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쿠
1. 개요
지쿠는 브라질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하얀 펠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플라멩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198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달성했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로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82년 월드컵에서는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하여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2004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페네르바체, CSKA 모스크바 등 여러 클럽팀을 지휘했다. 선수, 감독, 행정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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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아르투르 안투니스 코임브라 |
|---|---|
| 출생일 | 1953년 3월 3일 |
| 출생지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 키 | 1.72m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 현재 소속팀 | 가시마 앤틀러스 (기술 자문) |
| 애칭 | 갈리뉴 지 퀸티누 (퀸티누의 병아리), 하얀 펠레 |
| 유소년 클럽 | CR 플라멩구 (1967-1971) |
|---|---|
| 클럽 | CR 플라멩구 (1971-1983) 우디네세 (1983-1985) CR 플라멩구 (1985-1989) 가시마 앤틀러스 (1991-1994) |
| 클럽 출장 및 득점 | CR 플라멩구: 212경기 123골 우디네세: 39경기 22골 CR 플라멩구: 37경기 12골 가시마 앤틀러스: 45경기 35골 총합: 333경기 192골 |
| 국가대표 | 브라질 (1976-1986) |
|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 | 71경기 48골 |
| 감독 클럽 | 가시마 앤틀러스 (1999) CFZ (2000-2002) 일본 (2002-2006) 페네르바흐체 (2006-2008) 부뇨드코르 (2008) CSKA 모스크바 (2009) 올림피아코스 FC (2009-2010) 이라크 (2011-2012) 알가라파 (2013-2014) FC 고아 (2014-2016) 가시마 앤틀러스 (기술 이사, 2018-2022) 가시마 앤틀러스 (기술 자문, 2022-) |
|---|
| FIFA 월드컵 | 3위 (1978) |
|---|---|
| 코파 아메리카 | 3위 (1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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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한 브라질인 -
데니우송 마르칭스 나시멘투
브라질 출신 축구 선수 데니우송 마르칭스 나시멘투는 아랍에미리트 리그를 주 무대로 활동했으며, K리그 대전 시티즌과 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 특히 포항 소속으로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FIFA 클럽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
이라크에 거주한 브라질인 -
에를리송 카이옹 지 소자 페헤이라
브라질 출신 축구 선수 에를리송 카이옹 지 소자 페헤이라는 공격수로 활약하며, 여러 나라의 프로 리그에서 뛰었고, 강원 FC의 첫 브라질 선수로 K리그에 데뷔하고 대구 FC를 통해 복귀하기도 했다. -
FC 부뇨드코르의 축구 감독 -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수비수로 활동했으며, 감독으로서 그레미우, 파우메이라스, 브라질 대표팀 등을 이끌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FIFA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고, 첼시, 광저우 헝다 등에서도 감독직을 수행했다. -
FC 부뇨드코르의 축구 감독 -
바딤 아브라모프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축구 감독 바딤 아브라모프는 트락토르 타슈켄트, 로코모티프 타슈켄트 등 클럽팀 감독과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 차례 역임하며, 2011년 AFC 아시안컵 4위, 2014년 우즈베키스탄 컵 우승 등의 업적을 남겼다.
2. 선수 경력
지쿠는 1978년, 1982년, 1986년 FIFA 월드컵에 3회 연속 출전했다. 국가대표로 71경기에 출전하여 48득점을 기록하였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텔레 산타나 감독이 이끌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소크라치스, 파우캉, 세레주와 함께 '황금 사중주'로 불리며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와의 2차 리그 경기에서 파올로 로시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2-3으로 패해 탈락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주로 교체 출전했다.
1972년 하계 올림픽 남미 예선인 1971년 남미 올림픽 예선에서 국제 무대에 데뷔했으나, 뮌헨 올림픽 대표팀에는 발탁되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고 축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형들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다.
1978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스웨덴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코너킥 헤딩골을 넣었지만, 웨일스 출신 심판 클라이브 토머스는 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197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2골을 넣으며 브라질이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1989년 3월, 스타디오 프리울리에서 열린 월드 올스타 팀과의 경기에서 브라질 대표팀 고별전을 치렀다.
2.1. 유소년 시절
1953년, 지쿠는 리우데자네이루 퀸티노 보카이우바 지역의 포르투갈계 중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많은 브라질 젊은이들처럼, 지쿠도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를 꿈꾸며 학교를 빼먹고 거리에서 축구를 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이웃에서 유명해졌고,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실력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당시 그는 형제들과 친구들이 운영하는 지역 풋살 거리 팀인 '주벤투데'에서 활동했고, 일요일에는 풋살 클럽 '리베르 풋볼 클루베'에서도 뛰었다.
그의 별명은 가족 내에서 '아르투르지뉴'("어린 아르투르")에서 '아르투르지쿠', '투지쿠'를 거쳐, 사촌인 에르멜린다 "린다" 롤림이 지은 '지쿠'가 되었다.
1967년, 14세에 형제인 안투네스와 에두가 프로 선수로 있던 아메리카에서 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요일 리베르 경기에서 9골을 넣은 지쿠는 라디오 리포터 셀소 가르시아의 눈에 띄었고, 그의 아버지에게 플라멩구에서 시험을 보라고 요청했다. 플라멩구 팬이었던 지쿠는 아버지의 승낙을 얻어, 스포츠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선수 중 한 명이 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지쿠는 체격이 강하지 않았지만, 체육 교사 호세 로베르토 프랑칼라치의 근육 및 체력 강화 프로그램과 끊임없는 노력, 팀의 특별 식단 지원을 통해 강한 체력을 길러 선수로 성장했다.
1971년과 1972년 동안 유소년팀과 프로팀을 오갔다. 마누엘 플레이타스 솔리치 감독은 지쿠를 승격시켰지만, 자갈루 감독은 지쿠가 너무 어리다고 판단하여 다시 유소년팀으로 내렸다. 이후 유소년팀 시절 그의 첫 감독이었던 주베르트가 프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유소년팀에서 116경기 81골을 기록한 지쿠를 완전히 승격시켰다.
지쿠는 포르투갈 이민자 출신의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이탈리아 카타니아 출신이다. 제빵사(후에 의류 제작자)였던 아버지는 플라멩구와 프로 계약 직전까지 갔던 골키퍼였다. 조제 안투네스 코임브라와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어머니 마치우데 사이에서 태어난 5남 1녀 중 막내였다. 어머니는 아들 아르투르를 피아니스트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의 형제 안투네스와 에두아르두 안투네스 코임브라(에두)의 영향으로 축구 선수를 꿈꾸게 된다.
2.2. 클럽 경력
지쿠는 선수 생활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냈으며, 우디네세를 거쳐 일본 축구 리그 2부의 스미토모금속공업 축구단(현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플라멩구 시절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을 이끌었고, 우디네세에서는 1983-84 시즌 세리에 A 득점 2위를 기록했다. 가시마에서는 J리그 출범에 기여하며 일본 축구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2.2.1. CR 플라멩구 (1971-1983, 1985-1989)
지쿠는 선수 생활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냈다. 1971년과 1972년 동안 유소년팀과 프로팀을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주베르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지쿠는 완전히 프로팀으로 승격되었고, 플라멩구에서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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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4세의 나이에 CR 플라멩구 유소년팀 테스트에 합격하여 입단했다. 신장 155cm에 체중 37kg으로 체격이 작았고, 체력이 약했지만,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약점을 극복했다. 유소년팀에서 116경기 81득점을 기록한 후 1971년 플라멩구 1군으로 승격하여 17경기 2득점을 기록했다.
지쿠는 체격이 강하지 않았지만, 체육 교사 호세 로베르토 프랑칼라치의 근육 및 체력 강화 프로그램과 특별 식단을 통해 강한 체력을 길렀다.
플라멩구에서 지쿠는 팀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를 이끌었다. 198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그리고 4번의 브라질 국내 타이틀(1980년, 1982년, 1983년, 1987년)을 획득했다. 특히, 1981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11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고, 결승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같은 해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리버풀을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경기장 위에서 지쿠는 뛰어난 득점력과 어시스트 능력, 팀 조직력, 탁월한 시야를 보여주었다. 그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프리킥의 명수였다.
1985년, 지쿠는 방구의 수비수 마르시오 누네스의 거친 태클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후 1987년 코파 우니앙 우승을 이끌었다.
1989년 12월, 지쿠는 플루미넨세와의 경기에서 플라멩구 소속으로 마지막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골을 기록하며 팀의 5-0 승리를 이끌었다. 두 달 후, 마라카낭에서 열린 월드컵 마스터즈 팀과의 경기에서 플라멩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플라멩구에서 731경기에 출전한 지쿠는 구단 역대 출전 순위 2위이며, 508골로 구단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업적은 브라질 가수 조르지 벤 조르(Jorge Ben Jor)에게 영감을 주어 Camisa 10 da Gávea라는 찬가를 작곡하게 했다.
지쿠는 플라멩구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두 마라카낭에서 총 333골을 기록하며, 2022년 12월 현재까지도 해당 경기장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쿠의 플라멩구 주요 우승 기록은 다음과 같다.
| 대회 | 우승 연도 |
|---|---|
| 캄페오나토 카리오카 | 1972, 1974, 1978, 1979, 1981, 1986 |
| 캄페오나토 브라실레이루 세리 A | 1980, 1982, 1983 |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1981 |
| 인터컨티넨탈컵 | 1981 |
| 코파 우니앙 | 1987 |
2.2.2. 우디네세 칼초 (1983-1985)
AS 로마와 AC 밀란의 제안을 받았으나, 우디네세의 4백만 달러 제안으로 이탈리아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 거액의 이적료 때문에 이탈리아 축구 연맹(FIGC)에 의해 이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우디네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 ("O Zico, o Austria!"("지쿠 아니면 오스트리아!")라는 구호) 끝에 계약이 성사되었다.
1983-84 세리에 A 첫 시즌, 프랑코 카우시오와의 파트너십은 우디네세를 상위권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의 직접 프리킥 실력은 TV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막는 방법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디네세는 리그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지쿠는 19골을 기록하여 득점왕 미셸 플라티니에 1골 뒤진 2위를 기록했고,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1983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다음 시즌은 부상과 심판 비난에 따른 출전 정지로 인해 순탄치 않았다. 그는 경쟁력 있는 선수 영입을 하지 않는 이사진을 비난하며 팀이 자신에게 너무 의존한다고 불평했다. 또한 이탈리아 세무 당국으로부터 탈세 혐의로 기소되었다. 결국 지쿠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나폴리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브라질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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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AC 밀란, 유벤투스, AS 로마 등이 영입을 시도했지만, 당시 약체였던 우디네세로 이적했다. 이 이적은 이탈리아 축구 협회의 조사를 받을 정도로 큰 논란이 되었다. 1983년 8월 21일 코파 이탈리아 볼로냐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넣었고, 9월 12일 세리에 A 개막전 제노아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이탈리아 데뷔를 알렸다. 이후 2라운드 카타니아전에서도 2골을 넣는 등 4경기 연속 득점(총 6골)을 기록했다. 프랑코 카우시오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한때 리그 3위까지 올라갔으나, 후반기에 주춤하며 UEFA컵 진출에는 실패했다. 지쿠는 24경기에 출전하여 19골을 기록, 득점 2위(득점왕 미셸 플라티니보다 4경기 적게 출전, 플라티니는 20골).를 차지했다. 1984-85 시즌에는 부상과 출전 정지가 있었지만, 3월 31일 인터 밀란전에서 골을 넣었고, 다음 경기인 유벤투스전에서도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계약 문제로 이 시즌을 끝으로 이탈리아를 떠났다.
1989년 브라질 대표팀 은퇴 경기를 우디네세에서 개최했고, 2017년 팀 방문 시 팬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2.2.3. 가시마 앤틀러스 (1991-1994)
1990년 브라질 최초의 대통령 선거로 탄생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메루 대통령은 지쿠를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지쿠는 약 1년간 직무를 수행했지만, 루이스 안토니오 타카사키를 통해 1991년에 미래 프로리그 참가를 표명했던 일본 축구 리그 2부의 스미토모금속공업 축구단(현, 가시마 앤틀러스)의 제안을 받고, 축구를 통한 지역 활성화라는 전례 없는 도전에 매력을 느껴 3년 계약으로 입단했다.
락커룸에 소속 선수들의 더러운 신발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때는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는 편히 쉴 수 없어. 다음에도 이런 상태라면 내가 다 버릴 거야.”라고 격노하는 등 일본인의 축구에 대한 자세 개선에 애썼다.
1991년 7월 26일 이와타 시장배 서머 삭커, 야마하발동기전에서 직접 프리킥으로 스미토모금속 이적 후 첫 골을 넣었고, 8월 18일 JSL, 미쓰비시전에서 공식전 첫 골을 넣었다. 1991-92년 일본 리그 2부에서는 21득점으로 득점왕 타이틀을 획득하는 활약으로 팀의 2부 리그 2위 확보에 기여했다. 1992년 10월 11일 J리그컵, 산프레체 히로시마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1993년 J리그 개막을 앞두고 산투스 외에 한 명의 외국인 선수 영입이 필요하다고 판단, 알신두를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이탈리아 원정을 갔지만 세리에 A 팀에 연이어 패배했고, 크로아티아전에서는 1-8로 대패했다. 귀국 후, 가시마 스타디움의 첫 경기가 된 플루미넨세와의 친선 경기에서 지쿠는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첫 번째 골을 넣었고 (자신의 현역 통산 800골) 승리했다. 개막 첫 경기, 나고야 그램퍼스전에서 곧바로 J리그 최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0으로 승리했다. 2경기 이후 부상으로 결장했고, 6월 23일 베르디 가와사키전에서 복귀했지만 다시 부상으로 결장했으나, 안틀러스는 1st 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J리그 올스타 축구 멤버로 선출되었지만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했다. 세컨드 스테이지에서는 9월 3일 제프 이치하라전 연장 V골 등 13경기 6골의 성적을 남겼고, 천황배 2회전, 도호쿠 전력전에서는 힐 볼리로 이후에도 칭찬받는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챔피언십, 베르디 가와사키전 2nd 레그에서는 퇴장을 당했다.
1994년 1st 스테이지는 부상의 영향으로 5월 14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전부터 복귀, 6월 1일 감바 오사카전에서 시즌 첫 골을 넣었고, 6월 8일 우라와 레즈전, 6월 11일 벨마레 히라츠카전에서는 2골을 넣었다. (이 경기에서 현역 마지막 직접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다.) 현역 마지막 공식전이 된 6월 15일 주빌로 이와타전에서는 직접 프리킥을 차서 이것이 크로스바에 맞고 1득점이 되었고, 전반 21분 소마 나오키의 패스에서 볼레이 슛으로 통산 817골째 결승골을 넣는 등, 부상을 안고 후반 11분까지 플레이했다. 마지막 3경기에서 3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경기 후에는 이와타 서포터들로부터도 지쿠 콜이 이어졌다. 이날 기록한 41세 3개월 12일의 득점은 2023년 5월 기준 J1 최고령 득점 기록이다. 7월 23일 J리그 올스타 축구에 선발 출전한 것을 끝으로 브라질로 귀국했지만, 1994년 가을에는 지쿠 카니발(은퇴 기념 이벤트)의 하나로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로베르토 리베리노 감독이 이끄는 J리그 선발 대 안틀러스 경기에 출전했다.
1995년 가시마의 테크니컬 어드바이저에 취임하여 이후로도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2.3. 국가대표팀 경력
지쿠는 1978년, 1982년, 1986년 FIFA 월드컵에 3회 연속 출전했다. 국가대표로 71경기에 출전하여 48득점을 기록하였다.
1978년 월드컵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경기 종료 직전 코너킥으로 헤딩골을 넣었지만, 웨일스 출신 심판 클라이브 토머스는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며 골을 인정하지 않았다. 2라운드 페루전에서는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어 3-0 승리에 기여했다. 지쿠는 이 대회에서 브라질과 함께 3위를 차지했다.
197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브라질 대표로 참가하여 2골을 넣으며 3위를 기록했다.
1982년 월드컵에서 지쿠는 파우캉,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 사중주'라 불리는 막강한 미드필더 라인을 구축했다. 4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지만, 2차 리그 이탈리아전에서 파올로 로시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2-3으로 패해 탈락했다.
1986년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주로 후반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8강 프랑스전에서 페널티킥을 얻었으나 실축했다. 승부차기에서 자신의 킥은 성공했지만, 소크라테스와 줄리우 세자르의 실축으로 브라질은 탈락했다.
1989년 3월, 스타디오 프리울리에서 열린 월드 올스타 팀과의 경기에서 브라질 대표팀 고별전을 치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테크니컬 디렉터로 참가하여 자갈루 감독을 보좌하며 준우승을 이끌었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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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는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조감독으로 활약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일본축구협회는 트루시에의 후임으로 지쿠를 선택했다. 1998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의 기술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던 경험 외에는 감독 경험이 부족했지만, 지쿠는 선수 시절과 가시마 앤틀러스의 기술 이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통해 일본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2002년 7월 22일에 일본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으며, 이는 일본 대표팀 감독 사상 최고액의 연봉이었다.
지쿠는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2003년과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했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일본을 본선에 진출시켰으나, 본선에서는 1무 2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조 최하위에 그쳤다. 특히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후반 막판 3실점을 허용하며 1-3으로 역전패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06년 FIFA 월드컵을 마친 후, 지쿠는 이비차 오심 감독에게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넘겼다.
이후 지쿠는 터키 쉬페르 리그의 페네르바체 감독을 맡아 팀을 2007-08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려놓았다. 우즈벡 리그의 FC 부뇨드코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PFC CSKA 모스크바, 슈퍼리그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 감독을 거쳐, 2011년에는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으나 임금 체불 문제로 이듬해 사퇴했다. 2013년에는 카타르의 알 가라파 (Al-Gharafa) 감독을 맡았고, 2014년에는 인도 슈퍼리그의 FC 고아(FC Goa) 감독으로 부임하여 2017년까지 활동했다.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서 통산 국제 A매치 지휘 경기 수(71경기)와 승리 수(38승)는 모두 역대 1위 기록이며,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유럽 챔피언 그리스를 꺾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브라질과도 대등하게 맞섰다.
지쿠의 일본 대표팀 감독 시절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대회 | 주요 경기 및 사건 |
|---|---|---|
| 2002 | 자메이카전 (친선 경기) | 1-1 무승부 (첫 경기), 나카타 히데토시, 나카무라 슌스케, 오노 슈지, 이나모토 준이치 동시 기용 |
| 2003 | 한국전 (친선 경기) | 1-0 승리 (첫 승) |
| 2003 |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승 2패, 조별리그 탈락 |
| 2004 |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오만, 싱가포르전 1점 차 신승 |
| 2004 | 2004년 AFC 아시안컵 | 우승 (대회 2연패) |
| 2005 | 2006년 FIFA 월드컵 최종 예선 | 북한전 승리, 본선 진출 확정 (개최국 독일 제외, 세계 최단 시간) |
| 2005 | 2005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승 1무 1패, 조별리그 탈락 |
| 2006 | 2006년 FIFA 월드컵 | 1무 2패, 조별리그 최하위 탈락 |
4. 행정가 경력
1996년부터 2002년까지 가시마 앤틀러스의 디렉터로 활동했다. 2010년 5월 30일, 플라멩구의 디렉터로 4년 계약을 체결했으나, 5개월 만에 보드진과의 마찰로 사임하였다.
2015년에는 제프 블래터(Sepp Blatter)의 부정으로 공석이 된 FIFA 회장직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2018년부터 가시마 앤틀러스의 기술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페르난두 콜로르 드 멜루 대통령은 브라질에서 오랜만에 치러진 첫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후 지쿠를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지쿠는 약 1년간 체육부 장관직을 수행했으며, 스포츠 팀의 사업 측면을 다루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5. 개인 생활
지쿠는 포르투갈계 가문 출신으로, 6남매 중 막내였다. 그의 조부모는 포르투갈인이며, 아버지가 10세 때 브라질로 이민 왔다. 형제로는 마리아 조제, 안투네스, 난두, 에두, 안토니우가 있다. 1969년 산드라 카르발류 데 소사와 만나 1975년에 결혼했으며, 세 아들 아르투르 주니어, 브루누, 티아구를 두었다. 지쿠는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지쿠의 가족 내에서 사용되던 '아르투르지뉴(Arthurzinho)'("어린 아르투르")라는 별명은 점차 '아르투르지쿠(Arthurzico)', '투지쿠(Tuzico)'를 거쳐, 사촌인 에르멜린다 "린다" 롤림(Ermelinda "Linda" Rolim)이 지은 '지쿠(Zico)'로 최종 정착되었다.
1969년 지쿠는 미래의 아내가 될 산드라 카르발류 드 사를 만났고, 1970년에 약혼하여 1975년에 결혼했다. 산드라의 여동생 수엘리는 에두의 아내이다.
장남인 아르투르 안투네스 코임브라 주니오르는 전 축구 선수로, 사간 도스에서 뛸 당시 지쿠도 도스시를 방문했다. 주니오르의 아내는 일본계 브라질인이다. 차남은 브라질에서 유명한 가수 브루누 코임브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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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이민자 출신의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이탈리아 카타니아 출신이다. 제빵사(후에 의류 제작자)로 생계를 유지했던 아버지는 플라멩구와 프로 계약 직전까지 갔던 골키퍼였다. 조제 안투네스 코임브라와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어머니 마치우데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들 아르투르를 피아니스트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의 형제 안투네스와 에두의 영향으로 축구 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는 브라질 국적 외에도 포르투갈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포르투갈 축구 선수 에두아르두 쿠아레스마의 먼 친척이다. 카스테요 블랑코 대학교 체육학과 출신이다.
6. 플레이 스타일
지쿠는 선수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뛰어난 기술,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를 바탕으로 경기를 조율하고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특히 프리킥에 능숙하여 많은 골을 기록했으며, TV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그의 프리킥을 막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지쿠는 팔캉, 소크라테스, 에데르, 세레조, 주니오르 등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의 황금 미드필더진을 구축했다. 이 대회에서 4골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브라질은 2라운드에서 이탈리아에게 3-2로 패해 탈락했다.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8강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정규 시간에 페널티킥을 얻어냈지만, 직접 찬 킥은 골키퍼에게 막혔다. 승부차기에서는 킥을 성공시켰으나, 다른 선수들의 실축으로 브라질은 탈락했다.
경기 중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디네세 시절 심판에게 폭언을 해 장기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고, J리그 챔피언십 경기에서는 상대 선수의 페널티킥 때 공에 침을 뱉는 비신사적인 행위로 퇴장당하기도 했다.
7. 수상 내역
플라멩구
* 카리오카 주 선수권 대회: 1972, 1974, 1978, 1979, 1979 (추가), 1981, 1986
* 브라질 세리에 A: 1980, 1982, 1983
* 코파 우니앙: 1987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81
* 인터컨티넨탈컵: 1981
;가시마 앤틀러스
* J리그: 1993
;브라질
* FIFA 월드컵 3위: 1978년
* 코파 아메리카 3위: 1979년
* 타사 두 아틀란티쿠: 1976년
* 코파 리우 브랑쿠: 1976년
* 타사 오스발두 크루스: 1976년
* 200주년 기념컵: 1976년
;브라질 U-23
* CONMEBOL 올림픽 예선: 1971년
;개인
* 발롱도르: 1974, 1982
* 볼라 드 프라타: 1974, 1975, 1977, 1982, 1987
* 카리오카 주 선수권 대회 득점왕: 1975년 (30골), 1977년 (27골), 1978년 (19골), 1979년 (26골), 1982년 (21골)
*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 1977, 1981, 1982
*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 실버볼: 1976, 1980
* 엘 그라피코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 2위: 1981
* 브라질 시즌 최다 득점자: 1976년 (63골), 1977년 (48골), 1979년 (81골), 1980년 (53골), 1982년 (59골)
* FIFA 올해의 팀: 1979, 1982
* 브라질 세리에 A 득점왕: 1980년 (21골), 1982년 (21골)
*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스타 팀: 1980, 1981, 1983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최우수 선수: 1981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1981
* 인터컨티넨탈컵 MVP: 1981
*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 1981
* FIFA 월드컵 동메달 부트: 1982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1982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83
* 셰브론 어워드: 1984
* 세리에 A 올해의 팀: 1984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984
* 비치사커 월드 챔피언십 득점왕: 1995년 (12골)
* 비치사커 월드 챔피언십 최우수 선수: 1995년
* FIFA 공로훈장: 1996
* FIFA 100: 2004
* 골든 풋 레전드 어워드: 2006
* 브라질 축구 박물관 명예의 전당: 2010
*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2016
* IFFHS 20세기 브라질 최우수 선수 3위
* IFFHS 20세기 남미 최우수 선수 7위
* IFFHS 20세기 최우수 선수 14위
* FIFA 20세기 최우수 선수 7위 (FIFA 매거진 및 대배심 투표)
* 프랑스 풋볼 20세기 최우수 선수 9위
* 월드 사커 매거진 20세기 최고의 선수 18위
* 플라카르 20세기 최우수 선수 16위
* IFFHS 레전드
* 플라멩구 역사상 최다 득점자 – 508골
* 마라카낭 경기장 최다 득점자 – 333골
* 일본 축구 리그 연속 경기 득점 기록 – 10경기 11골 (1992년)
* 플라멩구 기록 보유자 – 단일 시즌 최다 득점자 – 81골 (1979년)
;감독
*가시마 앤틀러스
1999년 야마자키 나비스코컵 준우승
*일본 국가대표팀
AFC 아시안컵: 2004
2003년 2003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05년 2005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페네르바흐체
쉬페르리그: 2006-07
터키 슈퍼컵: 2007
*분요드코르
우즈베키스탄 슈퍼리그: 2008
우즈베키스탄컵: 2008
*CSKA 모스크바
러시아컵: 2008-09
러시아 슈퍼컵: 2009
8. 기타
지쿠의 가족은 '아르투르지뉴(Arthurzinho)'(작은 아르투르)를 줄여 '아르투르지쿠(Arthurzico)', '투지쿠(Tuzico)'라고 불렀고, 최종적으로 사촌인 에르멜린다 "린다" 롤림(Ermelinda "Linda" Rolim)이 '지쿠(Zico)'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1994년에는 일본 축구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내각총리대신 표창을 수상했다. 2024년 현재 외국인 수상자는 펠레뿐이다. 2015년에는 일본과 브라질 외교 관계 수립 120주년을 맞아 리우데자네이루 일본 총영사관으로부터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1998년 브라질 영화 Uma Aventura de Zico포르투갈어에 본인 역, 엄격한 지코, 명랑한 지코로 분열된 "지코피(ジーコピー)"의 3역으로 출연했다. 부인과 아들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바라키현 가시마시에 있는 쇼핑센터 체리오 1층에는 "지코 광장"이 있으며, 지쿠의 청동상이 놓여 있다. 2004년 2월 8일에는 직접 쓴 특대 사인과 가시마 앤틀러스에 재적했던 브라질 선수들의 사인을 벽면에 배치하여 "지코 미니 뮤지엄"이라고 부르며, 당시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지쿠 본인이 제막식을 진행했다.
가시마 축구장 밖에는 지쿠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91년 천황배 예선에서는 당시 일본대학 1학년이었던 오카노 마사유키(이후 우라와 레즈 입단)와 대결했다. 당시 일본대학 축구부는 대학 리그 2부였고, 다음 해부터 프로팀이 될 스미토모금속보다 훨씬 약체였기 때문에 지쿠는 벤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오카노 마사유키가 2득점하는 등 전반전은 일본대학이 3-0으로 앞섰다. 후반전 시작부터 지쿠가 투입되자 오카노 마사유키는 "지쿠가 경기장에 나온 순간, 모든 공기가 바뀌었다. 먼저 심판의 태도가 바뀌었다. 분명히 상대(스미토모금속)의 반칙으로 우리(일본대학)의 공이어야 하는데, 판정은 상대 공이라고 한다. 자, 지쿠 씨, 프리킥 부탁드립니다."라고 회고했다. 결국 후반 지쿠의 활약으로 스미토모금속이 4-5로 승리했다.
지쿠가 입단했던 당시 스미토모금속 축구부는 선수들의 아마추어 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에 기숙사를 빠져나가 과자 등을 사 오는 선수들이 많았다. 지쿠는 그들에게 프로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매일 밤 선수 기숙사의 출입을 감시하며, "프로 선수의 몸 만들기에 과자는 필요 없다"고 화를 냈다.
로베르토 바조는 어린 시절 지쿠를 동경하며 프리킥 차는 방법을 따라 했다. 바조는 자신의 프리킥 정확도 향상을 위해 지쿠에게 프리킥 영상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지쿠는 직접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편집한 비디오를 보냈다.
매년 12월에는 브라질 리그 시즌 오프를 이용하여 지쿠가 주최하는 자선 경기를 개최한다.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 경기에는 5만 명의 관중이 모이며, 역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명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경기 수익은 리우의 빈곤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기부된다.
1981년 토요타컵 MVP 부상으로 받은 1983년형 토요타 세리카(세리카 2.0 GT)를 2020년대 현재까지 40년 동안 소중히 보유하고 있다. 1981년형이 아닌 이유는 당시 불황이 심각했던 브라질이 외국 제품에 대해 엄격한 수입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1990년 스미토모금속에 입단하기 전부터 플라멩구 선수로서 1981년 토요타컵, 1986년 기린컵에 참가하여 일본을 방문했고, 1989년 일본에서 개최된 월드 마스터즈 축구에도 출전하는 등 일본과 인연이 있었다.
2011년 6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장남의 아내는 일계인"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손자가 일본인의 피를 잇는 것에 대해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싫어하는 일본 음식은 유부우동이다.
1994년, 일렉트로닉 아츠에서 슈퍼 패미컴 소프트웨어 ジーコサッカー일본어가 발매되었다.
패미컴 소프트웨어 キャプテン翼II スーパーストライカー일본어에 アルツール・アンチネス・コインブラ일본어라는 선수가 게임의 최종 보스로 등장한다. 또한, 슈퍼 패미컴으로 발매된 속편 キャプテン翼V 覇者の称号カンピオーネ일본어에서는 클리어 후에 싸울 수 있는 숨겨진 팀 カナリアスターズ일본어의 일원으로 안치네스(アンツネス)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