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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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겨레민주당은 1988년 4월 6일 창당된 대한민국의 정당이었다. 1987년 통일민주당 분당으로 인한 야권의 대선 패배를 반성하며, 3김의 지역 할거 정치와 민주정의당의 관권 정치에 저항하기 위해 예춘호, 조순형, 고영구 등 야당 인사들이 주도하여 결성되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1석을 얻었으나, 이후 당 지도부의 민주당 입당과 법정 지구당 수 미달로 1991년 3월 13일 등록이 취소되었다.

한겨레민주당 - [정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한겨레민주당
로마자 표기Hangyeoreminjudang
한자 표기한겨레民主黨
약칭HDP,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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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민주당 로고
국가대한민국
창당1988년 4월 6일
해산1991년 3월 13일
해산 이유등록 취소
합병 대상대중당 (대부분)
민주당 (소수)
본부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184-1
이념 및 정책
정치 성향중도좌파
이념진보주의 (한국)
사회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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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제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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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년 폐지 - 평화민주당

2. 내력

1987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예춘호, 조순형, 고영구 등의 야당 인사들은 유인태, 제정구, 원혜영 등과 함께 3김의 지역 할거 정치 및 민주정의당의 관권 정치에 저항하는 제3의 당을 구상했다. 이들은 1960년대 후반~70년대에 학생 운동을 해 온 사람들로, 창당대회에서 "이념적 신봉이나 혁신이 아니라 민족 대 반민족, 민중 대 군부 독재, 통일 대 분단, 역사의 발전 정체, 평화 대 폭력, 진리 대 불의가 대립하고 있다"고 현 한국 정치 상황을 진단했다. 또한 "썩어빠진 정치 현실을 타개하고 국민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정치를 세우기 위해 한겨레민주당의 첫걸음을 내딛는다"고 선언하며, 대중성과 민주성, 새로운 세대의 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2.1. 창당 배경

1987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분당 사태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이어진 것에 대한 반성으로, 예춘호, 조순형, 고영구 등 야당 인사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모색했다. 이들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던 유인태, 제정구, 원혜영 등과 함께 3김의 지역 할거 정치 및 민주정의당의 관권 정치에 저항하는 제3의 당을 구상했고, 그 결과 1988년 4월 6일에 한겨레민주당이 창당되었다.

2.2. 창당 과정

1987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의 분당 사태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직결된 것을 본 예춘호, 조순형, 고영구 등의 야당 인사들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던 유인태, 제정구, 원혜영 등과 함께 3김의 지역할거 정치 및 민주정의당의 관권 정치에 저항하는 제3의 당을 구상했다.

1988년 4월 6일, 이러한 구상 끝에 '한겨레민주당'이 창당되었다. 원래 당명은 '민족민주당'이었으나, "극단적으로 들린다"는 이유로 변경되었다. 창당대회에서는 자주, 민주, 통일을 핵심으로 하는 10대 강령과 5대 기본 강령을 채택했으며, 예춘호가 상임 대표로 선출되었다.

2.3. 13대 총선과 그 이후

1988년 4월 26일에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예춘호 대표는 부산 영도구에, 조순형은 서울 도봉구 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하는 등 지도부의 출마 성적은 부진했다. 그나마 전남 신안군에서 박형오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이는 평민당 후보였던 한화갑의 등록무효로 인해 반(反)민정당 표가 몰린 덕분이었다.

박형오는 당선 직후 평민당에 입당하여 한겨레민주당은 의석수 0의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이후 남은 당원들은 1990년 4월에 민중당을 구상하던 이우재, 장기표와 함께 《민주연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합당을 시도했으나, 선(先)진보정당 재건을 주장하는 민중의 당 출신들과 선(先)야권 통합 후 3당 합당 심판을 주장하는 한겨레민주당 간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합당이 무산되었다. 1990년 7월에는 조순형, 원혜영을 위시한 당 지도부가 조직책을 반납하고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법정지구당 수(당시 225개 지역구 중 1/5)에 미달하여 1991년 3월 13일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등록취소 판정을 받게 되었다.

2.4. 민중당과의 통합 시도 및 해산

1990년 4월, 한겨레민주당은 민중당을 구상하던 이우재, 장기표와 함께 '민주연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합당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선(先)진보정당 재건을 주장하는 민중당 출신들과 선(先)야권 통합 후 3당 합당 심판을 주장하는 한겨레민주당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해 합당은 무산되었다.

이후 1990년 7월, 조순형, 원혜영 등 당 지도부가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법정지구당 수(당시 225개 지역구 중 1/5) 미달로 1991년 3월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등록이 취소되었다.

3. 주요 관계자

* 예춘호: 초대 대표로, 민주공화당 의원 출신이었으나 3선 개헌에 반대하여 제명되었다. 13대 총선에서 부산 영도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조순형: 창당 멤버 중 한 명으로, 훗날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3대 총선에서 서울 도봉구 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고영구: 창당 멤버 중 한 명으로, 훗날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다. 13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유인태: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재야 출신 정치인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정무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한겨레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3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 갑구 지역위원장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김부겸: 창당 발기인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13대 총선에서 동작구 지역위원장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원혜영: 한겨레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으며, 훗날 민주통합당 임시 공동 대표를 역임했다.
* 박형오: 13대 총선에서 전남 신안군에서 당선된 유일한 한겨레민주당 국회의원이었으나, 평민당 후보였던 한화갑의 등록무효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당선된 것이었다. 이후 평민당에 입당했다.

4. 주요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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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대표득표수득표율의석순위지위
1988년예춘호251,2361.28%1석5위야당


1988년 총선에서 박형오가 유일하게 당선되었으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여 원외정당이 되었다.

4.1. 국회의원 선거

1988년 총선에서 한겨레민주당은 예춘호, 조순형, 고영구, 유인태 등 당 지도부 후보 전원이 낙선했다. 박형오는 신안군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유일한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평화민주당과의 사전 합의에 따라 입당하여 한겨레민주당은 원외 정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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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일대수의석수득표율
1988년 4월 26일제13대 총선1석1.3%

5. 평가

한겨레민주당은 비록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3김 중심의 지역주의 정치와 권위주의적 정치에 대한 비판은 이후 한국 정치 개혁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한겨레민주당의 실패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진보 정당의 입지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민주화 운동 세력의 정치 참여와 진보 정당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한겨레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이후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이 당의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유인태 전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동했고, 김부겸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책을 맡는 등 진보 진영의 핵심 인사로 활동했다. 원혜영 의원 또한 민주통합당의 임시 공동 대표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