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토리 고타
1. 개요
핫토리 고타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96년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하여 2011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2012년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J1 리그 통산 350경기 출전을 기록했으며, 2009년 J1 리그 페어 플레이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부터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스 코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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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축구 선수 -
기무라 다카히로
기무라 다카히로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천황배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 여러 팀에서 코치 및 감독을 역임하며 유소년 육성과 팀 성적 향상에 기여했다. -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축구 선수 -
리 다다나리
리 다다나리는 일본 도쿄 출신의 재일교포 4세 축구 선수로, 일본 국적을 취득 후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J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싱가포르 프리미어리그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하다 은퇴했다. -
일본 남자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나카타 고지
나카타 고지는 J리그와 스위스 슈퍼리그 우승을 포함한 다양한 우승 경력을 가진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국가대표로서 2002년 FIFA 월드컵과 2004년 AFC 아시안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클럽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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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유이치로
나가이 유이치로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우라와 레즈에서 프로 데뷔 후 J리그와 사회인 축구 리그에서 활약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MVP를 수상했고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핫토리는 1977년 11월 22일 나라시노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J1 리그 클럽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했으며, 같은 해 11월 9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1998년부터는 왼쪽 미드필더로 주전 자리를 확보하여 오랫동안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야마기시 사토시의 영입 등으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2012년 J2 리그의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이적했다. 핫토리는 2012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클럽 경력
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J1리그 클럽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했다. 고등학교 시절 도쿄 가스 축구부(현 FC 도쿄)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코치의 권유로 J리그 진출을 결심했다. 1996년 11월 9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의 1996 시즌 최종전에서 후반 29분(74분) 교체 출전하며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1997년 에디 톰슨 감독 부임 후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왼쪽 아웃사이드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같은 포지션의 주전 선수였던 미치키 류지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잡았고, 1998년 미치키가 이적하면서 왼쪽 사이드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기 쿠보 류히코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초기에는 프리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1998년 8월 22일 직접 프리킥으로 J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2000년 7월 29일 시미즈 에스펄스전에서 J1 통산 1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2001년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 체제에서는 왼쪽 사이드백으로 뛰며 공격적인 재능을 발휘, 11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오른쪽의 코마노 유이치와 함께 측면 공격의 핵심 역할을 했다. 팀이 J1 잔류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양 발등 부상을 안고 뛰었으나, 잔류 확정 후인 같은 해 11월 21일 오른쪽 제5 중족골 기저 골절, 왼쪽 제5 중족골 골절 및 왼쪽 바깥쪽 반월판 부분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02년에는 부상 재발로 7월에 복귀했으나 컨디션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팀은 연말 J2 리그로 강등되었지만 팀에 잔류했다. 한편, 11월 23일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출장 정지를 당했는데, 이는 그의 마지막 경고 누적 결장이 되었다. 이 경기 이후부터 2007년 8월까지 리그 171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03년 J2 리그에서는 세자르 삼파이우와 함께 왼쪽 측면을 책임지며 팀의 1년 만의 J1 승격에 기여했다. 2004년 우에무라 켄이치의 이적으로 주장을 맡았다. 2005년 7월 2일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J1 통산 2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소속팀 산프레체 히로시마는 1999년 천황배, 2007년 천황배, 2010년 J리그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핫토리는 2007년 3월 10일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J1 100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을 달성했다. 2008년 팀의 두 번째 J2 강등 후 1년 만의 J1 승격에 다시 기여했다. 이 시즌 개인 최다인 4골과 크로스만으로 12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도움 순위 2위에 올랐다. 2009년 5월 9일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전에서 역대 38번째로 J1 통산 300경기 출전을, 2011년 5월 21일 빗셀 고베전에서는 역대 22번째로 J1 통산 35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야마기시 사토시의 영입과 이시카와 다이토쿠의 부상 복귀 등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같은 해 10월 오른쪽 발등 골절 부상으로 이탈했다가 복귀했지만, 주로 벤치를 지켰다. 2011 시즌 종료 후 히로시마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았으나 현역 생활 연장 의지를 밝혔다.
2012년, 즉시 전력감인 왼쪽 사이드 자원을 찾던 J2리그의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완전 이적했다. 오카야마에서 시즌 중 내전근 통증이 고질화되면서 은퇴를 결심했고, 2012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플레이 스타일
풍부한 활동량과 정밀도 높은 크로스가 강점인 왼쪽 아웃사이드 선수이다. 주로 윙백이나 사이드 백으로 활약했다.
필드 플레이어로는 J1 사상 최초로 100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을 달성했으며,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J1 통산 35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꾸준함과 강인함 덕분에 "철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실제로 2001년에는 양쪽 발등 골절 상태에서도 경기를 뛰었고, 2005년에는 훈련 중 오른쪽 팔꿈치가 탈구되어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음에도 13일 후 리그 경기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풀타임 출전하기도 했다.
2.3. 기록
| 클럽 통계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대륙 대회 | 합계 |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일본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아시아 | 합계 | |||||||
| 1996 | 산프레체 히로시마 | J1리그 | 1 | 0 | 0 | 0 | 0 | 0 | - | 1 | 0 | |
| 1997 | 18 | 0 | 2 | 0 | 5 | 0 | - | 25 | 0 | |||
| 1998 | 32 | 1 | 3 | 0 | 3 | 0 | - | 38 | 1 | |||
| 1999 | 28 | 1 | 4 | 0 | 1 | 0 | - | 33 | 1 | |||
| 2000 | 29 | 1 | 2 | 0 | 3 | 0 | - | 34 | 1 | |||
| 2001 | 28 | 0 | 0 | 0 | 5 | 1 | - | 33 | 1 | |||
| 2002 | 21 | 0 | 4 | 0 | 0 | 0 | - | 25 | 0 | |||
| 2003 | J2리그 | 44 | 1 | 4 | 1 | - | - | 48 | 2 | |||
| 2004 | J1리그 | 30 | 2 | 1 | 0 | 6 | 0 | - | 37 | 2 | ||
| 2005 | 34 | 0 | 2 | 0 | 6 | 0 | - | 42 | 0 | |||
| 2006 | 34 | 1 | 2 | 0 | 5 | 0 | - | 41 | 1 | |||
| 2007 | 34 | 2 | 5 | 0 | 7 | 1 | - | 46 | 3 | |||
| 2008 | J2리그 | 41 | 4 | 3 | 2 | - | - | 44 | 6 | |||
| 2009 | J1리그 | 34 | 2 | 2 | 1 | 4 | 0 | - | 40 | 3 | ||
| 2010 | 25 | 1 | 1 | 0 | 4 | 0 | 5 | 0 | 35 | 1 | ||
| 2011 | 17 | 0 | 0 | 0 | 0 | 0 | - | 17 | 0 | |||
| 2012 | 파지아노 오카야마 | J2리그 | 14 | 0 | 2 | 0 | - | - | 16 | 0 | ||
| 통산 | 464 | 16 | 37 | 4 | 49 | 2 | 5 | 0 | 555 | 22 | ||
기타 공식전
* 2007년
J1·J2 승강전 2경기 0득점
* 2008년
XEROX SUPER CUP 1경기 0득점
주요 기록
* 공식전 첫 출장: 1996년 11월 9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 (미츠자와 공원 구기장)
* 공식전 첫 득점: 1998년 8월 22일 J1 2nd 스테이지 1라운드 아비스파 후쿠오카전 (히로시마 빅 아치)
* 연속 풀타임 출장
공식전: 2002년 11월 30일 J1 2nd 스테이지 15라운드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전 (삿포로 돔) ~ 2006년 4월 22일 J1 9라운드 세레소 오사카전 (히로시마 빅 아치)까지 143경기
리그전: 2002년 11월 30일 J1 2nd 스테이지 15라운드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전 (삿포로 돔) ~ 2007년 10월 6일 J1 28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 (히로시마 빅 아치)까지 171경기 (J1과 J2에 걸쳐 있어 J리그 공식 기록은 아님)
J1 리그: 2004년 3월 13일 J1 1st 스테이지 1라운드 시미즈 에스펄스전 (히로시마 빅 아치) ~ 2007년 10월 6일 J1 28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 (히로시마 빅 아치)까지 126경기
* 연속 경기 출장
리그전: 2002년 11월 30일 J1 2nd 스테이지 15라운드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전 (삿포로 돔) ~ 2008년 11월 30일 J2 44라운드 로아소 구마모토전 (KK 윙)까지 218경기
J1 리그: 2004년 3월 13일 J1 1st 스테이지 1라운드 시미즈 에스펄스전 (히로시마 빅 아치) ~ 2007년 12월 1일 J1 34라운드 감바 오사카전 (히로시마 빅 아치)까지 132경기
* 통산 경기 출장
J1 통산 350경기 출장: 2011년 5월 21일 J1 12라운드 비셀 고베전
2.4. 수상 내역
| 연도 | 수상 내역 |
|---|---|
| 2009 | J1 리그 페어 플레이 개인상 |
| 2013 | 공로 선수상 |
3. 지도자 경력
* 2013년 -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스 코치
4. 에피소드
5세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고등학교는 시부야 막장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무나카타 마르코스 망의 지도를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지바현 대표로 후쿠시마 국체 소년 부문에서 우승했으며, U-18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당시 JFL 소속이었던 도쿄 가스 축구부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고등학교 코치의 권유로 J리그 도전을 결심했다.
1996년,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했다. 같은 해 AFC 유스 선수권 예선에 출전하는 U-19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고, 11월 9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공식 경기에 데뷔했다.
1997년, 에디 톰슨 감독 부임 후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왼쪽 측면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같은 포지션의 주전 선수이자 일본 대표였던 미치키 류지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잡았다. 1998년 미치키가 이적하면서 왼쪽 측면의 주전 자리를 꿰찼고, 비슷한 시기에 주전으로 도약한 쿠보 류히코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초기에는 프리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1998년 8월 22일에는 직접 프리킥으로 J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2000년 7월 29일 시미즈 에스펄스전에서는 J1 통산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01년,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의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 아래 왼쪽 윙백으로 활약하며 1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오른쪽의 코마노 유이치와 함께 양쪽 측면에서 공격의 시작점 역할을 했다. 팀이 J1 잔류 경쟁을 벌이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계속 출전했으며, 잔류가 확정된 후인 11월 21일에 오른쪽 제5 중족골 기저 골절, 왼쪽 다섯 번째 중족골 골절, 왼쪽 바깥쪽 반월판 부분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02년 시즌 전 캠프에서 부상이 재발하여 7월에 복귀했지만 컨디션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11월 23일 가시와 레이솔전에서는 경고 누적으로 출장 정지를 당했는데,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마지막 경고 누적 결장이 되었다. 시즌 종료 후 팀은 J2리그로 강등되었지만 팀에 잔류했다. 2003년 J2리그에서는 세자르 삼파이오와 함께 왼쪽 측면을 책임지며 팀의 J1 승격에 기여했다. 2004년에는 우에무라 켄이치의 이적으로 주장을 맡았다. 2005년 7월 2일 가시와 레이솔전에서 J1 통산 200경기 출장을 달성했으며, 이 기간 동안 리그와 컵 대회를 포함한 모든 공식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2008년에는 팀의 두 번째 J2리그 우승과 1년 만의 J1 복귀에 기여했으며, 개인 최다인 4골과 12개의 어시스트(리그 2위)를 기록했다. 2009년 5월 9일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지바전에서 J1 통산 300경기 출장(역대 38번째)을 달성했고, 2011년 5월 21일 빗셀 고베전에서는 J1 통산 350경기 출장(역대 22번째)을 달성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야마기시 사토시의 영입과 이시카와 다이토쿠의 성장으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같은 해 10월 오른쪽 발등 골절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다가 복귀했지만, 주로 벤치를 지켰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히로시마 구단으로부터 코치직 제안을 받았으나 현역 생활 연장 의사를 밝혔다.
2012년, 즉시 전력감으로 왼쪽 측면 자원을 찾던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완전 이적했다. 하지만 시즌 중 내전근 통증이 고질화되면서 은퇴를 결심했고,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3년부터는 친정팀인 산프레체 히로시마 유스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4.1. '철인' 핫토리
필드 플레이어로는 J1 사상 최초로 100경기 연속 풀타임 출장을 달성했다. 당시 이 기록은 전체 5위에 해당했지만, 상위 4명(도이 요이치, 시모다 타카시 포함)은 모두 골키퍼였기에 필드 플레이어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또한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 선수로는 최초로 J1 통산 350경기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꾸준함과 강인함 덕분에 '철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실제로 2001년에는 양쪽 발등이 골절된 상태에서도 경기에 출전했으며, 2005년에는 훈련 중 오른쪽 팔꿈치가 탈구되어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과 13일 후 리그 경기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풀타임 출전하는 투혼을 보여주었다.