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파올로 비르디스
1. 개요
피에트로 파올로 비르디스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유벤투스와 AC 밀란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2회, 유러피언컵 1회 우승을 경험했다. 1986-87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했고,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1년 선수 은퇴 후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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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안토니오 피에트로 파올로 비르디스 |
|---|---|
| 출생일 | 1957년 6월 26일 |
| 출생지 | 이탈리아 사르데냐 주사싸리 |
| 신장 | 1.82m |
| 포지션 | 공격수 (은퇴) |
| 유소년 클럽 | 1971–1973: 유베닐리아 사싸리 |
|---|---|
| 클럽 경력 | 1973–1974: 누오레세 (25경기, 11골) 1974–1977: 칼리아리 (75경기, 24골) 1977–1980: 유벤투스 (45경기, 8골) 1980–1981: 칼리아리 (22경기, 5골) 1981–1982: 유벤투스 (30경기, 9골) 1982–1984: 우디네세 (45경기, 12골) 1984–1989: 밀란 (135경기, 53골) 1989–1991: 레체 (46경기, 8골) |
| 전체 클럽 기록 | 423경기, 130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76–1978: 이탈리아 U-21 (8경기, 1골) |
|---|---|
| 국가대표 | 1987–1988: 이탈리아 올림픽 (15경기, 9골) |
| 감독 | 1998–1999: 아틀레티코 카타니아 2001: 비테르베세 2002: 노체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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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 노체리나 1910의 축구 감독 -
루이지 델네리
루이지 델네리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여러 클럽의 승격을 이끈 '승격 전문가'라는 별칭을 가진 축구 감독으로, AC 키에보 베로나의 세리에 A 승격과 UEFA컵 진출을 이끈 '키에보의 기적'을 만들며 오스카 델 칼초 감독상을 수상했다. -
사르데냐주 출신 축구 선수 -
안토넬로 쿠쿠레두
안토넬로 쿠쿠레두는 이탈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수비수로 브레시아, 유벤투스,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197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 유소년팀 지도와 크로토네 및 그로세토 감독을 맡아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
1957년 출생 -
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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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출생 -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인권 탄압 등의 비판을 받았고, 퇴임 후 인민평의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2. 선수 경력
피에트로 파올로 비르디스는 사르데냐 사사리 출신의 전직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1973년 누오레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칼리아리, 유벤투스, 우디네세를 거쳐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1986-87 시즌 득점왕, 1987-88 시즌 리그 우승,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레체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탈리아 올림픽 대표팀 소속으로 참가하여 3골을 기록, 팀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나 성인 국가대표팀 경력은 없다.
2.1. 클럽 경력
사르데냐 사사리 출신인 비르디스는 1973년 고향 사르데냐의 세리에 D 아마추어 구단 누오레세에서 축구를 시작해 16세의 나이로 첫 시즌에 11골을 기록했다. 이후 칼리아리로 이적해 1974년 10월 6일 비첸차와의 리그 경기에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
1977년,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1982년까지 활약했는데, 1980-81 시즌에는 칼리아리에 임대되어 복귀하기도 했다. 1981-82 시즌 유벤투스로 복귀하여 37경기에 출전, 12득점을 기록하며 두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파올로 로시가 다음 시즌부터 복귀하는 등의 이유로 1982-83 시즌, 우디네세로 이적했다. 우디네세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는 지쿠, 프랑코 카우시오와 함께 공격진을 이끌었고, 선수 경력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1984년, 밀란으로 이적하여 전성기를 보냈다. 1984-85 시즌부터 5시즌 동안 총 186경기 76골 29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984년 닐스 리드홀름 감독의 요청으로 밀란으로 이적했으며, 1-2로 패한 파르마와의 1984년 8월 22일 원정 경기에서 밀란 소속으로 세리에 A 첫 경기를 치렀다. 1985-86 시즌에는 공식전 43경기에 출전하여 16득점을 기록했다. 1986-87 시즌에는 17골로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이 시즌, 1987년 5월 3일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1987-88 시즌, 마르코 판 바스텐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공격의 핵심으로 11골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88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도 우승했고, 이듬해에는 유러피언컵도 품었다. 1988-89 시즌에는 리그에서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챔피언스컵에서는 6경기에서 3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89년, 32세가 된 비르디스는 밀란을 떠나 레체로 둥지를 옮겨 2년을 프로 선수로 더 활약하다가 1991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비록 성인 국가대표팀 출장 기록은 없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탈리아 올림픽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서울 올림픽 본선에서 6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하여 이탈리아의 준결승행에 기여했지만, 서독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0-2로 패하며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통산 15경기 10득점을 기록했다. 그에 앞서, 1982년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 이탈리아 U-21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3. 감독 경력
현역 은퇴 후, 비르디스는 감독 일을 시작했다. 1998년 11월, 세리에 C1의 아틀레티코 카타니아 지휘봉을 잡으며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았으나, 1999년 4월 말에 해임되었다.
2001년 3월, 세리에 C1의 비테르베세의 제의를 수락하면서 다시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의 임기는 2달 정도밖에 유지되지 못했는데, 같은 해 5월에 해임되었다. 2002년 4월, 노체리나의 제의를 받아들여 구단의 시즌 말 몇 경기를 지휘했다.
이후 축구계를 떠나 밀라노에 식당 겸 포도주점을 열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다시 감독으로 복귀할 의사를 밝혔다.
4. 경력 통계
| 구단 | 시즌 | 리그 | ||
|---|---|---|---|---|
| 리그명 | 출장 | 골 | ||
| 누오레세 | 1973–74 | 세리에 D | 25 | 11 |
| 칼리아리 | 1974–75 | 세리에 A | 19 | 0 |
| 1975–76 | 세리에 A | 23 | 6 | |
| 1976–77 | 세리에 B | 33 | 18 | |
| 합계 | 75 | 24 | ||
| 유벤투스 | 1977–78 | 세리에 A | 10 | 1 |
| 1978–79 | 세리에 A | 23 | 6 | |
| 1979–80 | 세리에 A | 12 | 1 | |
| 합계 | 45 | 8 | ||
| 칼리아리 | 1980–81 | 세리에 A | 22 | 5 |
| 유벤투스 | 1981–82 | 세리에 A | 30 | 9 |
| 우디네세 | 1982–83 | 세리에 A | 16 | 2 |
| 1983–84 | 세리에 A | 29 | 10 | |
| 합계 | 45 | 12 | ||
| 밀란 | 1984–85 | 세리에 A | 28 | 9 |
| 1985–86 | 세리에 A | 28 | 6 | |
| 1986–87 | 세리에 A | 28 | 17 | |
| 1987–88 | 세리에 A | 25 | 11 | |
| 1988–89 | 세리에 A | 26 | 10 | |
| 합계 | 135 | 53 | ||
| 레체 | 1989–90 | 세리에 A | 25 | 4 |
| 1990–91 | 세리에 A | 21 | 4 | |
| 합계 | 46 | 8 | ||
| 경력 합계 | 423 | 130 | ||
5. 수상 내역
5.1. 클럽
사르데냐 사사리 출신인 비르디스는 1973년 고향 사르데냐의 세리에 D 아마추어 구단 누오레세에서 축구를 시작해 16세의 나이로 1년 만에 11골을 기록했다. 이후 칼리아리로 이적해 1974년 10월 6일 비첸차와의 리그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1977년 유벤투스로 이적해 1982년까지 활약했다. 1980-81 시즌에는 칼리아리로 임대되기도 했다. 1981-82 시즌 유벤투스로 복귀하여 37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으며 두 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파올로 로시가 다음 시즌부터 복귀하는 등의 이유로 1982-83 시즌 우디네세로 이적했다. 우디네세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는 지쿠, 프랑코 카우시오와 함께 공격진을 이끌었고, 선수 경력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1984년 밀란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보냈다. 1984년 8월 22일 파르마와의 원정 경기(1-2 패)에서 밀란 소속으로 세리에 A 첫 경기를 치렀다. 밀란에서 5년간 뛰며 1986-87 시즌 17골로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1987-88 시즌 세리에 A 우승, 1988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88-89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밀란 소속으로 총 186경기에 출전해 76골을 기록했는데, 이 중 세리에 A에서는 135경기 53골을 넣었다. 1984-85 시즌 공식전에서 40경기 13골, 1985-86 시즌에는 43경기 16골을 기록했다. 1986-87 시즌에는 17골로 리그 득점왕이 되었으며, 이 시즌인 1987년 5월 3일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1987-88 시즌 마르코 판 바스텐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주 공격수로 11골을 넣으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88-89 시즌에는 리그에서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챔피언스컵(챔피언스리그 전신)에서는 6경기 3골로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89년, 32세의 비르디스는 밀란을 떠나 레체로 이적해 2년간 더 선수 생활을 한 뒤 1991년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