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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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봉진은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난 북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2.8 체육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62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196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8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오른쪽 윙어로 활약하며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1980년부터 1981년까지 북한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2002년 다큐멘터리 '그들의 인생의 게임'에 출연했다. 그는 공훈 체육인 칭호를 받았으며, 평양시체육단의 코치 겸 기술 이사로 활동했다.

한봉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한봉진
출생일1945년 9월 2일
출생지평양, 소련 군정
포지션외부 공격수
클럽 경력
소속 클럽2·8체육선수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 연도1962년경–1966년 이후
국가대표팀 출장 수53회 이상
감독 경력
감독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감독 연도1980년–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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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한봉진은 2.8 체육단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했다. 1962년경 북한 리그 선수 25만여 명 중 40명 안에 뽑혀 국가대표팀에 합류, 명래현 감독 지휘 아래 4년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1965년, 북한 리그는 월드컵 준비로 중단되었다. 한봉진은 가네포에서 국가대표로 활약, 결승에서 중국을 3-1로 꺾고 무패 우승을 이끌었다.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호주를 상대로 2골을 넣어 북한의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오른쪽 윙어였던 한봉진은 월드컵 대표팀 22인에 포함되었다. 그는 경험 많은 선수 중 한 명이었고, 북한 최고 선수로 평가받았다. 드리블은 가린샤, 슈팅은 보비 찰튼에 비견되었으며, 평양 라디오는 펠레를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이브닝 텔레그래프는 "속도와 기술, 양발 킥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북한은 소련에 3-0으로 패하고, 칠레와 1-1로 비겼으나, 이탈리아를 박두익의 골로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8강에서 포르투갈에 5-3으로 패했다. 한봉진은 월드컵 4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 36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2.1. 유년 시절

한봉진은 1945년 9월 2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북한 최고 리그에 속한 2.8 체육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195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1966년 FIFA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재정비되었다. 1962년경, 한봉진은 25만 명 이상의 북한 리그 선수 중 최고 40명 안에 선정되어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들은 명래현 감독(대령) 지휘 아래 군 장교로 입대, 4년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매일 오전 6시부터 하루 두 번 진행되었고, 선수들은 미혼, 금연, 금주, 오후 10시 취침(마지막 6개월) 등 여러 제약을 받았다.

1965년 초, 북한 리그는 월드컵 준비를 위해 중단되었다. 선수들은 북베트남,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중국 등과 국제 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같은 해, 한봉진은 가네포에서 국가대표로 활약, 결승에서 중국을 3-1로 꺾고 무패 우승에 기여했다. 1965년 후반,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호주를 상대로 2골을 넣어 북한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오른쪽 윙어였던 한봉진은 월드컵 대표팀 22인에 포함되었다. 그는 가장 경험 많은 선수 중 한 명이었고(49, 52, 72경기 등 자료마다 다름), 북한 최고 선수로 평가받으며 드리블은 가린샤, 슈팅은 보비 찰튼에 비견되었다. 평양 라디오는 펠레를 "압도한다"고 주장했고, 이브닝 텔레그래프는 "속도와 기술, 양발 킥력이 강하다"고 평했다.

북한은 4조에서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미들즈브러의 에어섬 파크에서 경기했다. 소련에 3-0으로 패하고, 칠레와 1-1로 비긴 후, 이탈리아를 박두익의 골로 1-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8강에서 포르투갈에 5-3으로 패했다. 한봉진은 월드컵 4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여 360분 풀타임을 뛰었다.

3. 감독 경력

한봉진은 1980년 7월부터 1981년 12월까지 북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2년에는 다큐멘터리 그들의 인생의 게임에서 1966년 북한 대표팀 생존자 7명 중 한 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전 동료들과 함께 미들즈브러를 방문했다. 같은 해 평양시체육단의 코치 겸 기술 이사로 활동했다.

4. 그 외

한봉진은 1980년 7월부터 1981년 12월까지 북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4.1. 일화

월드컵에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은 북한 스포츠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예 중 두 번째로 높은 공훈 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월드컵 이후, 북한 대표팀이 이탈리아전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술집에 갔다가 감금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2002년 인터뷰에서 여러 선수들은 이 소문을 부인했다.

2002년, 한봉진은 다큐멘터리 그들의 인생의 게임에서 1966년 북한 대표팀 생존자 7명 중 한 명으로 인터뷰를 했으며, 전 동료들과 함께 미들즈브러를 방문했다. 같은 해, 그는 평양시체육단에서 코치 겸 기술 이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