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셀루스
1. 개요
퀴프셀루스는 기원전 7세기 코린토스의 참주로, 에에티온과 랍다의 아들이다. 델포이 신탁에 의해 살해 위협을 받았으나, 어머니 랍다가 궤에 숨겨 살아남았다. 기원전 657년 바키아다이들을 추방하고 코린토스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제우스 신에게 시민 재산의 일부를 바치는 약속을 이행했다. 가혹한 통치와는 별개로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32년간의 통치 후 아들 페리안드로스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사람 -
아이소포스
아이소포스는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화 작가이지만, 실존 여부, 출생지, 노예 생활, 웅변술, 징조 해석 능력, 여러 인물과의 교류, 아테네에서의 활동, 사망 경위, 저술 여부, 외모, 아프리카 기원 등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사람 -
티르타이오스
기원전 7세기 후반 스파르타의 애가 시인 티르타이오스는 격동기에 스파르타인들에게 충성과 용기를 고취하는 시를 써서 사회의 군사적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헌법', '교훈', '전쟁 노래' 등이 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기원전 7세기 사망 -
헤시오도스
헤시오도스는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인으로, 『신통기』와 『일과 날』을 통해 신화, 우주론, 농업, 윤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당대 사회상과 가치관을 반영했고, 농부이자 방랑 음유시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 정의와 노동의 가치를 성찰하여 서구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7세기 사망 -
제 희공
제 희공은 제나라의 제후로서 주변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송나라와 위나라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며 북융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으나, 말년에 후계 구도에 혼란을 야기하다가 재위 33년 만에 사망했다.
2. 생애
퀴프셀루스는 에에티온과 코린토스를 지배하는 바키아다이/Bacchiadae영어(바키스 일족)의 랍다/Labda (mythology)영어의 아들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퀴프셀루스는 델포이에서 불길한 신탁이 내려졌기 때문에 바키아다이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에에티온 저택에 온 자객들은 랍다에게 아이를 보여달라고 했고, 퀴프셀루스를 안았는데, 퀴프셀루스가 생긋 웃었기 때문에 그들은 측은함을 느껴 죽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객들은 한 번 에에티온 저택을 나갔지만, 다시 돌아왔다. 그 당시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던 랍다는 궤(퀴프스레) 안에 아기를 숨겨 위기를 넘겼다。이 때문에 이 아기는 퀴프셀루스라고 이름 붙여졌다. 퀴프셀루스는 나중에 이 궤를 올림피아에 봉납했다。성장한 퀴프셀루스는 기원전 657년에 바키아다이들을 델포이의 신탁을 묻기 위해 시외로 내보낸 뒤 그대로 추방하여 코린토스의 참주가 되었다。그때 퀴프셀루스는 제우스 신에게 도시의 정권을 잡으면 코린토스 시민의 전 재산을 봉납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권을 탈취한 그는 시민에게 재산 목록을 작성하게 하고 그 10분의 1을 가져다가 봉납했고, 그것을 10년 동안 반복하여 코린토스 시민을 무일푼으로 만들지 않고 약속을 지켰다。참주가 된 퀴프셀루스는 많은 코린토스인을 살해하거나 추방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등 가혹한 정치를 펼쳤지만, 한편으로는 퀴프셀루스는 민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여 호위병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32년간의 통치 후 퀴프셀루스는 죽었고, 지위는 아들인 페리안드로스/Periander영어가 계승했다。
2.1. 초기 생애와 집권
퀴프셀루스는 에에티온과 코린토스를 지배하는 바키스 일족의 랍다의 아들이다. 퀴프셀루스는 태어난 직후 델포이에서 불길한 신탁이 내려져 바키스 일족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에에티온의 집에 온 자객들은 랍다에게 아이를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퀴프셀루스를 안았을 때 그가 웃자 측은함을 느껴 죽이지 못했다. 자객들은 다시 돌아왔지만, 랍다가 궤(퀴프셀레) 안에 아기를 숨겨 위기를 넘겼다. 퀴프셀루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으며, 그는 나중에 이 궤를 올림피아에 봉헌했다.
성장한 퀴프셀루스는 기원전 657년에 바키스 일족을 델포이의 신탁을 핑계로 추방하고 코린토스의 참주가 되었다. 퀴프셀루스는 제우스 신에게 도시의 정권을 잡으면 코린토스 시민의 전 재산을 바치겠다고 약속했고, 정권 탈취 후 시민들에게 재산 목록을 작성하게 한 뒤 그 10분의 1을 10년간 바쳐 약속을 지켰다. 참주가 된 퀴프셀루스는 많은 코린토스인을 살해, 추방하거나 재산을 몰수했지만, 민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호위병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32년간 통치 후 퀴프셀루스가 사망하자 아들 페리안드로스가 그 지위를 계승했다.
2.2. 통치와 유산
퀴프셀루스는 에에티온과 코린토스를 지배하는 바키아다이(Bacchiadae) 일족의 랍다/Labda (mythology)영어의 아들이다. 퀴프셀루스는 델포이의 불길한 신탁 때문에 바키아다이에게 살해당할 뻔했으나, 랍다가 궤(퀴프스레) 안에 아기를 숨겨 위기를 넘겼다. 퀴프셀루스는 이 궤를 올림피아에 봉납했다.
성장한 퀴프셀루스는 기원전 657년에 바키아다이들을 추방하고 코린토스의 참주가 되었다. 그는 코린토스 시민의 재산 10분의 1을 10년 동안 제우스 신에게 봉납하여 약속을 지켰다. 퀴프셀루스는 가혹한 정치를 펼쳤지만, 민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호위병을 두지 않았다. 32년간의 통치 후 퀴프셀루스는 죽었고, 아들인 페리안드로스/Periander영어가 지위를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