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본궁
1. 개요
함흥본궁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 거주했던 곳으로, 왕위 계승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관련이 깊다. 태조 사후에는 그의 가족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7세기 말에 재건되었다. 한국 전쟁 중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함흥 역사 박물관에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 이름 | 함흥본궁 (咸興本宮) |
|---|---|
| 위치 |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 소나무동 |
| 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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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 종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보 |
|---|---|
| 지정 번호 | 107호 |
| 지정 기관 | 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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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비행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위치한 선덕비행장은 한국 전쟁 당시 K-26으로 불렸고 대한항공 YS-11기 납치 사건 때 납치 항공기가 착륙한 곳이며, 활주로 1본을 갖추고 고려항공이 평양과의 부정기편을 운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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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대극장
함흥대극장은 1984년 함흥시에 완공된 대극장으로, 1970년대 북한 건축 양식 변화의 대표 사례이며, 대극장과 소극장, 혁명가극 주인공 조각상 장식, 전통 목구조 현대적 재해석 등의 특징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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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로, 임진왜란과 인조반정으로 소실과 재건을 거쳐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임금이 거처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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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복궁은 1395년 한양 천도 후 처음 건설된 조선 최대 규모의 법궁으로, 조선 왕조의 번영을 기원하며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후 현재까지 복원 사업을 통해 위용을 되찾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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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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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역사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정식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전 함흥본궁에 거주했다. 태조는 고려의 수도 개성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천도하려 했으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아들들 간의 갈등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반란의 중심에는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있었고, 그는 형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태조는 왕위에 오른 아들 조선 태종이 보낸 사신들을 만나지 않고 죽이거나 가두었다. 여기에서 '함흥차사'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는데, 이는 심부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돌아오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태조 사후, 함흥본궁은 그의 가족에게 4대에 걸쳐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왕실 건축과 규범을 갖추었지만, 임진왜란 동안 원래 구조가 불탔고 17세기 말에 재건되었다. 한국 전쟁 동안 건물의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대부분 복원되었다.
2.1. 조선 건국 초기
조선의 창업주 태조 이성계는 정식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전 함흥본궁에 거주했다. 태조는 고려의 수도 개성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천도하려 했으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아들들 간의 갈등으로 여러 충신들이 살해되는 피비린내 나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의 중심에는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있었으며, 그는 형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태조는 왕위에 오른 이방원이 보낸 사신들을 만나지 않고 죽이거나 가두었다. 여기에서 '함흥차사'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는데, 이는 심부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돌아오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2.2. 임진왜란과 재건
임진왜란으로 함흥 본궁의 원래 구조가 불탔고, 17세기 말에 재건되었다. 재건된 본 건물은 각 15m 길이의 5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2.3. 한국전쟁과 복원
임진왜란 때 불탔던 함흥본궁은 17세기 말에 재건되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일부 파괴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파괴된 부분은 대부분 복원되었다.
2.4. 현재
함흥본궁의 본 건물은 각 15m 길이의 5개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원래 구조가 불탔고 17세기 말에 재건되었으며, 한국 전쟁 동안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대부분 복원되었다. 함흥본궁의 유물들은 함흥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