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당포성
1. 개요
통영 당포성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에 위치한 석축 산성으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축조했다. 임진왜란 시기에는 왜구에게 점령당했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탈환되어 당포승첩의 무대가 되었다. 현재 석축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망루터와 옹성 등에서 역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
통영시의 건축물 -
통영종합버스터미널
통영종합버스터미널은 경상남도 통영시에 위치하며, 전국 각지로 운행하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노선을 제공한다. -
통영시의 건축물 -
통영성지
통영성은 왜구 침입에 대비하여 1678년에 축조된 흙과 돌로 쌓은 성으로, 해안 방어 체계 강화와 백성 보호를 위한 조선 후기 축성 기술과 국방 정책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통영시의 문화유산 -
통영해저터널
1932년 완공된 동양 최초의 해저 터널인 통영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에 통영과 미륵도를 잇는 주요 연결 통로로 건설되었으며, 현재는 보행자 전용 터널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통영시의 문화유산 -
통영오광대
통영오광대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사자춤을 포함하는 특징을 지닌 중요무형문화재이다. -
대한민국의 지리에 관한 -
부산민주공원
부산민주공원은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공원 내에 위치하며 부마민주항쟁 20주년 기념으로 1999년에 개관한 공원으로,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산광역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며, 부산광역시 조례에 따라 관리된다. -
대한민국의 지리에 관한 -
한강공원
한강공원은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공원 시스템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의 한강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조성되었으며,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문화, 예술, 레저 공간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제공하며 생태계 보전에도 기여한다.
2. 역사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통영 당포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이 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 시켰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높이 2.7m, 폭 4.5m이다.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하여 높이 지은 망루터가 남아있으며, 문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2.1. 고려 시대 축성
통영 당포성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이 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 시켰다.
2.2. 조선 시대 활용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백성과 병사를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 시켰다.
3. 구조
3.1. 성벽 및 시설
3.2. 망루 및 옹성
4. 의의와 가치
통영 당포성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군사적 요충지이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승리한 당포승첩의 역사적 현장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통영 당포성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쌓은 성으로, 2중 기단을 형성한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게 점령당하기도 했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탈환되어 당포승첩이라는 역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 높이, 폭 등을 통해 당시 성곽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망루터와 옹성 등의 흔적은 통영 당포성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여준다. 특히, 잘 보존된 옹성은 조선시대 성곽 축조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4.1. 군사적 요충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켰다.
4.2. 역사적 현장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 시켰다.
4.3. 문화 유산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는데, 이것이 당포승첩이다.
성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대부분 돌을 쌓아 만든 성)이다.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 시켰다.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높이 2.7m, 폭 4.5m이다.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하여 높이 지은 망루터가 남아있으며, 문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