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익
1. 개요
박두익은 평양 출신의 축구 선수로,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 팀의 1-0 승리를 이끌며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선수 은퇴 후에는 체조 강사,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피트니스 코치를 역임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의 첫 주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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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조동섭
조동섭은 북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1986년 킹스컵 우승에 기여했고, 감독으로서 2005년 FIFA U-17 월드컵 8강, 2006년 AFC U-20 아시안컵 우승 등을 이끌었으며, 북한 대표팀 감독 및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김영준 (축구인)
김영준은 은퇴한 북한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선수 시절 2005년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와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득점하고 201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지도자로서 평양시체육단 감독과 북한 A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감독 -
조동섭
조동섭은 북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1986년 킹스컵 우승에 기여했고, 감독으로서 2005년 FIFA U-17 월드컵 8강, 2006년 AFC U-20 아시안컵 우승 등을 이끌었으며, 북한 대표팀 감독 및 수석 코치를 역임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감독 -
김광민 (1962년)
김광민은 1987년 킹스컵 우승으로 '체육 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재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FIFA 여자 월드컵 진출 및 AFC 여자 아시안컵 우승 등의 업적을 달성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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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선수 경력
박두익은 한국 전쟁 휴전 후 인쇄 공장에서 일하다가 1957년 평양시체육단에 입단하면서 전문 선수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1966년 FIFA 월드컵에 북한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2.1. 1966년 FIFA 월드컵
박두익은 평양에서 태어나 1966년 FIFA 월드컵에 북한 대표로 참가했다.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에는 당시 선수들과의 인터뷰가 있는데, 박두익의 인터뷰 장면도 나온다.
조별 리그에서 북한은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같은 조에 속했다. 북한은 미들즈브러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에어섬 파크에서 경기를 치렀다. 소련과의 경기에서 0-3으로 패했지만, 칠레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현지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북한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3-0으로 앞서나가다가 결국 3-5로 패했다. 하지만 150마일 떨어진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까지 응원하러 온 3,000명의 미들즈브러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
2.1.1. 이탈리아전 결승골
박두익은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북한을 대표하여 잉글랜드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다. 미들즈브러 에어섬 파크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여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다니엘 고든 감독의 영화 그들의 삶의 게임에 기록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2회 우승 경력을 가진 강팀이었기에, 북한의 승리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북한은 칠레, 소련과 같은 조에 속해 있었으며, 미들즈브러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에어섬 파크에서 경기를 치렀다. 소련에 0-3으로 패했지만, 칠레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탈리아전 승리는 이러한 인기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2002년, 박두익은 1966년 북한 대표팀 생존자들과 함께 미들즈브러를 다시 방문하여 "축구가 승리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축구를 통해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이탈리아전 승리 후, 북한군 상병이었던 박두익은 하사로 진급했다. 이 경기의 티켓은 취리히에 있는 FIFA 월드 풋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번호 | 날짜 | 장소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2. | 1966년 7월 19일 | 에어섬 파크, 미들즈브러, 잉글랜드 | 이탈리아 | 1–0 | 1–0 | 1966년 FIFA 월드컵 |
각국 기자들은 이 경기 결과에 대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마추어 미국이 프로 잉글랜드를 이긴 경기에 필적하는 대이변이다"라고 보도했다.
2.2. 1966년 월드컵 이후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끈 박두익은 승리 후 조선인민군 상병에서 하사로 진급했다. 이 경기의 원본 티켓은 취리히에 있는 FIFA 월드 풋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북한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게 3-5로 패했지만, 3,000명의 미들즈브러 팬들이 그들을 응원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박두익은 군에서 전역하여 축구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체조 강사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도시 전설에는 박두익이 치과의사였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1966년 월드컵 당시 북한 대표팀이 경기를 치렀던 에어섬 파크 경기장은 1997년에 철거되고 주택 단지가 건설되었는데, 박두익의 결승골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발 위치를 나타내는 주철 축구화 스터드 자국이 새겨졌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성화 봉송에서 그는 올림픽 성화를 가장 먼저 봉송했다. 은퇴 후에는 1976년과 1990년에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2008년 4월 28일 평양에서 진행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의 첫 주자를 맡았다.
3. 은퇴 이후
선수 생활을 마친 박두익은 군에서 전역하여 축구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체조 강사가 되었다. 1976년과 1990년에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도시 전설에 따르면 박두익이 치과의사였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66년 FIFA 월드컵 당시 북한과 이탈리아의 경기가 열렸던 에어섬 파크 경기장은 1997년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 주택 단지가 건설되었다. 박두익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득점했을 때의 발 위치를 정확히 나타내는 주철 축구화 스터드 자국이 새 집 앞 정원에 영구적으로 새겨졌다.
2008년 하계 올림픽 당시 성화 봉송에서 그는 올림픽 성화를 가장 먼저 봉송했다. 2008년 4월 28일 평양에서 진행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의 첫 주자를 맡았으며, 현재는 대표팀의 피트니스 코치를 맡고 있다.
4. 평가 및 영향
박두익은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여 북한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히는데, 당시 2회 우승 경력의 이탈리아가 월드컵 데뷔전을 치르는 북한을 쉽게 이길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었기 때문이다. 이 승리로 박두익은 북한군 상병에서 하사로 진급했다.
이 경기의 원본 티켓은 취리히에 있는 FIFA 월드 풋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북한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게 3-5로 패했지만, 3,000명의 미들즈브러 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월드컵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선수 은퇴 후 박두익은 체조 강사가 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치과의사였다는 도시 전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그는 10년 동안 벌목공으로 일하는 처벌을 받았고, 그 이후에 복권되었다고 한다. 1976년과 1990년에는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4.1. 문화적 영향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과 다니엘 고든의 영화 그들의 삶의 게임에는 1966년 FIFA 월드컵 당시 박두익과 선수들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2002년, 박두익은 1966년 북한 대표팀 생존자들과 함께 미들즈브러를 다시 방문하여 "축구가 승리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운 날이었다. 축구를 통해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기록한 결승골을 기념하기 위해, 에어섬 파크 경기장이 철거되고 건설된 주택 단지 앞 정원에는 박두익이 슛을 날려 득점했을 때의 발 위치를 정확히 나타내는 주철 축구화 스터드 자국이 영구적으로 새겨졌다.
2008년 하계 올림픽 성화 봉송에서 박두익은 올림픽 성화를 가장 먼저 봉송했다.
5. 기타
*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천리마 축구단》에는 1966년 FIFA 월드컵 당시 선수들과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는데, 박두익의 인터뷰 장면도 나온다.
* 현역 시절 그의 직업은 치과의사였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