵈른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2006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훈련 중인 뵈른스
이름크리스티안 뵈른스
출생일1972년 5월 10일 (51세)
출생지서독 만하임
1.84m
포지션수비수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1980-1985: 푀닉스 만하임
1985-1989: 발트호프 만하임
클럽1989-1991: 발트호프 만하임 (52경기 3골)
1991-1998: 바이어 레버쿠젠 (211경기 13골)
1998-1999: 파리 생제르맹 (28경기 2골)
1999-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40경기 14골)
총 출장531경기 32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1990-1993: 독일 U-21 (16경기 1골)
1992-2005: 독일 (66경기 0골)
감독 경력
감독2009–2011: 홈브루허 SV (유소년)
2012–2013: VfL 보훔 U15
2013–2014: FC 샬케 04 U17
2014–2015: SpVgg 운터하힝 (assistant)
2014–2015: SpVgg 운터하힝 U16
2016–2017: FC 아우크스부르크 II
2017–2018: TSV 1860 뮌헨 U19
수상
유로1992 스웨덴 준우승
참고자료
분데스리가 2000-2010 10년간의 팀Goal.com
선수 프로필worldfootball.net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리그 1의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리그 1의 축구 선수 - 에마뉘엘 프티
    에마뉘엘 프티는 프랑스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AS 모나코, 아스널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등에서 뛰었고, 특히 아스널과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요 우승을 차지했으며, 은퇴 후 축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손흥민
    손흥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프랑스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프랑스의 외국인 남자 축구 선수 - 마르코 엘스네르
    마르코 엘스네르는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OGC 니스,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등에서 활동한 축구 수비수이며,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리그 및 컵 우승,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로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고, 은퇴 후에는 축구 선수 가족으로 명성을 얻었다.

2. 클럽 경력

뵈른스는 만하임에서 태어나, 1989년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1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93년 클럽 사상 첫 독일 컵 우승에 기여했다. 1998년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지만 적응에 실패하여, 이듬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여 2008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2.1. SV 발트호프 만하임 (1989-1991)

뵈른스는 17세 3개월 30일의 나이에 SV 발트호프 만하임 소속으로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였으며, 당시 역대 4번째로 젊은 데뷔 선수였다. 그는 첫 시즌에 18경기에 출전하였고, 그다음 시즌에는 2 분데스리가 34경기에 출전하였다.

2.2.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1-1998)

뵈른스는 1991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는 레버쿠젠에서 수비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스위퍼 옌스 노보트니, 마르쿠스 하페와 함께 약 10년 동안 팀의 강력한 수비를 이끌었다. 1993년에는 독일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3. 파리 생제르맹 FC (1998-1999)

1998년, 뵈른스는 프랑스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하며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착에 실패하여 한 시즌 만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였다.

2.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9-2008)

1998년,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망 FC로 이적하며 해외 리그에서 활동했으나 정착에 실패했다. 결국 1999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고, 2008년에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활약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뵈른스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득점 기록은 없다.

* UEFA 유로 1992: 후보 선수로 출전하여 준우승(은메달)을 차지했다.
* UEFA 유로 1996: 시즌 이후에 생긴 부상으로 인해 뵈른스는 독일의 유로 1996 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 1998년 FIFA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다. 뵈른스는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40분에 다보르 슈케르를 상대로 거친 태클을 걸기 전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백패스를 가로챈 슈케르는 독일 수비를 파고들며 문전에 접근하였다. 이 위험을 늦게 알아챈 뵈른스는 슈케르에 태클을 걸었고, 슈케르는 그라운드에 몇 차례 구르며 넘어졌다. 그는 완벽한 골 찬스를 방해함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 주심 루네 페데르센은 뵈른스에게 즉시 퇴장 명령을 내렸고, 그의 퇴장에 충격을 받은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0-3 참패를 당하였다.
* 2002년 FIFA 월드컵: 뵈른스는 또다시 부상을 당하였고, 대회에 준우승을 거둔 독일 스쿼드의 최종 엔트리에 낙마하였다.
* UEFA 유로 2004: 그는 네덜란드전과 라트비아전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나, 독일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 2006년 FIFA 월드컵: 위르겐 클린스만이 발표한 22인 스쿼드에서, 34세였던 뵈른스는 백업 스쿼드에 포함되는데 그쳤다. 그 결정은 뵈른스가 부당하다는 인터뷰를 하도록 하였다. 그는 클린스만에게 인터뷰에서 폭언을 한 것에 대해 독일 축구 연맹은 뵈른스에게 중징계를 내렸고, 그는 더 이상 아들러 마크를 달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한 일이 울리 슈타인(1986년 FIFA 월드컵 도중)과, 슈테판 에펜베르크(1994년 FIFA 월드컵 도중)에게도 있었다. 뵈른스의 국가대표팀 제외는 독일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이탈리아가 친선 경기에서 독일을 4-1로 완파하자 클린스만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독일 대표팀은 2006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 랭킹 22위에 머물렀다. 독일은 결국 이 토너먼트에서 3위를 차지했다(동메달).

2004년 독일 소속의 뵈른스
2004년 독일 소속의 뵈른스

4. 감독 경력

뵈른스는 2015년 12월 29일 FC 아우크스부르크 II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20경기에서 16점을 얻은 팀을 맡았다. 그의 첫 감독 경기는 2016년 2월 20일 FC 잉골슈타트 04 II를 상대로 4-1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 2016년 3월 12일, 아우크스부르크 II는 슈피엘페어아인히궁 운터하힝에게 6-0으로 패했다.

5. 수상 내역

뵈른스는 선수 시절 여러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했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UEFA 유로 1992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대회내용
1995–96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1996–97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1997–98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2001–02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5.1. 클럽

1989년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역대 4번째로 어린 나이에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1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93년 클럽 사상 첫 독일 컵을 획득했다. 1998년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지만 적응에 실패하여, 이듬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2008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5.2. 국가대표팀

뵈른스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득점 기록은 없다.

* UEFA 유로 1992: 후보 선수로 출전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 UEFA 유로 1996: 시즌 이후에 생긴 부상으로 인해 독일의 유로 1996 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 1998년 FIFA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다.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40분에 다보르 슈케르를 상대로 거친 태클을 걸기 전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백패스를 가로챈 슈케르는 독일 수비를 파고들며 문전에 접근하였다. 이 위험을 늦게 알아챈 뵈른스는 슈케르에게 태클을 걸었고, 슈케르는 그라운드에 몇 차례 구르며 넘어졌다. 그는 완벽한 골 찬스를 방해함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 주심 루네 페데르센은 뵈른스에게 즉시 퇴장 명령을 내렸고, 그의 퇴장에 충격을 받은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0-3 참패를 당하였다.
* 2002년 FIFA 월드컵: 부상으로 대회에 준우승을 거둔 독일 스쿼드의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UEFA 유로 2004: 네덜란드전과 라트비아전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나, 독일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 2006년 FIFA 월드컵: 위르겐 클린스만이 발표한 22인 스쿼드에서, 34세였던 뵈른스는 백업 스쿼드에 포함되는 데 그쳤다. 그 결정은 뵈른스가 부당하다는 인터뷰를 하도록 하였다. 그는 클린스만에게 인터뷰에서 폭언을 한 것에 대해 독일 축구 연맹은 뵈른스에게 중징계를 내렸고, 그는 더 이상 아들러 마크를 달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한 일이 울리 슈타인(1986년 FIFA 월드컵 도중)과, 슈테판 에펜베르크(1994년 FIFA 월드컵 도중)에게도 있었다.

2004년 독일 소속의 뵈른스
2004년 독일 소속의 뵈른스

5.3. 개인

👆
좌우로 밀어서 보기
연도대회내용
1995–96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1996–97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1997–98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2001–02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