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 정복
1. 개요
하일 정복은 사우드 왕가가 자발 샴마르 토후국의 수도였던 하일 지역을 점령한 사건을 의미하며, 하일 토후국으로도 불린다. 압둘아지즈는 무함마드 빈 탈랄 알 라시드를 투옥하고 그의 아내였던 누라 빈트 시반과 강제로 이혼시킨 후 결혼하였고, 이후 누라와 이혼하고 무함마드의 딸 자와헤르와 결혼했다. 하일 정복은 종종 제2차 사우드-라시드 전쟁으로 잘못 불리기도 한다.
하일 정복 - [전쟁]에 관한 문서
개요
| 분쟁 | 하일 정복 |
|---|---|
| 전체 |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일 |
| 시기 | 1921년 |
| 장소 | 하일, 아라비아 |
| 결과 | 네지드 술탄국 (사우디)의 승리 |
| 결과 상세 | 하일 토후국의 항복 자발 샴마르를 사우디의 영토로 병합시킴 압둘아지즈는 무함마드 빈 탈랄에게 그의 아내 중 한 명과 이혼하도록 강요하고, 그녀와 결혼했다가 곧 이혼하고 무함마드의 딸과 결혼했다. |
교전 세력
| 교전국 1 | 하일 토후국 |
|---|---|
| 교전국 2 | 네지드 술탄국 |
지휘관
| 교전국 1 지휘관 | 압둘라 빈 무타입 |
|---|---|
| 교전국 1 지휘관 | 무함마드 빈 무타입 |
| 교전국 2 지휘관 |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
기타 정보
| 원인 | 사우디의 승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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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칭
자발 샴마르 토후국의 수도는 하일에 있었으며, "하일 토후국"으로도 알려졌다. 하일 정복은 종종 제2차 사우드-라시드 전쟁으로 잘못 명명되기도 한다.
3. 강제 이혼 및 결혼
압둘아지즈 국왕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제 이혼 및 결혼을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