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4세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1. 개요
프리드리히 4세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은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공작과 덴마크의 프레데리케 아말리에의 아들로, 1695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위를 계승했다. 그는 스웨덴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칼 12세의 누이인 헤드비히 소피아와 결혼하여 스웨덴 왕위 계승권을 얻었으며, 대북방 전쟁에 참전했다가 1702년 클리쇼프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아들 칼 프리드리히가 공작위를 물려받았으며, 그의 조카 아돌프 프레데리크는 스웨덴 국왕이 되었고, 손자는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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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위 |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
|---|---|
| 통치 기간 | 1695년 1월 6일 – 1702년 7월 19일 |
| 이전 통치자 |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
| 다음 통치자 | 카를 프리드리히 |
| 가문 |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 |
| 아버지 |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
| 어머니 | 프레데리케 아말리 애 단마르크 왕녀 |
| 배우자 | 헤드비그 소피아 아브 스베리예 왕녀 (1698년 5월 12일 결혼) |
| 자녀 | 카를 프리드리히 |
| 출생일 | 1671년 10월 18일 |
| 출생지 | 고토르프 성 |
| 사망일 | 1702년 7월 19일 (30세) |
| 사망 장소 | 클리슈프 전투에서 전사 |
| 매장지 | 슐레스비히 대성당 |
| 독일어 이름 | Friedrich IV. von Schleswig-Holstein-Gottor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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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슈타인 공작 -
크리스티안 8세
크리스티안 8세는 1839년부터 1848년까지 덴마크의 국왕이었으며, 잠시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추대되기도 했고, 재위 기간 동안 자유주의 세력의 헌법 제정 요구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행정 개혁과 학문 후원에 집중했다. -
슐레스비히 공작 -
발데마르 3세
에스트리센 가문 출신인 발데마르 3세는 덴마크 국왕(1326년~1329년)으로 재위했으며, 퇴위 후 슐레스비 공작으로 복귀했고, 그의 누나 헬비는 덴마크 왕가와 혼인 관계를 맺었다. -
슐레스비히 공작 -
크리스티안 8세
크리스티안 8세는 1839년부터 1848년까지 덴마크의 국왕이었으며, 잠시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추대되기도 했고, 재위 기간 동안 자유주의 세력의 헌법 제정 요구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행정 개혁과 학문 후원에 집중했다. -
1702년 사망 -
윌리엄 3세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왕이었으며, 명예 혁명을 통해 왕위에 올라 프랑스의 팽창을 막고 잉글랜드 의회 권한을 강화했으며, 대동맹 전쟁을 이끌고 잉글랜드 은행 설립을 지원하다 낙마 사고로 사망했다. -
1702년 사망 -
난부 유키노부
에도 시대 모리오카 번 제5대 번주 난부 유키노부는 가즈노 금산 생산량 감소와 흉년으로 악화된 번 재정을 재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기근 속에서 유교에 심취했으며, 포술과 승마에 능하여 각 분야의 새로운 유파를 창시했다.
2. 가계
프리드리히 4세는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과 덴마크의 프레데리케 아말리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올덴부르크 가문(덴마크 왕가)뿐만 아니라, 당시 스웨덴 왕가인 팔츠-클레부르크 가문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의 백모 헤드비히 엘레오노라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는 칼 11세의 어머니였다.
2.1. 혈연 관계
| 부모 | ||
|---|---|---|
| 부 |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 |
| 모 | 덴마크의 프레데리케 아말리에 | |
| 조부모 | ||
| 부계 | 프리드리히 3세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 |
| 모계 |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3세 | |
| 외조부모 | ||
| 부계 | 작센의 마리 엘리자베트 | |
| 모계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소피 아말리에 | |
프리드리히 4세는 올덴부르크 가문 출신이며, 스웨덴 왕가인 팔츠-클레부르크 가문과도 혈연 관계가 있었다. 그의 백모 헤드비히 엘레오노라 폰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는 스웨덴 국왕 칼 11세의 어머니였다. 또한, 칼 12세, 덴마크-노르웨이 국왕 프레데리크 4세, 작센 선제후 겸 폴란드 국왕 아우구스트 2세는 모두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3세의 손자로서 사촌 관계였다.
1697년, 프레드리히 4세는 칼 12세의 누이이자 사촌인 헤드비히 소피아와 결혼하여 스웨덴 왕위 계승권도 획득했다. 그는 헤드비히 소피아와 칼 12세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형과 같은 존재였다.
그의 아들 칼 프리드리히는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의 딸 안나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아들 카를 페터 울리히는 안나의 언니 엘리자베타의 후계자로서 황제 표트르 3세가 되었다.
2.2. 혼인 관계
1697년 프레드리히 4세는 칼 12세의 누이이자 사촌인 헤드비히 소피아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프레드리히 4세는 스웨덴 왕위 계승권도 획득했다. 프레드리히 4세는 헤드비히 소피아와 칼 12세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그들의 형 노릇을 했다고 한다.
| 배우자 | 자녀 |
|---|---|
| 헤드비히 소피아 | 칼 프리드리히 |
3. 생애
프리드리히 4세는 1695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공작위를 계승하여, 1702년 사망할 때까지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이었다. 그는 덴마크보다 스웨덴을 중시하여 스웨덴과 동맹을 강화했고, 1697년에는 칼 12세의 누이 헤드비히 소피아와 결혼하여 스웨덴 왕위 계승권도 얻었다.
1700년 대북방 전쟁이 발발하자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4세가 공국을 침공했지만, 스웨덴의 칼 12세가 덴마크를 굴복시키면서 트라벤탈 조약을 통해 공국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이후 프레데리크 4세는 칼 12세를 따라 전쟁에 참전했으나, 1702년 클리쇼프 전투에서 30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사후, 갓 태어난 아들 칼 프리드리히가 공작위를 계승했고, 동생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가 섭정을 맡았다. 훗날 칼 프리드리히는 표트르 1세의 딸 안나와 결혼하여, 그의 아들 카를 페터 울리히가 표트르 3세로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3.1. 공작 즉위와 스웨덴과의 동맹
1695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공작위를 계승했다. 홀슈타인-고토르프가는 본가인 올덴부르크 왕조(덴마크 왕가)뿐만 아니라, 당시 스웨덴 왕가인 팔츠-클레부르크 가문과도 연관이 있었다. 프레데리크 4세의 백모인 헤드비히 엘레오노라는 스웨덴 국왕 칼 11세의 어머니였다. 게다가 그의 아들 칼 12세,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국왕 프레데리크 4세, 작센 선제후 겸 폴란드 국왕 아우구스트 2세, 그리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프레데리크 4세는 모두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3세의 손자였으며, 서로 사촌 관계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프레데리크는 덴마크보다 스웨덴을 더 중시하여, 스웨덴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했다. (덴마크 국왕과의 슐레스비히 공국 내 고토르프 공령의 상속권을 둘러싼 분쟁이 계속되었으며, 칼 11세가 조정을 하고 있었다). 1697년에는 칼 12세의 누이인 사촌 헤드비히 소피아와 결혼했다. 이 결혼으로 프레데리크 4세는 스웨덴 왕위 계승권도 획득했다. 프레데리크 4세는 헤드비히 소피아와 칼 12세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그들의 형 노릇을 했다고 한다.
1700년 대북방 전쟁이 시작되자,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4세는 스웨덴의 동맹국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을 침공했다. 프레데리크 4세는 스웨덴에 도움을 요청했고, 칼 12세는 덴마크를 침공하여 이를 굴복시켰다. 이 해에 맺어진 트라벤탈 조약에 의해, 공국의 안전이 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