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륙한발릉
1. 개요
파륙한발릉은 524년 옥야진에서 반란을 일으켜 옥야진장을 살해하고 진왕을 칭했다. 그는 북위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으나, 유연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북하로 도주하여 행방불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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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란자 -
적미군
왕망의 실정과 황하 대홍수로 삶이 피폐해진 농민들이 봉기하여 붉은 눈썹으로 아군을 구별한 데서 유래한 적미군은, 번숭, 여모 등의 지도 아래 세력을 확장하여 장안을 점령하고 유분자를 황제로 옹립했으나 후한 광무제에게 진압된 왕망의 신나라 말기 산둥 지역의 대규모 농민 반란군이다. -
중국의 반란자 -
황건적
황건적은 후한 말기 장각이 태평도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일으킨 황건의 난에 참여한 세력으로, 누런 두건을 쓰고 봉기하여 사회 혼란 속에서 세력을 확장했지만 난은 실패로 끝나 후한 멸망과 삼국시대 도래에 영향을 미쳤다. -
북위 사람 -
북주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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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사람 -
걸복치반
걸복치반은 서진의 군주로, 후진과 남량에 인질로 보내졌다가 세력을 확장하여 즉위, 토욕혼, 남량, 후진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고 북량과의 전쟁을 치렀으며, 말년에는 북위에 신하를 자처했다. -
중국의 실종자 -
건문제
건문제는 명나라의 제2대 황제로, 유교적 이상 정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시도했으나 숙부들의 반란으로 실종되었고 사후 복권되었다. -
중국의 실종자 -
게둔 초에키 니마
게둔 초에키 니마는 1995년 달라이 라마 14세에 의해 11대 판첸 라마로 지명되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체포 및 가택 연금된 이후 행방이 묘연한 6세 소년으로, 이는 차기 판첸 라마 선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갈등의 상징이며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2. 생애
흉노의 우곡려왕 반륙계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524년 옥야진(沃野鎭)에서 반란을 일으켜 북위에 대항하였으나, 525년 유연의 개입과 북위군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되어 몰락하였다.
2.1. 초기 활동과 반란
524년(정광 5년) 3월, 파륙한발릉은 옥야진(沃野鎭)에서 사람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켜 옥야진장을 살해하고, 진왕이라는 연호를 세웠다. 부장 위가고(衛可孤)를 파견하여 무천진과 회삭진을 포위하게 했다. 4월에는 고평진(高平鎭)의 호침이 이에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5월, 파륙한발릉은 북위의 임회왕 원욱을 오원(五原)에서 격파했으며, 안북장군 이숙인(李淑仁)을 백도(白道)에서 격파했다.
북위의 이숭이 최섬, 광양왕 원연, 이신기 등을 이끌고 북벌해 오자, 파륙한발릉은 7월에 백도 북쪽에서 최섬을 격파하고, 이숭에게 맹공을 가해 운중으로 철수시켰다. 파륙한발릉은 이숭과 대치하며 겨울에 이르렀다. 이숭은 장사 조영의 군자금 횡령 사건의 책임을 물어 낙양으로 소환되었고, 위군(魏軍)의 지휘권은 광양왕 원연에게 인계되었다.
525년(효창 원년) 3월, 파륙한발릉의 별수(別帥) 왕야불(王耶불) 등이 회삭진을 함락시켰다.
2.2. 북위와의 전투
524년 옥야진(沃野鎭) 주민들을 모아 옥야진장(沃野鎭將)을 살해하고 연호를 진왕(眞王)으로 하였다. 이후 부장(部將)인 위가고(衛可孤)를 보내어 무천진과 회삭진을 공격하였으며, 고평진(高平鎭)의 호침이 이에 호응해 반란에 참가하였다. 그 뒤 오원(五原)에서 원욱을 격파하였으며, 백도(白道)에서 이숙인(李淑仁)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숭이 공격해오자 그 부하인 최섬을 격퇴하였으며, 결국 이숭은 낙양으로 소환되었고 원연(元淵)이 그 뒤를 잇게 되었다.
525년 유연의 군주 아나괴가 북위를 구원하기 위해 10만의 군사를 파병해 옥야진과 무천진을 공격하자 연패했으며, 이후 원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으나 하발승에게 패해 철수하였다. 또한 자신들을 지원하던 철륵이 우근에 공격당하는 등 세력이 악화되었으며, 그 뒤 원연의 복병에 패해 도주한 뒤 유연의 군사에 패배하여 북하로 도망하여 이후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2.3. 유연의 개입과 몰락
525년 유연의 군주 아나괴가 북위를 돕기 위해 10만 명의 군사를 보내 옥야진과 무천진을 공격하자, 파륙한발릉은 계속해서 패배하였다. 그해 6월에는 오원에 주둔하던 북위의 광양왕 원연의 군대를 포위했으나, 하발승이 이끄는 기병 200명에게 패하여 물러나야 했다. 또한 북위의 장류참군 우근이 파륙한발릉을 지원하던 서부 철륵을 회유하여 3만 호 이상을 이탈시키는 등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파륙한발릉은 광양왕 원연의 복병에 패하여 도주하였고, 유연의 군대에게도 패하였다. 그는 소수의 부하와 함께 북하를 건너 남쪽으로 도망쳤으며,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