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함벽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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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때 합주지주사 김영돈에 의해 처음 창건된 누각이다. 대야성 기슭 황강 정양호를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 시대 명유들의 글이 현판으로 걸려 있고, 송시열의 글씨가 하산동층 암벽에 새겨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이층 목조기와집으로,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설계된 특징을 가진다.

합천 함벽루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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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벽루
이름합천 함벽루
한자 표기陜川 涵碧樓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59
지정일1983년 7월 20일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죽죽길 80 (합천읍, 연호사)
시대조선시대
관리합천군
수량1동
문화재청 ID31,0059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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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함벽루는 고려 충숙왕 때 처음 건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황, 조식, 송시열 등과 같은 명유들의 글이 누각 내부에 현판으로 걸려 있었다. 함벽루 뒤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층인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 암벽에는 송시열이 쓴 '함벽루' 글씨가 새겨져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들보 5량으로 조성된 이층 목조기와집이며,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유명하다.

2.1. 건립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때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 1285~1348)이 처음 지었으며,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은 이는 안진(安珎: ?~1360)이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 다시 지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대야성 기슭에 자리 잡아 황강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2.2. 중건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대에 당시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 1285-1348)이 처음 창건하였으며,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은 이는 안진(安珎: ?-1360)이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3. 위치 및 경관

함벽루는 대야성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黃江)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였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시대 최고 명유의 글이 누각 내부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함벽루 뒤편에 드러난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 지층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의 암벽에는 송시열이 새긴 함벽루 글씨가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들보 5량(樑)으로 조성된 이층 목조기와집이며,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특히 유명하다.

4. 건축

함벽루는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대야성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랫동안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누각 내부에는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시대 명유들의 글이 현판에 걸려 있으며, 함벽루 뒤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층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 암벽에는 송시열이 새긴 '함벽루' 글씨가 있다.

4.1. 구조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때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1285-1348)이 처음 지었으며, 안진(안진:?-1360)이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었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 다시 지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야성 기슭에 자리 잡아 황강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져, 오랫동안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시대 최고 명유들의 글이 누각 내부 현판에 걸려 있다. 함벽루 뒤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층인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 암벽에는 송시열이 쓴 '함벽루' 글씨가 새겨져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들보 5량(樑)으로 구성된 2층 목조 기와집이며,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특히 유명하다.

4.2. 특징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때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1285-1348)이 처음 지었으며, 안진(?-1360)이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었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 다시 지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야성 기슭에 자리 잡아 황강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져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시대 유명 유학자들의 글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으며, 함벽루 뒤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층인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 암벽에는 송시열이 쓴 '함벽루' 글씨가 새겨져 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에 들보 5량(樑)으로 만들어진 2층 목조 기와집이며,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지도록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5. 문화

함벽루는 대야성 기슭에 위치하여 황강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들보 5량(樑)으로 조성된 이층 목조기와집이며,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특히 유명하다.

5.1. 명사들의 방문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때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 김영돈(金永暾: 1285-1348)이 처음 지었으며, 안진(?-1360)이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었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 다시 지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대야성 기슭에 자리 잡아 황강 정양호(正陽湖)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어져,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시대 명유들의 글이 누각 내부 현판에 걸려 있다. 함벽루 뒤편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층인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 암벽에는 송시열이 쓴 '함벽루' 글씨가 새겨져 있다.

5.2. 현판

함벽루에는 조선 시대 명유들의 글이 현판에 걸려 있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의 글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함벽루 뒤편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인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 암벽에는 송시열이 쓴 '함벽루' 글씨가 새겨져 있다.

6. 자연 유산

함벽루는 황강 정양호를 바라볼 수 있게 지어져 오래 전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였다.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시대 명유들의 글이 누각 내부에 현판으로 걸려 있다.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도록 배치된 점이 특히 유명하다.

6.1. 지질

함벽루 뒤편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 지층인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의 암벽이 드러나 있으며, 이 암벽에는 함벽루라 새긴 송시열의 글씨가 있다.

6.2. 암각

함벽루 뒤편에 드러난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 지층 경상 누층군 하산동층의 암벽에는 송시열이 쓴 '함벽루' 글씨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