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징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한징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언론인이자 국어학자이다. 1922년부터 10년간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1930년 이윤재와 함께 조선어학회 사전을 편찬하고 표준어 사정 위원을 지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고, 1944년 함흥 감옥에서 사망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제강점기의 언어학자 - 이희승
이희승은 국어학자, 교육자, 언론인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고, 서울대학교 교수로 국어 연구와 사전 편찬에 기여했으며, 『국어대사전』 발간, 동아일보 사장, 대구대학교 총장,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학술원 부회장 등을 지내며 국어 교육 발전에 힘썼으며, 시집 《박꽃》, 수필집 《딸깍발이》 등의 저서를 남겼다. - 일제강점기의 언어학자 - 최현배
최현배는 한국어 연구와 한글 전용 운동에 기여한 언어학자이자 교육자로, 『우리말본』, 『한글갈』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어 문법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서도 한국어 연구와 보급에 헌신했으며, 광복 후에는 한국어 교육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한자 교육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논란이 있다. - 조선어학회 사건 - 정인승
정인승은 일제강점기 국어학자로서 국어사전 편찬에 기여하고, 해방 후에는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건국훈장과 국민훈장을 수훈받았다. - 조선어학회 사건 - 이희승
이희승은 국어학자, 교육자, 언론인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었고, 서울대학교 교수로 국어 연구와 사전 편찬에 기여했으며, 『국어대사전』 발간, 동아일보 사장, 대구대학교 총장,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학술원 부회장 등을 지내며 국어 교육 발전에 힘썼으며, 시집 《박꽃》, 수필집 《딸깍발이》 등의 저서를 남겼다. - 한국의 옥사한 사람 - 김형권
김형권은 북한의 공산주의 혁명투사로 미화되었으며, 풍산군이 김형권군으로 개칭되었지만, 그의 초기 생애와 활동에 대한 기록은 부족하며,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옥사한 사람 - 유관순
유관순은 3·1 운동 당시 서울과 천안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을 이끌었으며, 옥중에서도 독립 만세를 외치다 순국하여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삶과 업적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 한징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 |
| 본관 | 청주(淸州) |
| 호 | 효창(曉蒼) |
| 다른 이름 | 한징(韓澄) |
| 출생 및 사망 | |
| 출생일 | 1886년 2월 20일 |
| 출생지 | 조선 한성부 |
| 사망일 | 1944년 2월 22일 |
| 학력 및 경력 | |
| 소속 | 조선어학회 |
| 분야 | 언어학 |
| 수상 | |
| 훈장 | 건국훈장 독립장(1962) |
2. 생애
韓澄|한징중국어은 서울 출생으로,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이자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한 한글학자였다. 1930년 이윤재와 함께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에 참여했고 표준말 사정위원이 되었다.[1]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 감옥에서 옥사했다.[1]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1][2]
2. 1. 언론 활동 (1922년 ~ 1932년)
1922년부터 10년간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 언론은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1]2. 2. 조선어학회 활동과 표준어 제정 노력 (1930년 ~ 1942년)
1930년 이윤재와 함께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에 힘썼으며, 표준말 사정위원이 되었다.[1]2. 3. 조선어학회 사건과 투옥 (1942년 ~ 1944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함흥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4년 사망했다.[1]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의 대표적인 민족 문화 말살 정책 가운데 하나로, 이 사건으로 많은 한글학자와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3. 사후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1][2] 이는 한징의 독립운동과 민족 문화 보존에 대한 헌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한징(韓澄)
http://encykorea.aks[...]
2022-09-30
[2]
뉴스
六名(육명)에功勞勳章(공로훈장)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62-04-2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