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카나로
1. 개요
프란시스코 카나로는 우루과이 출신의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가로, "탱고의 왕"으로 불린다. 1906년 데뷔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60년 동안 탱고계에서 활동하며 700곡을 작곡하고 7000타이틀의 레코드를 녹음했다. 그는 서정적인 연주와 중용의 템포를 유지하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으며, '파리의 카나로'와 같은 대표곡과 영화 음악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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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로 귀화한 사람 -
카를로스 가르델
카를로스 가르델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 활동한 탱고 가수이자 배우이며, 여러 명곡 발표와 영화 출연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
아르헨티나로 귀화한 사람 -
김창성 (배우)
김창성은 아르헨티나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고, 텔레노벨라 《졸업생들》에서 타토 보레스 상을 수상했다. -
이탈리아계 우루과이인 -
호세 무히카
호세 무히카는 좌파 게릴라 활동과 투옥 생활을 거쳐 우루과이 대통령을 역임하며 검소한 삶과 진보적 정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정치인이다. -
이탈리아계 우루과이인 -
왈테르 가르가노
왈테르 가르가노는 우루과이 국적의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다누비오 FC, SSC 나폴리,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을 거쳐 현재 CA 리베르 플라테에서 뛰고,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으로 201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 등을 기록했다. -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
아틸리오 스탐포네
아틸리오 스탐포네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피아니스트, 작곡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1955년 악단 결성 후 현대적인 탱고 연주로 이름을 알렸으며 "아피체스" 등의 대표작과 탱고 홀 "카뇨 14" 설립, 영화 음악 작곡 등으로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아르헨티나의 음악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는 록 밴드 활동을 시작으로 록 엔 에스파뇰 발전에 기여했으며, 영화 작곡으로 아카데미상을 2회 수상하고 비디오 게임 음악 작곡에도 참여하여 호평을 받았다.
2. 생애
프란시스코 카나로는 우루과이의 산호세 데 마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타, 만돌린, 바이올린, 하몬드 오르간 등의 악기를 모두 독학으로 익혔다. 그는 탱고 황금기를 뒷받침한 오데온 5대 악단의 중심 인물이었다. 1906년에 바이올린, 기타, 만돌린 트리오로 데뷔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탱고계 최전선에서 활약했으며, "탱고의 왕"이라고 불렸다. 자서전에 따르면 작곡한 곡은 700곡, 녹음한 레코드는 7000타이틀에 달한다고 한다.
2.1. 어린 시절과 초기 활동
프란시스코 카나로는 우루과이의 산호세 데 마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타, 만돌린, 바이올린, 하몬드 오르간 등의 악기를 모두 독학으로 익혔다. 그는 탱고 황금기를 뒷받침한 오데온 5대 악단의 중심 인물이었다.
1906년에 바이올린, 기타, 만돌린 트리오로 데뷔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탱고계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탱고의 왕"이라고 불렸으며, 자서전에 따르면 작곡한 곡은 700곡, 녹음한 레코드는 7000타이틀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숫자의 신뢰성 여부는 별개로, 그 풍부한 내용은 "탱고의 왕"이라는 명칭에 걸맞다고 할 수 있다.
2.2. 탱고의 왕
1906년에 바이올린, 기타, 만돌린 트리오로 데뷔하여 1964년 사망할 때까지 탱고계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탱고의 왕"이라고 불렸으며, 자서전에 따르면 작곡한 곡은 700곡, 녹음한 레코드는 7000타이틀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숫자의 신뢰성 여부는 별개로, 그 풍부한 내용은 "탱고의 왕"이라는 명칭에 걸맞다고 할 수 있다.
2.3. 음악 스타일과 업적
카나로는 데뷔하여 사망할 때까지 약 60년 가까이 탱고계의 거장으로 군림하였다. 그 이유는 시대를 앞서 나가는 아이디어를 잇따라 제시한 것, 60년의 연주 경력 동안 연주 스타일은 변해도 명료하고 친근한 연주 밀도라는 한계선을 계속 지켜온 것, 그리고 무엇보다 춤출 수 있는 탱고라는 점을 주장한 것이 꼽힌다.
카나로는 경력 전반에 걸쳐 서정적인 연주와 중용의 템포로 대중의 지지를 꾸준히 받았으며, 이 스타일은 듣기만 하는 모던 탱고가 유행하던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1961년에는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1964년 12월 14일, 직장에서 쓰러져 급사했다.
3. 작품 활동
* 뉴포트 (1936)
* 교외의 노래 (1941)
3.1. 대표곡
파리의 카나로(Canaro en Paris)는 알레한드로 스칼피노와 후안 카르다렐라가 공동 작곡한 1925년 작품으로, 1925년 카나로 오케스트라의 파리 연주 여행의 대성공을 기념하여 신문 기사의 제목에서 따온 곡이다. 마리아노 모레스와 합작한 탱고곡 さらば草原よ는 1957년도 홍백가합전과 1961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후지사와 아라시코(藤沢嵐子)가 불렀다.
3.2. 영화음악
* 뉴포트 (1936)
* 교외의 노래 (1941)
카나로의 이름을 딴 파리의 카나로(Canaro en Paris)는 알레한드로 스칼피노와 후안 카르다렐라의 공동 작곡으로 1925년 작품이며, 1925년 카나로 오케스트라의 파리 연주 여행의 대성공을 기념하여 신문 기사의 제목에서 따온 곡이다. 마리아노 모레스와의 합작 탱고곡 さらば草原よ는 제8회 NHK 홍백가합전(1957년)과 제12회 NHK 홍백가합전(1961년)에서 후지사와 아라시코가 불렀다.
4. 참고 문헌
* 매슈 B. 카루시, 《계급의 문화: 분열된 아르헨티나의 라디오와 영화 제작, 1920-1946》(Culture of Class: Radio and Cinema in the Making of a Divided Argentina, 1920–1946영어). 듀크대학교 출판부, 2012.
* 프란시스코 카나로, 《나의 회고록 - 탱고와 함께한 나의 금혼식》(Mis memorias - Mis bodas de oro con el tango스페인어). 코레히도르, 부에노스아이레스 1999.
* 로베르토 셀레스, "프란시스코 카나로: 탱고를 위한 삶"(Francisco Canaro: una vida para el tango스페인어), 《토도 에스 히스토리아》(Todo es historia), 제18권, 제226호 (1986년 2월), 56-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