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인판타 마리아 안토니아
1. 개요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안토니아는 1862년 바덴 대공국에서 미겔 1세와 아델하이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4년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와 결혼하여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남편 사후 망명 생활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룩셈부르크로 이주하여 96세에 사망했으며, 포르투갈의 주앙 6세의 마지막 생존 손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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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파르마 공작 부인 (명목상) |
|---|---|
| 전체 이름 | 마리아 안토니아 아델라이데 카밀라 카롤리나 에울랄리아 레오폴디나 소피아 이네스 프란시스카 드 아시스 에 드 파울라 미카엘라 라파엘라 가브리엘라 곤자가 그레고리아 베르나르디나 베네디타 안드레아 |
| 출생일 | 1862년 11월 28일 |
| 출생지 | 베르트하임, 바덴 대공국 브론바흐 |
| 사망일 | 1959년 5월 14일 |
| 사망지 | 베르크 성, 룩셈부르크 |
| 왕가 | 브라간사 왕가 |
| 공작 부인 배우자 | 1884년 1월 14일 – 1907년 11월 16일 |
|---|
| 배우자 | 로베르토 1세, 파르마 공작 (1884년 10월 15일 결혼, 1907년 11월 16일 사별) |
|---|---|
| 자녀 | 마리아 아델라이데 공주 식스토 공자 사비에르 공작 프란체스카 주세파 공주 치타, 오스트리아 황후 펠릭스, 룩셈부르크 공작 배우자 르네 공자 마리아 안토니아 공주 이사벨라 공주 루이 공자 헨리에타 안나 공주 가에타노 공자 |
| 아버지 | 미겔 1세 |
|---|---|
| 어머니 | 아델하이트 폰 뢰벤슈타인-베르트하임-로젠베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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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포르투갈 사람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1932년부터 1968년까지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권위주의적 독재자로, "에스타두 노부" 체제를 수립하여 일당 독재를 구축하고 경제 개발과 사회 통제에 주력했지만, 인권 탄압과 식민지 전쟁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
19세기 포르투갈 사람 -
줄리우 디니스
포르투갈의 소설가이자 의사인 줄리우 디니스는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자로, 《주앙 디니스》, 《아 모르가디냐 드스 카나바이이스》, 《세랑스 다 프로빈시아》, 《오스 피달고스 다 카자 무리스카》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 포르투갈 사회와 인간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
1959년 사망 -
호세 라우렐
호세 라우렐은 필리핀의 정치인으로 변호사, 상원의원,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점령 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전후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사면 후 상원의원과 경제 사절 단장을 지내다 1959년 사망했다. -
1959년 사망 -
존 포스터 덜레스
존 포스터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의 변호사이자 외교관으로, 반공 정책을 추진하고 NATO 등 반공 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의 강경한 외교 정책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국제 협력에도 기여했다. -
브라간사가 -
주앙 5세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5세는 브라질의 금과 다이아몬드를 바탕으로 절대 왕정을 확립하고 바로크 건축 부흥을 이끌었으며, 스페인과의 조약으로 브라질 영토를 확장했으나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렸다. -
브라간사가 -
주앙 4세
주앙 4세는 1640년 포르투갈 독립을 쟁취하고 스페인과의 복고 전쟁을 이끈 브라간사 공작 출신의 국왕으로, 외교적 군사적 성과와 더불어 음악가로서 문화 예술 발전에도 기여했으며 그의 딸은 잉글랜드 국왕과 결혼했다.
2. 생애
마리아 안토니아는 바덴 대공국에서 망명 중이던 부모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인판테 미겔은 자유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왕위를 잃고 포르투갈에서 추방되었다.
1884년 10월 15일, 피스호른 성에서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의 두 번째 부인으로 결혼했다. 로베르토 1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대부분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 안토니아는 로베르토 1세와의 사이에서 다시 12명의 자녀를 낳았다.
1907년 남편 로베르토 1세가 사망하면서 마리아 안토니아는 미망인이 되었다. 이후 망명 생활을 하며 딸 지타와 함께 거주했다. 1940년까지 지타와 그녀의 가족, 마리아 안토니아와 그녀의 딸 이사벨라는 퀘벡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 살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룩셈부르크의 베르크 성으로 이주하여 90세 생일을 기념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병환으로 고생하다가 1959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주앙 6세의 마지막 생존 손녀였다.
2.1. 어린 시절
마리아 안토니아는 바덴 대공국에서 망명 중이던 부모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인판테 미겔은 자유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포르투갈 왕위를 잃고, 형인 브라질의 페드루 1세에 의해 포르투갈에서 추방되었다.
2.2. 결혼과 가족
1884년 10월 15일, 피스호른 성에서 마리아 안토니아는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의 두 번째 부인으로 결혼했다. 로베르토 1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12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대부분 정신적,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 안토니아는 로베르토 1세와의 사이에서 12명의 자녀를 낳았다.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마리아 델라 네베 아델라이데 | 1885년 | 1959년 | |
| 시스토 | 1886년 | 1934년 | |
| 사베리오 | 1889년 | 1977년 | |
| 프란체스카 | 1890년 | 1978년 | |
| 치타 | 1892년 | 1989년 | 오스트리아 황후 |
| 펠리체 | 1893년 | 1970년 | 룩셈부르크 여대공 부군 |
| 레나토 | 1894년 | 1962년 | |
| 마리아 안토니아 | 1895년 | 1937년 | |
| 이사벨라 | 1898년 | 1984년 | |
| 루이지 | 1899년 | 1967년 | |
| 엔리케타 | 1903년 | 1987년 | |
| 가에타노 | 1905년 | 1958년 |
2.3. 망명 생활과 말년
1907년 11월 16일 피아노레 별장에서 남편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가 사망하면서 마리아 안토니아는 미망인이 되었다. 이후 망명 생활을 하며 딸 지타와 함께 거주했다. 1940년까지 지타와 그녀의 가족, 마리아 안토니아와 그녀의 딸 이사벨라는 퀘벡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 살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마리아 안토니아는 룩셈부르크의 베르크 성으로 이주하여 90세 생일을 기념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병환으로 고생하다가 1959년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주앙 6세의 마지막 생존 손녀였다. 그녀의 많은 자녀와 손주들 또한 매우 오래 살았다.
3. 가계
마리아 안토니아는 포르투갈의 주앙 6세의 손녀이자, 스페인의 카를로스 4세의 외손녀였다.
| 1 |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안토니아 | ||||||||||||||
|---|---|---|---|---|---|---|---|---|---|---|---|---|---|---|---|
| 2 | 3 | 미겔 1세 | 로벤슈타인의 아델라이드 공주 | ||||||||||||
| 4 | 5 | 6 | 7 | 주앙 6세 | 스페인의 인판타 카를로타 호아키나 | 콘스탄틴, 로벤슈타인의 세습공 | 호엔로에-랑엔부르크의 아그네스 공주 | ||||||||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페드루 3세 | 마리아 1세 | 카를로스 4세 |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공주 | 로벤슈타인의 카를 토마스 공 | 빈디쉬-그래츠의 조피 백작부인 | 호엔로에-랑엔부르크의 카를 루드비히 공 | 졸름스-바루트의 아말리에 헨리에테 백작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