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성지
1. 개요
통영성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 숙종 4년(1678)에 축조된 성이다. 평지와 산지를 활용하여 흙과 돌로 쌓았으며, 둘레는 2800m, 높이는 4.5m이다. 4대문, 2개의 암문, 3개의 포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있다. 통영성은 조선 후기 축성 기술과 국방 정책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해안 방어 체계 강화와 백성 보호를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 이름 | 통영성지 |
|---|---|
| 한자 표기 | 統營城址 |
| 그림 | Replace this image male-ko.svg |
| 그림 크기 | 150 |
| 국가 | 대한민국 |
| 위치 | 경상남도 통영시 북신동 238번지 |
| 유형 | 기념물 |
| 지정 번호 | 106 |
| 지정일 | 1991년 12월 23일 |
| 시대 | 조선시대 |
| 면적 | 156,851m2 |
| 필지 수 | 32필 |
| 문화재청 ID | 23,010600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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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축성 배경 및 목적
숙종 4년(1678)에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백성의 거주지와 생업지를 보호하고자 통영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빈번했던 왜구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방 정책의 일환이었다.
3. 구조 및 특징
통영성은 평지와 산악 지형을 모두 활용하여 축조되었으며, 흙과 돌을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해발 174.2m의 여황산 양쪽 등성 약 1000m는 흙으로 쌓았고 나머지는 돌로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2800m, 높이는 4.5m이다.
3.1. 성문 및 부속 시설
통영성은 왜적을 방어하고 거주지와 생업지를 분리하는 두 가지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조선 숙종 4년(1678)에 쌓기 시작하였다.
4대문과 2개의 암문(적 또는 상대편이 알 수 없도록 꾸민 작은 성문), 3개의 포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인가가 들어서면서 성문의 주춧돌만 몇 개 남아있다.
4. 역사적 가치 및 의의
통영성은 왜적의 침입을 막고 백성들의 거주지와 생업지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조선 숙종 4년(1678)에 축성을 시작하였다. 평지와 산지의 지형을 함께 활용하여 건설되었으며, 여황산(해발 174.2m) 양쪽 등성이 약 1000m는 흙으로, 나머지는 돌로 쌓았다. 성의 둘레는 2800m, 높이는 4.5m이다.
이러한 축성 방식은 조선 후기 축성 기술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통영성은 해안 방어 체계를 강화하고 백성을 보호하려는 당시의 시대상과 국방 정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