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허버드
1. 개요
토머스 허버드는 1943년 켄터키 주에서 태어난 미국의 외교관이다. 앨라배마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국무부에 들어가, 주 도미니카 미국 대사관, 주후쿠오카 미국 영사관, 주일본 미국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다. 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경제 협력 개발 기구 미국 대표부 에너지 담당관을 역임했으며, 1989년 공사참사관으로 승진했다. 주 말레이시아, 주 필리핀 수석 공사, 수석 국무 차관보 대리, 주 필리핀 대사 및 주 팔라우 대사를 거쳐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냈다. 주한 미국 대사 재임 중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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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43년 |
|---|---|
| 국적 | 미국 |
| 직업 | 외교관 |
|---|---|
| 주필리핀 미국 대사 | 임기 시작: 1996년 7월 11일 임기 종료: 2000년 7월 9일 |
| 주한 미국 대사 | 임기 시작: 2001년 8월 임기 종료: 2004년 8월 |
| 소속 | 맥라티 어소시에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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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 -
윌리엄 스티븐슨
윌리엄 스티븐슨은 미국의 육상 선수로서 1924년 파리 올림픽 4 x 400m 릴레이 금메달을 획득하고, 법조인, 외교관, 교육자로도 활동하며 뉴욕 남부 지방 검찰청 검사보, 로펌 설립, 미국 적십자사 활동, 오벌린 대학교 총장, 주 필리핀 미국 대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 -
스티븐 보즈워스
스티븐 보즈워스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국무부에서 근무하며 여러 나라의 미국 대사관에서 활동했고, 특히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기여했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2016년 사망했다. -
켄터키주의 정치인 -
존 C. 브레킨리지
존 C. 브레킨리지는 켄터키주 출신의 정치인이자 군인으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부통령을 지냈으며, 남북전쟁에서 남부 연합군 장군으로 활동하고 남부 연합의 마지막 전쟁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
켄터키주의 정치인 -
제퍼슨 데이비스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인 제퍼슨 데이비스는 아메리카 연합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연합을 이끌었으며, 노예제 옹호와 남부 연합 지도자로서의 역할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1943년 출생 -
존 케리
존 케리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매사추세츠주 연방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200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현재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기후변화 문제 담당 대통령 특사로 활동하고 있다. -
1943년 출생 -
황석영
황석영은 만주 출생으로 한국 전쟁을 겪고 성장하여 사회 현실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을 쓴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2. 생애
토머스 허버드는 1943년 켄터키 주에서 태어났다. 앨라배마 대학교를 1965년 졸업하고 미국 국무부에 들어갔다. 앨라배마 대학교에서는 학생 친목 단체 파이 베타 카파에 소속되어 있었다.
도미니카 미국 대사관을 거쳐 1969년 일본 요코하마의 국무성 일본어 연수소에서 일본어 연수를 받았다. 이후 주후쿠오카 미국 영사관에서 경제 담당관, 주일본 미국 대사관 정치부에서 근무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는 국무성 본성의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일본부에서 경제 담당관으로 근무했다. 1975년 1월, 경제 협력 개발 기구 미국 대표부에서 근무하며 프랑스 파리로 부임하여 에너지 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1978년 8월에 파리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다시 주일본 대사관 정치부에서 근무했다.
1981년 워싱턴 D.C.로 귀국하여 1982년까지 공화당 하원 의원 짐 리치 (아이오와 주 선출)의 의회 보좌관으로 근무한 후 국무성 인사국에서 교육·연락 담당관으로 근무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필리핀부 부부장, 1985년 6월부터 1987년까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일본부 부장으로 근무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주 말레이시아 수석 공사,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주 필리핀 수석 공사로 근무했다. 1989년 공사참사관으로 승진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수석 국무 차관보 대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로 근무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주 필리핀 대사 및 주 팔라우 대사,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로 근무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2.2. 외교 경력
토머스 허버드는 1965년 미국 국무부에 입성했다. 도미니카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 후, 1969년 일본 요코하마의 국무성 일본어 연수소에서 일본어 연수를 받았다. 주후쿠오카 미국 영사관 경제 담당관 (1969년), 주일본 미국 대사관 정치부 (1971년-1973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일본부 경제 담당관 (1973년-1975년)을 역임했다. 1975년 1월부터 경제 협력 개발 기구 미국 대표부에서 에너지 담당관 등으로 근무했다. 1978년 8월, 다시 주일본 미국 대사관 정치부에서 근무했다.
1981년 워싱턴 D.C.로 귀국, 1982년까지 공화당 하원 의원 짐 리치 (아이오와 주 선출)의 의회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국무성 인사국 교육·연락 담당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필리핀부 부부장 (1984년-1985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일본부 부장 (1985년 6월-1987년)을 역임했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주 말레이시아 수석 공사로 근무했으며, 1989년 공사참사관으로 승진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주 필리핀 수석 공사,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수석 국무 차관보 대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로 근무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주 필리핀 대사 및 주 팔라우 대사를 역임했다.
2001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스티븐 보즈워스의 후임이자 크리스토퍼 힐의 전임으로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주한 미국 대사 재임 기간 중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인해 한미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허버드 대사는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두 여중생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으나,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반미 감정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