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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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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강백은 동진 시대의 인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수재로 추천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회계왕 사마욱의 담객으로 불려 여러 관직을 거쳐 시중에 임명되었으며, 주협을 천거하지 않고 왕탄지와 원굉의 논쟁에 대해 《변겸》을 지어 절충했다. 단양윤, 이부상서, 영군장군을 역임했으나 병으로 사망했으며, 저서로 《역계사전주》가 있다. 그의 아들 한환은 형양군 태수를 지냈다. 한강백은 역학 사상과 유학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저서로는 《역계사전주》가 있다.

2. 생애

한강백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은씨 슬하에서 자랐다. 삼촌 은호와 유량의 아들 유화에게 높이 평가받았으며, 수재로 추천받아 좌저작랑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회계왕 사마욱의 담객으로 부름받아 사도 좌서속, 무군연, 중서랑, 산기상시, 예장군 태수를 거쳐 시중으로 조정에 들어갔다.[1]

당시 주협은 노장 사상을 숭상하여 유교를 존중하지 않고 상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한백은 중정의 직을 겸하고 있어 이 때문에 주협을 천거하려 하지 않았다.[1]

왕탄지의 《공겸론》과 원굉의 비난에 대해, 한백은 《변겸》을 지어 이들의 논쟁을 절충하였다.[1]

이후 단양윤, 이부상서, 영군장군을 역임했으나 병으로 눕게 되었다.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받기 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사후 태상의 자리가 추증되었다. 저서로 《역계사전주》가 있다.[1]

아들 한환은 형양군 태수에 올랐다.

2. 1. 초기 생애와 학문

한강백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머니 은씨에게 양육되었다. 성장하면서 삼촌 은호와 유량의 아들인 유화에게 높이 평가받았다. 수재로 추천되어 좌저작랑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회계왕 사마욱에게 담객으로 불려 사도 좌서속, 무군연, 중서랑, 산기상시, 예장군 태수를 거쳐 시중으로 입조했다.

당시 주협이 노장 사상을 숭상하여 유교를 존중하지 않고 상례를 행하지 않았다. 한백은 중정의 직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해 주협을 천거하려 하지 않았다.

왕탄지가 《공겸론》을 저술하고, 원굉이 이를 비난한 적이 있었다. 한백은 그들의 논쟁의 시비를 논하여 《변겸》을 지어 절충했다.

2. 2. 관직 생활

은호와 유량의 아들 유화에게 높이 평가받았다. 수재로 추천되어 좌저작랑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회계왕 사마욱의 담객으로 불려 사도 좌서속, 무군연, 중서랑, 산기상시, 예장군 태수를 거쳐 시중으로 입조했다.[1]

당시 주협은 노장 사상을 숭상하여 유교를 존중하지 않고 상례를 행하지 않았다. 한백은 중정의 직을 겸하고 있었는데, 이 일로 주협을 천거하려 하지 않았다.[1]

왕탄지가 《공겸론》을 저술하고 원굉이 이를 비난한 적이 있었다. 한백은 그들의 논쟁의 시비를 논하여 《변겸》을 지어 절충했다.[1]

단양윤, 이부상서, 영군장군으로 전임되었으나 병석에 눕게 되었다.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받기 전에 향년 49세로 사망했다. 사후 태상의 자리가 추증되었다. 저서로 《역계사전주》가 있었다.[1]

3. 사상

한강백은 상수(象數)를 중시하는 사상을 가졌으며, 이는 정약용의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된다.[5][6]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왕필과 한강백이 역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가지고 의리를 밝힌 점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들의 사상이 허무를 숭상하여 노장사상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7] 그러나 이러한 점이 그들의 공로를 가리지는 못한다고 평가하였다.[8]

3. 1. 역학(易學) 사상

'대저 상(象)을 잃지 않고서는 그 상(象)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수(數)를 잊지 않아야만 그 수를 극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정밀하다는 것은 산가지 막대로 점치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지극히 변통하다는 것은 일관하여 두루 미치지 않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신묘하다는 것은 숙연하여 응하지 않는 바가 없다. 이 모두가 공용의 어머니가 되는 상수(象數)가 성립하는 까닭이다.'라고 한강백이 말한 바를 정약용이 언급하였다.[5][6]

한편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균형 있게 논하자면, 의리를 밝혀 분명히 하였고 (점)술수를 엮지 않게 한 바는 왕필과 한강백의 (역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음이다. 다만 허무를 숭상하니 역이 노장사상으로 점입가경한 바는 왕필이 한강백과 더불어 역시 허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옥의 티가 (옥을) 가리지는 못한다. 이것이 그 바른 평일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7] 한편 여기서 '술수에서 어지럽게 하지 않은 바는 왕필과 한강백의 (역에 대한) 깊은 공로가 있다.'[8]는 것은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길흉을 점치는 역서(易書)의 근본을 뛰어넘어 이를 인간의 의리(義理)를 돌아보는 본보기로 삼아 보였음을 헤아린 것으로 여겨진다.

3. 2. 유학(儒學) 사상

한강백은 '상(象)을 잃지 않고서는 그 상(象)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수(數)를 잊지 않아야 그 수를 극진할 수 없을 것이다. 지극히 정밀하다는 것은 산가지 막대로 점치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지극히 변통하다는 것은 일관하여 두루 미치지 않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신묘하다는 것은 숙연하여 응하지 않은 바가 없다. 이 모두가 공용의 어머니가 되는 상수(象數)가 성립하는 까닭이다.'라고 언급한 바를 정약용이 언급하였다.[5][6]

한편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균형있게 논하자면, 의리를 밝혀 분명히 하였고 (점)술수를 엮지 않게 한 바는 왕필과 한강백의 (역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음이다. 다만 허무를 숭상하니 역이 노장사상으로 점입가경한 바는 왕필이 한강백과 더불어 역시 허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옥의 티가 (옥을) 가리지는 못한다. 이것이 그 바른 평일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7] 여기서 '술수에서 어지럽게 하지 않은 바는 왕필과 한강백의 (역에 대한) 깊은 공로가 있다.'[8]는 것은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길흉을 점치는 역서(易書)의 근본을 뛰어넘어 이를 인간의 의리(義理)를 돌아보는 본보기로 삼아 보였음을 헤아린 것으로 여겨진다.

4. 저서

위(魏)나라 왕필주역을 해설한 주역정의(周易正義)에 주(註)를 추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唐)나라 공영달은 이것을 다시 주석하였다.[4]

5. 평가

'상(象)을 잃지 않고서는 그 상(象)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다. 수(數)를 잊지 않아야만 그 수를 극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정밀하다는 것은 산가지 막대로 점치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지극히 변통하다는 것은 일관하여 두루 미치지 않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신묘하다는 것은 숙연하여 응하지 않는 바가 없다. 이 모두가 공용의 어머니가 되는 상수(象數)가 성립하는 까닭이다.'라고 한강백이 말한 바를 정약용이 언급하였다.[5][6]

한편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균형 있게 논하자면, 의리를 밝혀 분명히 하였고 (점)술수를 엮지 않게 한 바는 왕필과 한강백의 (역학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음이다. 다만 허무를 숭상하니 역이 노장사상으로 점입가경한 바는 왕필이 한강백과 더불어 역시 허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옥의 티가 (옥을) 가리지는 못한다. 이것이 그 바른 평일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7] 여기서 '술수에서 어지럽게 하지 않은 바는 왕필과 한강백의 (역에 대한) 깊은 공로가 있다.'[8]는 것은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길흉을 점치는 역서(易書)의 근본을 뛰어넘어 이를 인간의 의리(義理)를 돌아보는 본보기로 삼아 보였음을 헤아린 것으로 여겨진다.

6. 기타

왕탄지가 《공겸론》을 저술하고, 원굉이 이를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 한백은 그들의 논쟁의 시비를 논하여 《변겸》을 지었다.

한백은 《역계사전주》를 저술하였다.

참조

[1] 서적 晉書.卷七五.韓伯列傳
[2] 서적 晋書』巻77 列伝第47
[3] 서적 《世說新語》〈品藻篇〉,《晉書》〈殷浩專〉
[4] 웹사이트 周易正義 https://zh.wikisourc[...]
[5] 논문 "韓云夫非忘象者, 無以制象, 非遺數者, 無以極數. 至精者無籌策而不可亂, 至變者體一而無不周, 至神者寂然而無不應. 斯蓋功用之母,象數所由立.”
[6] 웹사이트 한강백․공영달의 현학적 역학사상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이 난 숙 https://webcache.goo[...]
[7] 간행물 (四庫全書總目提要)平心而論, 闡明義理, 使不雜于術數者, 弼與康伯深爲有功. 祖尙虛無, 使易竟入于老莊者, 弼與康伯亦不能無過, 瑕瑜不掩, 是其定評.
[8] 간행물 (四庫全書總目提要)平心而論, 闡明義理, (使不雜于術數者, 弼與康伯深爲有功) 祖尙虛無, 使易竟入于老莊者, 弼與康伯亦不能無過, 瑕瑜不掩, 是其定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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