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게오르크 데멜트
1. 개요
한스 게오르크 데멜트는 독일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이다. 그는 1989년 볼프강 파울과 함께 이온 트랩 기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데멜트는 독일 육군 복무 후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듀크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1955년 워싱턴 대학교 교수가 되어 이온 트랩 연구를 지속했으며, 1976년 최초의 지오늄 원자를 만들고 단일 원자 사진을 촬영하는 등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2002년 은퇴 후 201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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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한스 게오르크 데멜트 |
|---|---|
| 출생 | 1922년 9월 9일 |
| 출생지 | 괴를리츠, 독일 |
| 사망 | 2017년 3월 7일 |
| 사망지 | 시애틀, 워싱턴주, 미국 |
| 국적 | 독일, 미국 |
| 분야 | 물리학 |
|---|---|
| 연구 기관 | 워싱턴 대학교 듀크 대학교 |
| 모교 | 괴팅겐 대학교 |
| 박사 학위 제자 | 데이비드 와인랜드 |
| 알려진 업적 | 이온 트랩 개발 전자 g-인자 정밀 측정 페닝 트랩 레이저 냉각 도플러 냉각 핵 사중극 공명 |
| 수상 내역 | 국가 과학 훈장 (1995년) 노벨 물리학상 (1989년) 럼퍼드 상 (1985년) 훔볼트 상 (1974년) 데이비슨-저머 상 (19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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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를리츠 출신 -
미하엘 발라크
미하엘 발라크는 동독 출신으로 2000년대를 대표하는 독일 축구 선수로서, 유럽 주요 클럽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독일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하며 2002년 월드컵 준우승 등을 달성했으나 주요 국제 대회 우승 없이 은퇴했다. -
괴를리츠 출신 -
옌스 예레미스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 옌스 예레미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디나모 드레스덴, TSV 1860 뮌헨을 거쳐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분데스리가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했고, 독일 국가대표로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은 브라운관과 브라운관 오실로스코프를 개발하고 무선 전신 기술 발전에 기여했으며, 1909년 무선 전신 개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
펠릭스 블로흐
펠릭스 블로흐는 고체 물리학과 핵자기 공명 분야에 기여하고, 블로흐 파를 이용한 고체 내 전자 이론을 정립했으며, 핵자기 공명 현상 연구를 통해 MRI 기술 개발의 기초를 마련하여 195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2017년 사망 -
존 허드
존 허드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버지 역으로 유명해졌고, 《소프라노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배우이다. -
2017년 사망 -
조반니 사르토리
조반니 사르토리는 이탈리아의 정치학자이며, 특히 의미있는 정당 개념을 통해 정치학계에 기여했으며, 다양한 저서를 통해 민주주의 이론, 정치 제도 디자인 등에 대해 논의했다.
2. 생애
괴를리츠에서 태어났다. 10세에 베를린의 그라우엔 클로스터 김나지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며, 1940년 졸업 후 독일 국방군에 자원 입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 복무와 물리학 공부를 병행하다 벌지 전투에 참전,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1946년 석방되어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 공부를 재개, 1950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2년 미국으로 건너가 듀크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1955년부터 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이온 트랩 연구에 매진했다. 이 연구는 198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2002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은퇴했으며, 2017년 3월 7일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괴를리츠에서 태어났다. 10세에 장학금을 받고 베를린의 그라우엔 클로스터 김나지움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다. 1940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독일 국방군 육군에 자원 입대하였다. 1943년 군의 명령으로 브로츠와프 대학교(당시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년간 공부한 후 다시 군에 복귀하여 벌지 전투에 참전했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1946년 포로 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전쟁 전의 낡은 라디오를 수리하고 물물교환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같은 대학교에서 1948년 석사 학위를, 1950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2. 전후 학업 및 연구 활동
1946년 미군 포로 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데멜트는 괴팅겐 대학교로 돌아가 물리학 공부를 재개했다. 그는 전쟁 전 구형 라디오를 수리하고 물물 교환하여 생활비를 충당했다. 1948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50년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2년, 그는 듀크 대학교의 박사후 연구원으로 초청받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55년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교의 조교수가 되었고, 1958년 부교수, 1961년 정교수로 승진했다.
워싱턴 대학교 재직 중에도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1955년에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조지 볼코프 연구실에서 첫 번째 전자 충격 튜브를 만들었고, 편광된 원자와 자유 전자의 상자성 공명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1960년대에는 데멜트와 그의 학생들이 수소와 헬륨 이온의 분광학을 연구했다. 1973년에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이온 트랩 연구를 계속한 데이비드 와인랜드와 함께 전자를 마침내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76년에 최초의 지오늄 원자를 만들었으며, 이후 1980년대까지 R. S. 반 다이크와 함께 이를 사용하여 전자와 양전자의 정확한 자기 모멘트를 측정했다. 이 연구는 그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1979년에는 단일 원자의 첫 번째 사진을 찍은 팀을 이끌었다. 데멜트는 2002년 10월 은퇴할 때까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이온 트랩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2.3. 워싱턴 대학교 교수 재직
1955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교의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1958년에는 부교수로, 1961년에는 정교수로 승진하였다.
워싱턴 대학교 재직 중에도 연구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1955년에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조지 볼코프 연구실과 협력하여 첫 번째 전자 충격 튜브를 만들었다. 또한 편광된 원자와 자유 전자의 상자성 공명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1960년대에는 학생들과 함께 수소 및 헬륨 이온의 분광학 연구에 집중했다. 이온 트랩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여, 1973년에는 훗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연구를 이어간 데이비드 와인랜드와 함께 전자를 성공적으로 분리해냈다.
1976년에는 최초의 지오늄 원자를 만들었으며, 이를 활용하여 1980년대까지 R. S. 반 다이크와 함께 전자와 양전자의 자기 모멘트를 매우 정밀하게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 성과는 훗날 그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79년에는 단일 원자를 최초로 촬영한 연구팀을 이끌었다. 데멜트는 이온 트랩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다가 2002년 10월 워싱턴 대학교에서 은퇴하였다.
2010년 5월, 시애틀에서 열린 특별 행사에서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로부터 워싱턴주의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