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뵈른스
1. 개요
크리스티안 뵈른스는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여 SV 발트호프 만하임, 바이어 04 레버쿠젠, 파리 생제르맹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66경기에 출전했으며, UEFA 유로 1992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FC 아우크스부르크 II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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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크리스티안 뵈른스 |
|---|---|
| 출생일 | 1972년 5월 10일 (51세) |
| 출생지 | 서독 만하임 |
| 키 | 1.84m |
| 포지션 |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1980-1985: 푀닉스 만하임 1985-1989: 발트호프 만하임 |
|---|---|
| 클럽 | 1989-1991: 발트호프 만하임 (52경기 3골) 1991-1998: 바이어 레버쿠젠 (211경기 13골) 1998-1999: 파리 생제르맹 (28경기 2골) 1999-200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40경기 14골) |
| 총 출장 | 531경기 32골 |
| 국가대표팀 | 1990-1993: 독일 U-21 (16경기 1골) 1992-2005: 독일 (66경기 0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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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2009–2011: 홈브루허 SV (유소년) 2012–2013: VfL 보훔 U15 2013–2014: FC 샬케 04 U17 2014–2015: SpVgg 운터하힝 (assistant) 2014–2015: SpVgg 운터하힝 U16 2016–2017: FC 아우크스부르크 II 2017–2018: TSV 1860 뮌헨 U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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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 | 1992 스웨덴 준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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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데스리가 2000-2010 10년간의 팀 | Goal.com |
|---|---|
| 선수 프로필 | worldfootbal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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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손흥민
손흥민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윙어 또는 스트라이커로 뛰며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활약, 아시아 선수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계적인 축구 스타이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1972년 출생 -
나르게스 모하마디
이란의 인권 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여성 인권과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활동하며 이란 정부에 의해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2023년에는 이란 여성 억압에 맞선 투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수감 중에도 저술 활동을 통해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
1972년 출생 -
김여진
김여진은 1998년 영화 데뷔 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우이다.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 '황금 세대'의 일원인 루이스 피구는 스포르팅 CP,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에서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세리에 A 등 주요 대회에서 우승하고 2000년 발롱도르, 2001년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산티아고 카니사레스
스페인 전직 축구 선수 산티아고 카니사레스는 골키퍼로 활약, 레알 마드리드 데뷔 후 발렌시아 CF에서 10년 이상 활동하며 라리가, UEFA컵 우승 등을 차지했고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은퇴 후 랠리 선수 및 축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뵈른스는 만하임에서 태어나, 1989년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1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93년 클럽 사상 첫 독일 컵 우승에 기여했다. 1998년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지만 적응에 실패하여, 이듬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여 2008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2.1. SV 발트호프 만하임 (1989-1991)
뵈른스는 17세 3개월 30일의 나이에 SV 발트호프 만하임 소속으로 분데스리가에 데뷔하였으며, 당시 역대 4번째로 젊은 데뷔 선수였다. 그는 첫 시즌에 18경기에 출전하였고, 그다음 시즌에는 2 분데스리가 34경기에 출전하였다.
2.2.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1-1998)
뵈른스는 1991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는 레버쿠젠에서 수비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스위퍼 옌스 노보트니, 마르쿠스 하페와 함께 약 10년 동안 팀의 강력한 수비를 이끌었다. 1993년에는 독일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3. 파리 생제르맹 FC (1998-1999)
1998년, 뵈른스는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하며 해외 리그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착에 실패하여 한 시즌 만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였다.
2.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9-2008)
1998년,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망 FC로 이적하며 해외 리그에서 활동했으나 정착에 실패했다. 결국 1999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고, 2008년에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활약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뵈른스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득점 기록은 없다.
* UEFA 유로 1992: 후보 선수로 출전하여 준우승(은메달)을 차지했다.
* UEFA 유로 1996: 시즌 이후에 생긴 부상으로 인해 뵈른스는 독일의 유로 1996 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 1998년 FIFA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다. 뵈른스는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40분에 다보르 슈케르를 상대로 거친 태클을 걸기 전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백패스를 가로챈 슈케르는 독일 수비를 파고들며 문전에 접근하였다. 이 위험을 늦게 알아챈 뵈른스는 슈케르에 태클을 걸었고, 슈케르는 그라운드에 몇 차례 구르며 넘어졌다. 그는 완벽한 골 찬스를 방해함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 주심 루네 페데르센은 뵈른스에게 즉시 퇴장 명령을 내렸고, 그의 퇴장에 충격을 받은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0-3 참패를 당하였다.
* 2002년 FIFA 월드컵: 뵈른스는 또다시 부상을 당하였고, 대회에 준우승을 거둔 독일 스쿼드의 최종 엔트리에 낙마하였다.
* UEFA 유로 2004: 그는 네덜란드전과 라트비아전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나, 독일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 2006년 FIFA 월드컵: 위르겐 클린스만이 발표한 22인 스쿼드에서, 34세였던 뵈른스는 백업 스쿼드에 포함되는데 그쳤다. 그 결정은 뵈른스가 부당하다는 인터뷰를 하도록 하였다. 그는 클린스만에게 인터뷰에서 폭언을 한 것에 대해 독일 축구 연맹은 뵈른스에게 중징계를 내렸고, 그는 더 이상 아들러 마크를 달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한 일이 울리 슈타인(1986년 FIFA 월드컵 도중)과, 슈테판 에펜베르크(1994년 FIFA 월드컵 도중)에게도 있었다. 뵈른스의 국가대표팀 제외는 독일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이탈리아가 친선 경기에서 독일을 4-1로 완파하자 클린스만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독일 대표팀은 2006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 랭킹 22위에 머물렀다. 독일은 결국 이 토너먼트에서 3위를 차지했다(동메달).
4. 감독 경력
뵈른스는 2015년 12월 29일 FC 아우크스부르크 II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20경기에서 16점을 얻은 팀을 맡았다. 그의 첫 감독 경기는 2016년 2월 20일 FC 잉골슈타트 04 II를 상대로 4-1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 2016년 3월 12일, 아우크스부르크 II는 슈피엘페어아인히궁 운터하힝에게 6-0으로 패했다.
5.1. 클럽
1989년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역대 4번째로 어린 나이에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1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1993년 클럽 사상 첫 독일 컵을 획득했다. 1998년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했지만 적응에 실패하여, 이듬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2008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5.2. 국가대표팀
뵈른스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66경기에 출장하였으나, 득점 기록은 없다.
* UEFA 유로 1992: 후보 선수로 출전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 UEFA 유로 1996: 시즌 이후에 생긴 부상으로 인해 독일의 유로 1996 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 1998년 FIFA 월드컵: 독일 국가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었다.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40분에 다보르 슈케르를 상대로 거친 태클을 걸기 전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로타어 마테우스의 백패스를 가로챈 슈케르는 독일 수비를 파고들며 문전에 접근하였다. 이 위험을 늦게 알아챈 뵈른스는 슈케르에게 태클을 걸었고, 슈케르는 그라운드에 몇 차례 구르며 넘어졌다. 그는 완벽한 골 찬스를 방해함에 따라 노르웨이 출신 주심 루네 페데르센은 뵈른스에게 즉시 퇴장 명령을 내렸고, 그의 퇴장에 충격을 받은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0-3 참패를 당하였다.
* 2002년 FIFA 월드컵: 부상으로 대회에 준우승을 거둔 독일 스쿼드의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 UEFA 유로 2004: 네덜란드전과 라트비아전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으나, 독일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 2006년 FIFA 월드컵: 위르겐 클린스만이 발표한 22인 스쿼드에서, 34세였던 뵈른스는 백업 스쿼드에 포함되는 데 그쳤다. 그 결정은 뵈른스가 부당하다는 인터뷰를 하도록 하였다. 그는 클린스만에게 인터뷰에서 폭언을 한 것에 대해 독일 축구 연맹은 뵈른스에게 중징계를 내렸고, 그는 더 이상 아들러 마크를 달 수 없게 되었다. 비슷한 일이 울리 슈타인(1986년 FIFA 월드컵 도중)과, 슈테판 에펜베르크(1994년 FIFA 월드컵 도중)에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