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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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합포성은 고려 우왕 4년(1378) 배극렴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경상우도 병영성이다.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병영성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조 16년(1583) 진도로 우도 병영이 옮겨진 후 합포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북문터 주변에 8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1930년대와 1947년 촬영된 사진 자료가 존재한다.

합포성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합포성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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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포성지
국가대한민국
위치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종류유형문화재
지정 번호153
지정일1976년 12월 20일
시대고려말
면적50m
관리자창원시
꼬리표창원 합성동
문화재청 ID21,0153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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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고려 우왕 4년(1378) 배극렴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경상우도 병영성은 조선 세종 8년(1426)에 경상도 병영성이 되었다가 선조 16년(1583)에 진도로 우도 병영을 옮긴 후 합포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문터 주변에 80m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고, 사방이 아파트와 집들로 둘러싸여 있다.

2.1. 고려 시대

고려 우왕 4년(1378) 배극렴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경상우도 병영성이다. 세종 8년(1426)에 좌우도 병영이 합쳐져 경상도 병영성이 되었다가 선조 16년(1583)에 진도로 우도 병영을 옮긴 후 합포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성에는 4대문을 설치했고, 의만창·회영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성 밖에는 주위에 연못을 파고 다리를 설치하였다. 성의 외벽은 큰 돌을 사용하여 견고함을 느끼게 하며, 하단의 기초석은 밖으로 내어 쌓았다. 내벽은 계단모양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았는데 이것은 조선 전기 축성법의 특징이다.

2.2. 조선 시대

고려 우왕 4년(1378)에 배극렴이 왜구를 막기 위해 돌로 쌓은 경상우도 병영성이었다. 세종 8년(1426)에 좌우도 병영이 합쳐져 경상도 병영성이 되었다가, 선조 16년(1583)에 우도 병영이 진도로 옮겨진 후에는 합포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성에는 4대문을 설치했고, 의만창·회영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성 밖에는 주위에 연못을 파고 다리를 설치하였다. 성의 외벽은 큰 돌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으며, 하단의 기초석은 밖으로 내어 쌓았다. 내벽은 계단 모양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았는데, 이는 조선 전기 축성법의 특징이다.

2.3. 일제강점기 및 광복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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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조

배극렴왜구를 막기 위해 고려 우왕 4년(1378)에 돌로 쌓은 경상우도 병영성이다. 세종 8년(1426)에 좌우도 병영이 합쳐져 경상도 병영성이 되었다가 선조 16년(1583)에 진도로 우도 병영을 옮긴 후 합포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성에는 4대 문을 설치했고, 의만창·회영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성 밖에는 주위에 연못을 파고 다리를 설치하였다.

3.1. 성벽

성벽의 외벽은 큰 돌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으며, 하단의 기초석은 밖으로 내어 쌓았다. 내벽은 계단 모양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았는데, 이는 조선 전기 성벽 축조 방식의 특징이다. 현재 북문 터 주변에는 80m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고, 사방이 아파트와 집들로 둘러싸여 있다.

3.2. 성문 및 시설

성에는 4대 문을 설치했고, 의만창·회영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성 밖에는 주위에 연못을 파고 다리를 설치하였다. 성의 외벽은 큰 돌을 사용하여 견고함을 느끼게 하며, 하단의 기초석은 밖으로 내어 쌓았다. 내벽은 계단 모양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았는데 이것은 조선 전기 축성법의 특징이다.

4. 현재 상태

현재 북문터 주변에 80m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고, 사방이 아파트와 주택들로 둘러싸여 있다.

5. 사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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