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춘호
1. 개요
예춘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동아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주공화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제6대와 제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민주공화당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3선 개헌 반대와 4·8 항명 파동으로 제명된 후, 제10대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었고 신민당에 입당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민주화추진협의회 부의장과 한겨레민주당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2020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 본관 | 전주 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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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 목촌(牧村) |
| 출생 | 1917년 5월 13일 |
|---|---|
| 사망 | 2000년 1월 22일 (향년 82세) |
| 학력 | 전주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교 법문학부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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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력 | 제6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제7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제8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민주정의당 당기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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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 국민훈장 무궁화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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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김계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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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 4남 2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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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 예씨 -
정애란
정애란은 1943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영화 《진리의 밤》으로 영화계에 데뷔 후 신상옥 감독 사단 소속으로 인기를 얻고 TV 드라마 《전원일기》에 오랜 기간 출연하며 '전원일기 할머니'로 알려졌으며, KBS, SBS, MBC 연기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 활동을 인정받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의흥 예씨 -
예정화
예정화는 대한민국의 방송인, 모델, 배우로, 웹드라마 데뷔 후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고 영화 특별출연 및 MC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
한겨레민주당 -
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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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민주당 -
유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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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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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동아대학교 경제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민주공화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 6대, 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나, 1969년 3선 개헌에 반대하여 4 · 8항명으로 제명되었다. 이후 1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신민당에 입당하여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민주화추진협의회 부의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힘썼다. 1987년 김대중의 대선 출마에 반발, 조순형, 유인태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였으나, 13대 대선에서 낙선하였다.
그 외에 사단법인 영도육영회 이사장, 한국 정치범 동지회장, 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0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정치 입문
부산광역시 영도구 출신으로, 동아대학교 경제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민주공화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1963년 제6대 총선과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연속 당선되었다. 민주공화당 사무총장, 당무위원, 아시아 의원 연맹 한국 대표,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69년 3선 개헌 파동 당시 김종필 계보로 당 사무총장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종태, 양순직, 정구영과 함께 이를 반대했다. 결국 1969년 4월 15일 4 · 8항명으로 의원총회에서 양순직, 박종태, 정태성, 김달수 의원과 함께 제명되었고, 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다.
2.2. 3선 개헌 반대와 민주화 운동
1969년 3선 개헌 파동 당시 김종필 계보로 당 사무총장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종태, 양순직, 정구영과 함께 이를 반대했다가 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다. 1969년 4월 15일 4 · 8항명으로 의원총회에서 양순직, 박종태, 정태성, 김달수 의원과 함께 제명되었다.
이후 1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신민당에 입당하면서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에 의하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고문 수사 끝에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2년간 복역했다. 1984년에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부의장을 역임했다. 이후 재야를 대표하여 민추협 부의장을 맡아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사이의 통합적인 민주화투쟁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1987년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사태를 겪은 후, 조순형한국어, 제정구, 유인태한국어 등과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설립하여 상임대표를 역임했지만,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이 불출마 약속을 뒤엎고 독자적으로 출마하자 조순형, 유인태와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해 자신이 3선을 쌓았던 부산 영도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3.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투옥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고문 수사 끝에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2년간 복역했다.
2.4. 민주화추진협의회와 한겨레민주당 창당
1984년에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부의장을 역임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이후, 조순형, 제정구, 유인태 등과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여 상임대표를 역임했다.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이 불출마 약속을 뒤엎고 독자 출마하자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해 부산 영도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5. 정계 은퇴와 사망
예춘호는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고문 수사 끝에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2년간 복역했다. 1984년에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부의장을 역임했다. 1987년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사태를 겪은 후, 조순형, 제정구, 유인태 등과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설립하여 상임대표를 역임했지만, 1988년의 제13대 총선 패배로 정계를 떠났다. 그 외에 사단법인 영도육영회 이사장, 한국 정치범 동지회장, 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0년에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94세였다.
3. 이력
부산광역시 영도구 출신이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민주공화당 공동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1963년 제6대 총선과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연속 당선되었다. 민주공화당 사무총장·당무위원, 아시아 의원 연맹 한국 대표, 국회 상공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1969년 3선 개헌 반대 활동 및 4·8 항명 파동으로 민주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 박정희 정부에서 삼선 개헌에 반대했다가 제명된 후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었다.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신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고문 수사 끝에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2년간 복역했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부의장을 역임했다. 1987년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 사태 이후, 조순형, 제정구, 유인태 등과 함께 한겨레민주당을 설립하여 상임대표를 역임했지만, 1988년 제13대 총선 패배로 정계를 떠났다.
그 외에 사단법인 영도육영회 이사장, 한국 정치범 동지회장, 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0년에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9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